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주옥(수필가).

[검경일보 특별기고/ 이주옥(수필가)] 세상에 가장 생동감 있고 희망적인 단어를 고르라면 나는 주저 없이 청춘이라고 말하겠다. 가장 빛나고 가장 싱그럽고 살아 숨 쉬는 이름, 청춘. 그래서 못내 그리운 이름이다.
내겐 20대인 두 딸이 있다. 찬란한 청춘의 시기다. 고슴도치 엄마 눈에는 외모도 청춘의 단어에 어울리게 빛나고 인성도 별 부족함이 없는 아이들이라고 자부한다. 아쉽게도 그런 딸들이 모두 솔로다.

두 번의 연애를 아름답게 마무리하지 못한 큰 딸은 다시는 남자를 만날 생각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또한 제 말로는 꽤 맘에 드는 남자가 있었으나 일주일간 썸만 타고 말았다는 웃지 못 할 사연을 가진 둘째 아이는 모태솔로나 마찬가지다. 그런 아이들에게 연애가 빠진 청춘을 무엇으로 얘기하려냐고 묻는 나는 그저 연애 찬미주의자이며 몽상가 일뿐이다.

큰 딸에게 연애란 피곤한 일이다. 연애가 그저 한 남자가 주는 사랑을 해맑게 받아들이기만 하는 일이 아니고 챙기고 눈치보고 감수가 따르는 피곤한 일이란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무모할 만큼 열정적이고 뜨거워야 할 연애가 어쩌다 누군가를 구속하고 신경 쓰고 챙겨야 하는 두렵고 소모적인 일이 돼버렸을까? 그저 안타까운 일이다.

요즘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물질적이든, 정신적이든 손해 보는 일은 안하려고 한다. 특히 젊은이들은 모든 것이 일방적이어서도 안 되고 손익 계산을 해서 내가 조금 더 손해 보는 건 촌스럽고 현대적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보인다.

데이트 비용이 모두 남자 몫이던 시절이 있었다. 기사도라는 이름으로 데이트 시작부터 귀가까지 온전히 책임을 지는 게 남자의 역할이라고 생각하는 관념도 있었다. 하지만 요즘 데이트엔 더치페이는 필수다. 남자가 밥 한 끼를 사면 적어도 커피 값은 여자가 내야 매너 있고 개념 있는 사람이 된다.

남자들은 더 이상 여자에게 받는 것 이상을 주려고 하지 않는다. 철저하게 give&take다. 사랑하는 그녀에게 하늘의 별도 달도 다 따다 주겠다는 남자의 기백은 전설 같은 이야기다. 머리를 잘라 남자의 술병을 채워주던 여인의 이야기 또한 고전소설에나 나오는 가슴 서늘한 순애보다.

요즘 20~30대 젊은이들은 미래가 없다고 절망한다. 그래서 안온한 집보다는 근사한 차를 사고 브랜드 옷을 입고 즐기는 삶을 택한다고 한다. 당장 내일이 어찌 될지 모르는데 지금 이 순간 누리고 즐기자는 의식이 만연한 상황이다. 이런 20~30대의 절망에 연애는 사치고 피곤한 가능하면 선택하지 않는 삶의 행로다.

3포(연애, 결혼, 출산)와 5포(3포+내집. 인간관계)를 넘어 꿈, 희망 등 모든 삶의 가치를 포기한 'N포 세대'로 통칭되는 20~30대 중에는 '오늘만 산다'는 이들이 적지 않다. 그런 그들에게 누군가와 함께 삶의 풍파를 헤쳐 나가며 인생을 동반하는 것은 오히려 짐이고 고통일 뿐인 모양이다.

간혹 아이들과 마주 앉아 미래를 얘기할 때 긍정적인 것 보다 부정적인 생각을 더 많이 듣게 된다. 결혼이 특히 그렇다. 가뜩이나 나약하고 실망스런 남자들의 범죄가 아이들에게 결혼을 포기하게 만드는 원인이 돼버린 것이다. 인생의 가장 찬란한 시기인 청춘. 두려움도 부정도 절망도 없어야 할 나이 아닌가. 무엇이든 할 수 있고 도전하려고 하고 그 결과까지 포용할 수 있어야 하는 시기다.

아름답고 찬란한 청춘들이 앞뒤 꼭 막힌 절망의 유리벽에 갇혀 생기가 없다. 더 이상 꿈을 꾸지 않는다. 청춘은 피었다 지는 꽃처럼 속절없이 지나간다. 오래 머물러 주지 않는다. 희망을 갖고 무엇이든 해보아야 한다. 뜨겁게 연애도 하고 결연한 의지로 결혼도 해봐야 한다. 유리 벽안에 들어 앉아 절망으로 포기하지 말고 그 벽을 과감하게 부수고 나와 저 넓은 세상의 들판으로 나서야한다. 빛나는 태양을 보듬고 힘차게 뛰며 어쩌다 부는 사나운 비바람도 온전히 맞아가며 주어진 생을 맘껏 껴안고 누려야 하리라.

저작권자 © 검경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