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주옥(수필가).

[검경일보 특별기고/ 이주옥(수필가)]사람이 가지고 태어나는 모습을 우리는 흔히 태생이라 정의한다. 그건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것이다. 내 의지와는 상관없는 철저한 조물주의 맘이다. 우리들 인간은 그 분 맘대로 주물럭거리는 수제품(?)이었을까. 그 날 그 분의 컨디션에 따라 천차만별의 외모가 만들어졌을 것이다. 그야말로 순전히 운수보기일지 모르겠다.

외모지상주의라 해도 과언이 아닌 세상이다 보니 가끔은 골고루 다듬어주지 않은 조물주의 제조에 야속할 때도 있다. 뛰어난 외모는 물론 내적으론 탤런트 적인 요소까지 갖춰야 살아가기가 편한 세상. 그러다 보니 그저 평범함으로는 세상사, 인간사에서 버텨 내기가 녹록치 않다.

언젠가 어느 여대생이 발언한, 남자 키로 부터 시작된 루저(loser). 사전 상 의미로는 패자라는 의미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부족한 외모에 국한되고 말았다. 남자라면 키가 180cm은 기본으로 팔뚝에 단단한 이두박근은 필수로 매달아야 되고 배에 단단한 식스팩 정도는 갖춰야 한다. 여자도 키 170cm를 향해 성장판 검사를 수 없이 하고 몸무게 50kg을 넘는 건 죄악시 됐다. 갸름한 얼굴을 만들기 위해 시도 때도 없이 살을 밀어내고 골격의 틀을 매만진다. 그나마 주사 한 방도 무서워서 도리질하는 나는 길고 조금 각 진 얼굴형을 말년운이 좋을 거라고 애써 자위하며 산다. 외모는 물론 목소리까지 인위적으로 바꿀 수 있는 시대. 하지만 아무리 보여지기 위한 물리적인 시술이나 치장을 해도 본래부터 갖고 태어 난 비주얼이 부족하면 뭇사람들의 인정이나 대접을 받기가 쉽지 않다.

언제부터 우리나라 사람들 키가 170cm를 기준점으로 넘나들었는지, 언제부터 드러나는 살이 부끄러운 치부가 되어 버렸는지…. 심지어 어느 남자가수는 그녀의 V라인,S라인이 죽여준다고 엄지손가락을 치켜들며 우리 가여운 수많은 루저들의 기를 죽였다.

본래 우리 민족은 작은 사람들이었다. ‘작은 고추가 맵다’는 우리민족의 은근과 끈기 거기에 뚝심까지 합친 상징적인 표현이었다. 어느 곳에서든 그 매운맛을 단단히 보여준 작은 고추의 위력. 특히나 스포츠세계에서 이 작고 실한 청년들이 세계무대에서 보여준 뚝심과 저력은 우리민족의 자랑이기도 했다. 또한 배나 얼굴에 적당히 붙어 있는 살은 여유와 부富의 상징이었다. 피죽 한 그릇도 못 먹은 듯 삐쩍 마른 딸은 친정 대문조차 당당하게 들어가지 못하는 결격 사유였다. 하지만 언제 부턴가 살찐 자식은 부모님에게 살며시 옆구리 꼬집히는 애물이 됐다.

거리엔 훤칠하고 미끈하게 빠진 조각 같은 젊은 남자가 넘쳐난다. 군살 없고 늘씬한, 걸어 다니는 마네킹 같은 젊은 여자들이 도열 하듯 늘어섰다. 하지만 그들의 그런 모습들을 지키기 위한 돈의 헌신과 몸의 혹사를 생각해봤는가. 그야말로 뼈를 깎고 살을 쥐어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과학자들은 젊음과 아름다움을 지키기 위해 필요한 것은 몸의 운동이 아니라 오히려 뇌의 운동이라고 강조한다. 바로 지적 소양을 쌓는 것이다. 알려고 노력하고 배우려고 노력하고 기억하려고 노력하는 것. 머리에 든 것 없이 그저 몸만 보여 지기 위해 노력하지 말자는 얘기다.

이 땅의 착하고 소박한 많은 루저(loser)들이여. 기죽지 말고 걱정하지 말자. 사람에게 자격지심은 때론 겸손함이 되고 적당한 콤플렉스는 현재보다 더 나아질 수 있는 노력의 계기가 된다. 우리는 모델처럼 키가 크지 않지만 작고 천연덕스러운 몸짓으로 성실하게 내 생을 잘 아우르고 있다. 적당히 가려진 뱃살의 묵직한 힘이 흔들리지 않는 뚝심이 되어 이 세상을 잘 이끌어가고 있다.

나는 사람이 본디 가지고 있는 인성과 진실함은 반드시 제 값을 하며 보여지는 외모보다 그 가치를 더 한다고 믿는다. 마음 따뜻하고 흔한 루저로 살아가는 건 세상의 낙오자가 아니다. 이 세상의 중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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