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외악재 불구 금융시장 견고…2013년 이후 원화 가치 안정적

[검경일보 조성수 기자] 지난해부터 이어지고 있는 대외악재에도 불구하고 국내금융시장은 상당히 견고한 모습이다. 2013년 5월 미국 연방준비제도 이사회의 버냉키 전 의장이 양적완화 축소를 시사한 이후 브라질, 인도 등 대다수 신흥국의 통화가치와 주가가 급락하는 모습을 보였다. 신흥국으로 몰려들었던 유동성이 다시 선진국으로 빠져나갈 것이라는 우려감 때문이었다. 연초에는 아르헨티나발 금융불안과 우크라이나의 정정불안 사태가 벌어졌다. 일련의 대외적인 금융불안에도 원화환율과 국내 주식시장은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모습을 보였다. 실제로 2013년 이후 주가와 환율의 움직임을 기준으로 하면 국내 금융시장은 안정적인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검경일보가 LG경제연구원의 자료를 토대로 2008년 이후 국내 금융시장에서 외국인 투자자의 행태가 어떻게 변화했는지 그리고 그에 따라서 원화환율, 나아가서 원화의 위상에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를 살펴봤다.

2008년과 2010년은 모두 선진국발 금융위기라는 공통점이 있었지만 신흥국 통화에 미친 영향은 달랐다. 2010년 유럽발 금융위기에서는 2008년과는 달리 브라질, 남아프리카 등 신흥국 통화의 가치가 상승하는 양상이 나타났다. 마지막으로 미국, 유럽 등 선진국의 유동성 상황이 신흥국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점도 확인된다. 실제로 이는 선진국이 위기의 진앙이더라도 실제 자본유출은 신흥국에서 더 심했다는 것이다. 선진국, 특히 미국의 투자자금 중에서 신흥국에 투자된 포트폴리오 자금이 국제금융시장이 불안정한 시기에는 본국으로 회귀하거나, 자국 내 금융기관이 유동성과 건전성을 유지하기 위해 위험도가 높은 신흥국 자산을 매각하는 양상이 확인 되었다. 반면 2013년 신흥국의 금융 불안은 신흥국의 통화가치 하락으로 어김없이 이어졌다.

원화의 경우 최소한 2010년까지는 대체로 신흥국의 통화와 비슷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안전통화라기 보다는 위험통화로 분류될 수 있다. 그리고 2013년 신흥국 위기 과정에서는 신흥국 통화와는 차별화되는 양상이 나타났다. 환율변화만을 고려한다면 최근 들어서는 원화가 안전자산의 지위에 가까워지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외투 행태로 본 원화의 위상

2008년 이후 두 차례의 국제금융 시장의 불안시기와는 달리 2013년 이후에는 원화 가치가 국제금융시장의 불안에도 상당히 안정적임을 확인했다. 외국인 투자자의 주식 및 채권 거래 행태변화를 통해서 원화의 위상 변화를 살펴보자. 만약 외국인 투자자들이 국제금융시장이 불안한 시기에 국내 주식과 채권을 모두 매도하는 경우에는 원화는 위험자산으로 분류될 수 있고, 반면 위험자산인 주식은 매도하더라도 안전자산으로 여겨지는 채권을 매수하는 패턴이 나타났다면 원화의 위상에 변화가 있다고 볼 수 있다. 만약 원화가 위험통화라면 원화표시 채권도 외국인투자자에게는 위험자산일 것이고, 원화가 안전통화라면 채권은 안전자산이기 때문이다.

◇외국인 채권투자 패턴 변화

외국인투자자들이 보유한 국내채권의 규모는 2000년 1월말 1.5조원에 불과 했으나 2007년 중반을 기점으로 크게 증가해 2008년 5월에는 55조원까지 증가했다. 그리고 2009년 5월까지 15조원이 감소했으나 이후 증가하여 2014년 3월에는 95조원에 이르고 있다. 외국인의 국내채권 투자는 2007년 이후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또한 외국인 채권투자 잔액의 변화를 보면 국제금융시장이 크게 불안했던 2008년 5월~2009년 5월까지 급격하게 감소하는 현상이 나타난다. 이를 볼 때 2008년 금융위기 중 한국채권은 안전자산이라기 보다는 위험자산으로 분류할 수 있다.

사실 2007~2008년 외국인채권투자 증가는 국내 조선사 및 주식투자자의 헤지수요 급증에 따른 외환시장 불균형에 의해 촉발되었다. 조선사 등은 환율급락의 위험을 헤지하기 위해 선물환, 통화스왑 등 파생금융상품을 거래하면서 은행부문의 대규모 달러 차입수요를 유발시켰다. 파생상품 거래를 통해 미래에 받을 달러를 현재 시점에 매각함으로써 환율변동으로부터 원금을 보존하고자 했던 것이다. 반면 조선사 등의 파생거래 상대방인 은행(외은지점)은 국제금융시장에서 조달한 달러를 파생거래로 원화로 바꾸어 이를 국채에 투자했다.

이러한 거래가 커지면서 외환시장의 구조가 왜곡됐고, 이는 외환시장 내 무위험 차익거래 증가 및 그에 따른 외국인의 대규모 채권매입(및 차입)이라는 현상으로 이어졌다. 이 기간 중 외국인 채권투자가 연계된 파생거래의 거래상대방에 대한 위험(counterparty risk)을 제외하고는 사실상 무위험 거래라는 점을 감안할 때 2008년 전후의 외국인 투자자들이 한국채권을 안전자산으로 간주하였다고 보기는 어려우며, 단지 국내 외환시장의 불균형을 이용한 거래에 불과했다고 보여 진다.

반면 2009년 5월 이후 외국인 투자자의 채권보유잔액 증가는 무위험 차익규모가 크지 않은 상황에서 이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이전 시기와는 차이가 있다. 그리고 유럽발 재정위기 중에서도 외국인 채권보유금액에는 큰 변화가 없었다. 물론 2013년 신흥국 금융 불안 시기에는 다시 외국인 채권보유금액은 8조 원 가량 줄어들었으나 2008년에 비해서는 크지 않았다. 그리고 보유채권이 만기가 도래하면서 잔액은 줄어들었으나 순매수는 꾸준히 이어졌다는 점에서 원화표시 국채 및 통화안정채권이 외국인에게 이전보다 안전한 자산으로 간주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와 같은 외국인의 국내 채권 매입 증가는 ▲선진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은 금리 및 성장률 ▲안정적 경상수지 흑자 기조 ▲낮아진 환율변동성 등으로 설명된다.

◇국내 주식 매매패턴 그대로

이제 외국인 투자자의 주식매매를 살펴보자. 외국인 투자자의 주식순매도 패턴은 국제금융시장의 위험도가 높아지면 국내주식을 매도하고 위험도가 낮아지면 매수를 하는 패턴이 명확하게 드러난다. 예를 들어 국제금융시장의 위험도가 높아지던 2007년 중반 이후 외국인투자자들이 국내주식 매도규모를 늘리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반면 위험도가 낮아지던 2009년 3월부터는 다시 국내주식 매수로 돌아선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패턴은 유럽재정위기나 신흥국 금융 불안 시기에도 나타났다.

외국인의 이런 매매패턴은 우리 경제와 주식시장이 세계경제의 흐름과 위험을 상대적으로 제대로 반영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우리경제는 수출입 규모가 GDP의 100%를 넘어서는 수출의존형 경제이다. 부가가치를 기준으로 보더라도 2000년대 성장의 절반 정도가 수출에서 나왔다. 게다가 2000년 이후 우리경제의 성장률은 세계경제 성장률과 거의 유사한 패턴을 보였다. 우리경제의 흐름이 세계경제의 움직임에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의미이다.

각 국가별 수출 포트폴리오를 보더라도 우리경제는 중국, 인도 다음으로 괴리도가 낮다. ‘각 국가에 대한 수출비중 - 각 국가가 세계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절대값)을 통해서 보면 한국 수출은 지역별, 국가별로 상당히 균형 돼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2011년을 기준으로 우리경제는 이 비율이 0.582으로 미국, 중국, 인도, 브라질을 제외하면 세계에서 가장 낮은 수준에 속한다. 중국은 0.302, 인도는 0.367이었다. 그리고 수출/GDP 비율은 룩셈부르크 등 유럽의 소국을 제외하고는 가장 높은 수준으로 나타났다.

수출이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고, 수출이 세계경제의 움직임을 상대적으로 잘 반영하는 것은 거시경제의 움직임에 투자하는 투자자 입장에서는 상당히 매력적일 수밖에 없다. 이에 더해 우리경제의 금융시장 자유화 정도는 여타 신흥국에 비해 상당히 높다. 외국인 투자자 입장에서는 한국주식이 세계경제의 흐름을 반영하는 자산으로 인식될 수 있다는 의미이다. 또한 2014년 3월말을 기준으로 외국인 투자자의 국내주식보유액은 시가총액의 31.9%인 424조원에 이른다. 외국인의 보유비중이 높은 만큼 국제금융시장의 변동이 국내 주식시장에 큰 영향을 주게 된다. 다시 말해 우리의 경제구조와 수출구조가 세계경제의 변화를 상당히 잘 반영하고, 주식시장에서 외국인투자자의 비중이 높으니 국내주식가격의 변화가 세계경제의 실물 및 금융상황에 쉽게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다.

◇채권순매도 패턴 변화 포착

계량분석을 통해서 주식 순매수, 채권 순매수, 국제금융시장 변동성, 무위험 차익거래 유인간의 관계를 분석했다. 만약 원화의 위상이 높아졌다면 금융시장 불안기에 채권매도 규모가 이전 시기에 비해 줄어들거나 순매수가 증가했을 것이다.

분석에 따르면 국제금융시장의 위험도가 커지면 외국인투자자의 국내주식 매도규모가 증가하는 패턴이 나타난다. 둘 사이에 어떤 구조적인 변화가 있었는지를 살펴본 결과 2007년 1월에 변화가 나타났으나, 그 이후에는 나타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외국인투자의 채권순매수와 국제금융시장의 위험도, 그리고 차익거래 유인의 크기를 분석한 결과는 2008년 9월 이후 2013년 8월까지는 국제금융시장에서의 위험도가 높아지면 외국인 투자자의 순매도가 늘어났다.

2013년 9월 이후에는 둘 간의 관계가 바뀌어 국제금융시장의 위험도가 높아지면 외국인투자자의 채권매입이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분석결과를 요약하면, 주식의 경우 기간별로 차이가 있으나 전 기간에 걸쳐 외국인 투자자에게는 위험자산으로 간주되는 반면, 채권의 경우 2013년 9월 이후에는 안전자산으로 인식되고 있을 개연성이 높다는 것이다.

변동성 분석을 보더라도 국제금융시장의 불안정성을 나타내는 지수(VIX)와 국내 주식시장의 불안정성(VKOSPI)을 나타내는 지수의 움직임은 유사하며 이런 상황은 최근까지도 크게 변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난다. 회귀분석을 통해서 VIX 지수와 VKOSPI 지수간의 관계에 구조적인 변화가 있었는지를 살펴보면 2012년 이후 계수가 다소 낮게 나왔으나 이전 기간과 큰 차이가 있지는 않았다. 반면 국제금융시장의 위험도가 환율변동에 미치는 영향은 2013년 9월 이후 크게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앞서 분석한 외국인의 채권순매수의 패턴과 유사하다고 보여 진다. 요약하면 ‘국제금융시장이 국내 주식시장’에 영향을 미치는 구조는 크게 변하지 않았는데, ‘국제금융시장이 국내 채권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방향이 바뀌었고 ‘국제금융시장이 원화환율’에 주는 영향은 줄어들었다. 국제금융시장에서 우리금융시장에 대한 평가가 달라졌다는 간접적인 증거라고 볼 수 있다.

외국인 투자자의 주식 및 채권매매 패턴도 이를 반영한다. 2008년 9월~2011년 12월까지 월별 외국인 투자자의 주식 및 채권 매수행태를 보면, 주식 및 채권 매입이나 매도가 같은 방향인 경우가 40번 중 26번(65%), 반대방향인 경우가 14번이었다. 반면 2012년 이후에는 반대방향인 경우가 27번 중 15번(55%)이었다. 이러한 행태로 미루어 보면 주식매도(매입)에 따른 국내금융시장에의 영향을 채권매수(매입)가 어느 정도 완화시키는 것으로 보인다. 이는 위험자산인 주식과 안전자산인 채권을 거래하는 외국인 투자자의 위험인식이 다르기 때문으로 보인다.

◇원화의 안전화, 아직은 멀다

앞서 분석한 내용을 요약하면 최근 들어 원화환율은 상당히 안정적인 흐름을 보이고 있으며 국제금융시장의 부정적인 영향에서도 어느 정도 벗어나 있다. 이는 외국인투자자의 채권순매수 패턴이나 원화환율의 변동성 측면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변화는 아시아 중앙은행을 비롯한 외국인의 채권투자 확대에 기인하는 것으로 보인다. 국가채무를 두고 정치적 논쟁이 끊이지 않고 통화정책의 불안정성이 높은 미국의 달러화나 경제통합이 완전하지 않은 상황에서 발생했던 남유럽 금융위기의 여파가 가시지 않은 유로화에서 눈을 돌려 대체 안전자산을 찾던 채권투자자들이 보유자산 중 일부를 원화에 투자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금리도 낮고 위험도도 낮았던 전통적인 안전자산들이 위험도가 높아지면서 위험도는 다소 높지만 금리도 높은 자산으로 투자대상을 다변화하는 전략의 일환에서 원화에 대한 투자를 늘린 것이다. 최근 금융불안정기에도 원화환율이 안정적이었고, 외국 중앙은행들의 국내 채권 매입이 늘고 있다는 사실을 볼 때 원화의 위상이 다소 높아졌다고 볼 수 있다.

앞서 지적한 주식시장에서의 외국인 투자자의 높은 영향력과 수출 중심의 경제구조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사실 세계경제가 호황일 때 우리기업의 수익이 증가하고 그에 따라 외국인의 주식투자도 증가하는 패턴을 보여 왔다. 다시 말해 위험자산인 국내 주식시장의 변동성이 원화환율의 변동성도 높일 수 있어 원화가 안전자산으로서 자리 잡는데 방해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특히 외국인 주식보유 규모는 채권보유 규모보다 4배 이상에 달한다. 그러므로 선진국발 금융위기라는 시험대를 거치지 않은 상황에서 원화의 위상 제고는 사상누각일 수 있다.

또한 우리경제를 둘러싼 지정학적 위험은 거의 상수인데다가, 전체 대외자산 중 민간부문의 대외자산 비중도 낮아 국제금융시장이 불안정하더라도 민간이 보유한 해외투자자금의 국내로의 회귀 가능성도 크게 낮아 보인다. 일본의 경우 민간이 보유한 해외채권 및 주식 규모만 하더라도 중앙은행이 보유한 대외준비자산의 2.7배 정도이고 전체자산은 5배에 이른다. 반면 우리나라의 경우 해외증권투자 금액의 85% 이상을 중앙은행이 보유하고 있어 일본식의 투자자금 본국회귀에 의한 환율절상의 가능성은 크게 낮다.

또한 무역거래에서의 원화거래 비중은 극히 제한적이고 역외 원화채권 시장도 형성되어 있지 않다는 점도 지적할 수 있다. 외국인 투자자의 투자대상과 범위가 상당히 제한돼 있어 원화를 보유할 유인도 떨어지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국제금융거래에서 원화의 비중이 점차 증가하고 있으나 전체의 1.1%로, 터키나 싱가포르에서도 비해서도 낮은 수준이어서 거래량이 많고 유동성이 높은 금융시장을 보유해야하는 안전통화의 특징과는 거리가 멀다.

이러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원화의 국제적 위상이 점차 높아지면서 2008년과 같은 환율 급변동이 다소 완화될 수 있다는 점은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반면 외국인 투자자의 채권매수 증가는 세계경제가 침체 국면에 접어들면 국내주식과 원화 가치가 하락하면서 나타나는 환율의 자동안정화 메커니즘을 약화시킬 수 있다. 금융정책 측면에서도 외국인의 채권매수 증가로 인해 장단기 금리와의 관계뿐만 아니라 통화정책의 효과가 과거와는 다를 수 있다는 사실에도 주의를 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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