‘정년 60세 의무화’…발 빠른 기업만이 살아남는다

[검경일보 조성수 기자] 우리나라의 고령화는 세계적으로 가장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정년 60세 의무화 법안이 통과되고 기업 내 고직급자가 증가하면서, 직업에 임하는 개인들의 인식도 변화하고 있다. 기업은 교육을 통한 역량 강화, 근무 환경 개선, 유연 근무제 등의 방안을 통해 고령화를 대비할 필요가 있다. 검경일보가 LG경제연구원의 자료를 토대로 이렇게 우리 앞에 급속도로 다가온 고령화에 기업들이 주목해야 하는 이유를 살펴봤다.

△정년 60세 의무화 법안 통과

지난해 4월 ‘정년 60세 연장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함에 따라, 2016년부터 종업원 300인 이상의 대기업과 공공기관이, 2017년에는 모든 사업장이 60세 정년 제도를 반드시 적용해야 한다. 현재 기업들이 개별적으로 제도화해 놓은 평균적인 정년이 57세이고 실제 퇴직 연령은 약 53세인 상황을 감안해 볼 때, 이 법이 적용된다면 어림짐작해 보아도 지금보다 적어도 3~4년 이상 직원들의 퇴직 시점이 늦춰지는 효과가 있을 것이다. 이에 따라 기업 내 고령 인력의 비중이 빠르게 증가할 수밖에 없다.

△조직 내 고직급 인력 증가

법제도적 환경 변화와 함께 고령화 이슈가 기업에 가장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것은 조직의 인력 구조 측면일 것이다. 최근 급격하게 고령화가 진행되고 신규 채용은 감소하면서 고직급자 비중이 늘어나 인력 구조가 전통적인 피라미드(△) 형태에서 역(逆)피라미드(▽)로 빠르게 바뀌는 현상이 확산되고 있다.

서울대 박희준교수가 한 제조기업을 상대로 시뮬레이션한 결과, 최근 5년간 성장률과 승격률, 자연 퇴직률 등이 유지되면서 정년이 60세로 연장될 경우, 해당 기업의 인력 구조는 간부 직급의 비율이 2012년 49.1%(부장 7.2%, 차장 14.2%, 과장 27.7%)에서 2025년에는 64.6%(부장 23.3%, 차장 19.1%, 과장 23.2%)로 증가한다고 한다. 대리, 사원급이 34%에 불과하고, 관리자 직급의 비중이 더 많아지는 현상이 벌어지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많은 기업들에서 이미 나타나고 있고 고령화가 진행될수록 더 확산될 것이다. 이렇게 될 경우, 조직의 활력이 약화되거나 변화·혁신 수용의 속도가 늦어질 수 있다. 인력 구성이 달라지는 만큼, 기존의 직무 구분, 직급 체계, 조직 관리 방안 등이 새로이 수립돼야만 변화하는 인력 자원의 구조를 효과적으로 관리할 수 있을 것이다.

△개인의 인식변화

사회의 변화와 함께 구성원들의 인식 변화도 주목해 보아야 할 포인트이다. 평균 기대 수명이 연장됨에 따라 개인이 직장생활을 오랫동안 유지해야 하는 금전적, 정신적 니즈가 증가하고 있다. 이에 따라 장기간 재직을 중시하는 풍토가 생겨나고, 직장에서 큰 성공을 추구하기 보다는 급여를 적게 받더라도 소위 ‘가늘고 길게 가자’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어느 지방은행에서는 임원으로 승진하는 발령을 내겠다고 해도 그냥 부장으로 있겠다며 승진을 거부하는 일까지 벌어졌는데, 임원으로 1~2년 일하고 회사를 그만두는 것 보다는 부장으로 정년까지 가는 것이 더 유리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정년 연장 법안통과로 장기근속에 대한 구성원들의 기대도 커졌다. 취업포털 사람인이 정년 60세 연장법이 국회를 통과한 후 직장인 1,52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2013.6), 직장인들의 체감 정년은 평균 53세에서 57세로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렇게 직장 내에서 장기간 근속하는 것을 중시하고 이에 대한 기대가 확산되는 상황에서, 조직의 활력(Vitality)을 유지하기 위한 기업의 고민 또한 커질 수밖에 없다. 구성원들이 동기(Motivation)와 주도성을 잃지 않으면서 근속할 수 있는 방안이 마련돼야 하는 상황이다.

고령화를 현명하게 대응하려면 교육·훈련을 통한 지속적 역량 강화 고령 인력의 취약점으로 가장 먼저 지적되는 것은 변화에 대한 대응력이 늦고 역량에 큰 발전이 없이 정체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따라서 기업이 고령화 시대를 대비하기 위해서는 이 문제에 더 역점을 두어야 할 필요가 있다.

즉, 고령 인력에 대한 체계적인 역량 개발 프로그램을 통해 변화하는 트렌드, 새로 등장하는 지식 등을 지속적으로 학습할 수 있도록 하고, 개인별로 부족한 역량을 개발할 수 있도록 신경 써주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일반적으로 고령 인력은 새로운 것을 학습하기보다 기존의 방식을 선호한다는 편견부터 벗어 던질 필요도 있다. 실제로는 고령 인력들도 젊은 구성원들만큼 역량 개발에 대한 욕구가 높다는 점이 이미 여러 연구를 통해 밝혀진 바 있다.

고령화 시대에 맞는 근무 환경 조성 고령자의 경우 일반적으로 젊은 세대보다 신체적 활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는 어찌 보면 자연스럽고 당연한 현상일지 모른다. 그러나 구성원의 고령화가 반드시 생산성 저하로 이어지는 것이 아닐 수 있다. 고령 인력에게 적합한 작업 환경 구축을 통해 생산성을 유지하거나 오히려 향상시키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는 다음의 사례를 통해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2007년 독일의 딘골핑(Dingolfing)에 위치한 BMW 제조공장에서는 인구 고령화로 인해 예상되는 생산성 저하에 대응해야 했는데, 2007년 당시 39세였던 평균 연령이 2017년에는 47세가 될 것으로 예측되고 있었다. 경영진은 고령화가 진행된 상황에 맞추어 조립 라인과 프로세스를 재설계하고, 2017년에 예상되는 평균 연령별 인력 비율로 직원들을 구성했다.

환경을 개선하는 ‘2017 Ergonomics’ 프로젝트의 개선점은 총 70가지로, 무릎에 무리가 가는 것을 막고 전기 충격을 줄이는 나무 바닥, 신체의 무리를 줄여주는 이발소식 의자, 시력에 도움을 주고 품질 에러를 줄이는 확대경 등 고령자의 근무 효율을 높이는 여러 장치를 고안해 도입했다. 총 50,000달러의 비용이 소요된 이 프로젝트는 연간 생산성을 7% 향상시켰으며, 결근율도 동종업계 수준이었던 7%에서 2%로 하락하였다. 동사는 딘골핑 공장의 사례를 미국, 독일, 호주 등의 다른 공장에도 도입할 계획이다.

△유연 근무제의 활용

지속적으로 고직급자가 늘어날 경우, 기업 입장에서는 고령자의 임금 등 비용이 증가하는 것이 큰 부담이 될 수 있다. 구성원들 중에는 직장 생활을 지속하고 싶으나 체력적 한계가 있는 고연령자도 상당수 있을 것이다. 양쪽을 모두 만족시킬 수 있는 방안이 유연근무제가 될 수 있다. 유연 근무제도는 기존의 정해진 장소, 시간에 근무하던 제약을 없애고 좀 더 탄력적으로 구성원의 니즈에 맞게 근무하도록 하는 제도이다. 기업은 고령 인력의 숙련된 기술과 경험을 필요시 적절하게 활용할 수 있고, 개인은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직업을 유지하면서 정신적 만족과 금전적 소득을 함께 얻을 수 있다.

영국의 통신회사 브리티시 텔레콤은 ‘Achieving Balance’ 프로그램을 통해 고령 근로자들이 본인이 처한 상황에 맞는 근무 형태를 선택하면서 단계적으로 업무를 줄여나갈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 제도는 모든 근로자들이 활용할 수 있지만 특히 고령자들이 많이 활용하고 있는데, 다음과 같이 5가지 단계로 업무의 양을 조절할 수 있다.

①Wind Down: 개인 시간을 늘리고 업무시간을 줄임, ② Step Down: 책임과 권한이 좀 더 적은 직무로 변경, ③ Time Out: 최대 2년 까지 휴직 또는 안식년 선택, ④ Helping Hands: 최대 2년 까지 자선 단체 파견 근무, ⑤ Ease Down: 단계적으로 책임과 권한의 단계를 낮춰가는 것이다.

구성원들은 자신에게 가장 적합한 근무 형태를 선택해 몰입하며 근무할 수 있고, 기업 입장에서는 비용은 낮추면서도 고령자의 숙련된 기술과 경험을 활용할 수 있게 된다. 이 회사는 이외에도 다양한 고령 인력 지원 및 활용 프로그램을 통해 2011년 미국 은퇴자협회로부터 ‘Best Employer for Workers Over 50’로 선정되기도 했다.

▲ 세계적으로 고령화 시대에 접어들면서 대표적인 노인성 질환인 치매환자가 급증, 각 국가에서는 여러 정책을 선보이고 있다. (사진제공: 계란자조금관리위원회)
△직무급제 도입 고려

이제는 장기적 관점에서 직무급제로의 전환을 고려해보아야 하는 시점이기도 하다. 먼저, 우리 기업의 대부분이 연공급제에 기반한 직능급 제도를 채택하고 있는 상황에서, 현재 추이대로라면 고직급자가 점점 증가하여 기업에게는 비용 부담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 노동 연구원의 연구에 따르면, 생산직 근로자의 근속 년수별 임금격차(초임대비 30년 이상)는 우리나라가 3.3배로 독일(1.97배), 프랑스(1.34배)보다 월등히 높다고 한다. 이는 고령화가 향후 지속될 현상임을 감안할 때, 연차와 임금의 분리가 필요함을 시사한다고 볼 수 있다.

또한, 달라진 인력구성에 맞추어 구성원의 역할을 재정립해볼 필요가 있다. 과거에는 고직급자가 소수에 불과해 직급 단계의 상층부에서 조직을 관리하는 역할을 수행했지만, 이제 인원수가 늘어나면서 모두가 관리자의 역할을 수행할 수는 없게 됐다. 이런 현상이 증가하면서 관리자 역할을 맡지 못하는 경우 낙심하거나 수동적으로 주어진 업무만을 수행하려고 하는 경우가 발생하고 있다. 구성원들의 인식이 과거의 직급 체계와 현재의 근속 패턴 변화 사이에서 충돌을 빚고 있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들이다. 현 체제의 지속으로는 이들의 동기 부여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따라서 담당하는 직무의 가치에 따라 임금을 달리하는 직무급 제도로 전환을 고려해 볼 수 있다. 직무급이란 직무의 상대적 가치에 따라 직무 등급을 도출하고 그에 기반을 두어 기본 급여 수준을 결정하는 임금체계이다. 초기에 직무를 구분하고 평가하는 작업에 노력이 투입돼야 하겠지만, 장기적 관점에서 연차보다는 일 중심의 조직운영, 우수 인력에 대한 동기 부여 등의 측면에서 직무급제로 전환이 미래에 좀 더 유효한 보상체계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와 비슷한 보상 체계를 갖고 있던 일본의 소니, 캐논 등의 기업들도 고령화와 함께 직무급제를 도입하는 추세다.

△고령자에 대한 인식 전환

앞서 언급한 제도들이 조직에서 원활하게 운영되도록 하기 위해서는, 구성원들이 이를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는 문화가 조성되는 것도 중요하다. 먼저, 고령자에 대한 선입견을 없애고, 고령 인력의 기술과 연륜을 인정하며 경험을 중시하는 문화가 조성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단순한 캠페인이나 표어로 주입하기 보다는, 고령자들이 다른 세대들과 다양한 주제를 가지고 자연스럽게 소통할 수 있는 기회를 많이 만들어 주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많은 구성원들이 자신의 직속 상사와 소통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고직급자에 대한 경직되고 어려운 인상을 가지고 있을 수 있다. 직속 상사 이외의 시니어 인력들과 자유롭게 대화할 수 있는 채널을 마련해 구성원들이 갖고 있는 고령 인력에 대한 선입견을 없애고 긍정적인 인식을 확산하도록 하는 방안을 고려해볼 수 있다.

컨설팅 기업 부즈앨런은 정보교류 및 사내 소통을 강화하기 위해 ‘Hellobah.com’이라는 사이트를 개설했다. 이 사이트는 블로그, 웹사이트 등을 통해 활발히 정보교류가 일어나도록 함으로써 고객사, 자택 등에서 근무하고 있는 원거리의 직원들을 연결시켜주는 역할을 한다. 여기서 주목할 만 한 점은 사내 네트워크를 활성화함으로써 정보의 흐름을 개선하는 것뿐만 아니라, 세대간 소통을 강화시켜준다는 점이다.

고직급 세대는 자신들이 갖고 있는 노하우와 비즈니스 정보를 젊은 세대들과 공유하는 것을 즐거워하고, 신세대 직원들은 시니어 직원들이 사이트를 효과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준다. 이러한 교류를 통해 신세대 직원들은 시니어 직원들에 대한 긍정적 인식을 강화할 수 있게 되는 한편, 시니어 직원들도 좀 더 변화에 빨리 대응할 수 있는 역량을 키울 수 있게 될 것이다.

우리 사회는 최근 급속한 환경적 변화를 경험하고 있으며, 고령화 역시 그 중 하나이다. 특히 고령화는 단기적인 현상이 아니다. 기업은 업종, 근무 환경, 인력 자원의 특성 등을 고려해 장기적인 관점에서 지속 가능한 대안을 수립해야 할 것이다. 변화가 급격한 만큼, 이를 받아들이는 기업과 개인이 얼마나 열린 마음과 개선의 의지를 갖고 대응하는지가 변화에 성공적으로 적응할 수 있는지를 결정할 것이다. 모두의 변화 준비가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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