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주옥(수필가).

[검경일보 특별기고/ 이주옥(수필가)] 우리민족처럼 노래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또 있을까? 예로부터 슬픈 일에나 기쁜 일에나 노래가 있었고 울면서도 노래로 자신들의 감정을 마무리했다. 상여 뒤를 따라가는 만장가의 구슬픈 음조에 슬픔은 배가됐고 노를 저으며 강을 건널 때도 노래를 부르며 힘을 냈다. 뙤약볕에서 밭을 매던 아낙의 설움도 호미자락 두드리며 부르는 노래 한곡조면 끝났다. 요즘 아이돌 가수들의 파격적인 가사와 현란한 몸짓도 그들의 리얼한 노랫말과 흥은 따라 올 수 없는지도 모른다. 그 중 애조 띤 단조의 트롯은 기쁘고 즐거운 날에도 결국은 피날레로 장식될 만큼 우리 정서의 기본 가락이다.

대략 25년 전 우리나라 최초의 노래방이 부산에 생겨났다. 그 것은 한과 아픔이 많은 사람들에게 신세계 문화였다. 밤이면 밤마다 한 잔 술로 목을 축이고 노래방에서 목청껏 노래 몇 곡 부르고 나면 하루 동안 쌓인 노동의 피로와 관계에서 쌓인 울화가 씻은 듯이 풀렸다. 어깨동무 한 채, 함께 노래 부름으로써 팽팽했던 긴장의 상하 관계가 허물어지고 오래 가슴앓이 한 사랑이 이루어지고 쓰라린 이별도 달랬으니 그 공로는 가히 노벨 평화상 감이었다. 동창 모임, 주중 회식, 연말 모임에 자동 코스인 노래방은 우리나라 국민들을 수준급의 가수로 만드는 데 지대한 공헌을 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노래와 춤을 좋아하는 민족성 때문일까. 어디나 사람들이 모이는 곳엔 노래자랑이 백미중의 백미다. 몇 년 전 내로라하는 실력파 가수들이 서바이벌로 경연을 해서 매주 탈락자가 생기고 그들이 울고 웃는 것을 안타깝게, 때론 즐거워하며 시청했던 때가 있었다. 그것을 시작으로 요사이 부쩍 TV 각 채널마다 조금씩 포맷을 달리한 노래 경연 프로그램이 생겨났다. 그것도 가수가 아닌 일반인들이 출연해서 기량을 뽐내고 끼를 발산하고 있다. 누가 프로고 아마추어인지 실력도 모습도 구분이 어렵다.

춤과 노래에 재능이 있는 어린이의 재롱 이상의 실력에 감탄하고 자식 같은 청년들의 절절한 감성에 어른인 우리들도 넋 놓은 채 빠져 들곤 한다. 또한 자타공인 실력파 기성 가수에게 과감하게 도전해서 그들을 가차 없이 무너뜨리는 것을 보면 대한민국엔 보석 같은 아마추어 가수들이 얼마나 많이 숨어 있을까 싶다. 나 또한 프로패셔널한 사람들의 테크닉이 겸비된, 부르기 위한 노래보다 순수한 아마추어들의 진정성 있는 노래를 듣는 것이 더 좋다. 그들에게는 기성가수들에게 느낄 수 없는 신선함과 순수한 감성이 묻어 나오기 때문에 더 흐뭇하고 응원하는 맘이 생기는지도 모르겠다.

난 요즘, 기성가수와 일반인들이 듀엣으로 뭉쳐서 들려주는 노래 프로그램에 빠져있다. 그들의 환상적인 화음이 얼마나 귀를 호강시키는지 탄성이 절로 나온다. 작년엔 조금은 투박한 외모와 무표정한 얼굴의 스무 살 청년의 감성에 주말을 손꼽아 기다렸고 세상 고뇌와 진실을, 낮은 음색으로 토해내던 젊은이의 노래에 한동안 가슴을 적시기도 했다. 요즘은 잊혀졌던 20년 전의 가수들과 노래를 소환해서 들으며 그 시절의 풍경과 사람들과 함께 추억 속을 걷고 있다.

요즈음 산과 들은 만화방창이고 사람들은 주체할 수 없는 상춘으로 출렁 거리고 있다. 그에 따라 어디서나 흥겨운 노랫가락이 흘러나온다. 그동안 흥을 숨기고 있었던 여자들은 부엌 한 쪽에서 콧노래로 흥얼거리다가 모처럼 밖으로 나와 마이크 잡을 기회가 생기면 감춰 두었던 노래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남자들 또한 자신이 마신 술의 양만큼 목소리를 꺾어 자신의 이야기 닮은 가사에 심취해 노래하며 한 세상 시름을 달랜다. 우리의 자식들은 또 어떤가. 부모가 품은 한과 발산하지 못한 흥을 대신 풀어주기나 하는 듯 어디서나 당당하게 기타를 튕기고 피아노를 치며 노래를 부른다. 그나마 그들은 부모처럼 숨어서가 아닌, 화려한 무대, 눈부신 조명 아래에서 아빠 엄마가 다 못한 이야기를 대신 풀어내듯 노래 부른다. 그래서 지금 대한민국은 어디서나 노랫소리가 들리고 노래 잘 하는 사람이 넘쳐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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