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설가 옹윤례.
[검경일보 객원 필자 기고/ 소설가 옹윤례] 신호등의 파란불이 조급하게 깜박거렸다. 길을 건너던 사람들이 갑작스레 우박이라도 맞은 듯 재빨리 뛰며 길을 건넌다. 미처 길을 건너지 못한 나는 길을 건너려다 그 자리에 우뚝 멈춘다. 도시의 한복판에, 그것도 엄동설한에 어울리지 않은 소리의 출현 때문이었다.

삐악 삐악. 웬 병아리 소리지? 나는 내가 서있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러나 주위를 채 탐색하기도 전에 물의 흐름처럼 신호등을 향해 뛰고 있던 사람들이 나의 갑작스런 멈춤에 못마땅한 듯 더러는 나를 툭 치고 더러는 나를 앞지르다 왜 그래? 하는 표정으로 인상을 쓰며 흘낏 쳐다본다.

나는 팔목으로 흘러내린 핸드백을 다시 어깨로 끌어당기며 뒤를 돌아본다. 그러나 아무것도 없었다. 병아리 비슷하게 생긴 그 어떤 것도 찾을 수 없었으며 모두들 나를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적의를 품은 시선들을 바로 보지 못하고 나는 얼른 돌아섰다.

환청이었나? 나는 양손을 호주머니에서 끄집어내 높은 산을 오를 때 귀가 멍해지면 하듯이 가볍게 양쪽 귀를 두드렸다.

어느새 신호등은 빨간불로 바뀌어져 있었다. 나는 다시 뒤돌아서 재빨리 뛰었다.

삐악삐악. 다시 병아리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재빨리 주위를 훑어보았다.

젊은 여자가 막 세네 살쯤 되어 보이는 아이의 손을 잡고 활짝 웃으며 그 자리에 서있었다. 마치 병아리처럼 모자가 달린 노란 옷을 입고 있는 아이는 아스팔트 바닥을 내려다보며 오른발을 치켜들고 있었다. 빨간 리본이 달려있는 신발이 바닥의 검은색과 노란색 옷에 끼여 선명했다.

젊은 여자는 웃음을 참으려는 듯 한손으로 입을 가렸다. 여자의 손목에 매달린 검은비닐 봉지가 대롱거렸다. 그들 뒤에 오던 사람들이 그들을 추월하며 얼굴에 미소를 띤 채 뒤돌아본다.

내가 환청을 들은 건가? 어쩌면 그의 전화도 환청이 아니었을까?

나, 현우야......살아있었구나, 하하하......언제 술 한 잔 하자......가만있자, 이번 주 토요일은 출장을 가야 되고, 내일은 대학원 수업이 있고...... 오늘 만날까?......집이 아현동이랬지? 아직도 거기 사나? 오늘 5시에 길 건너 편의점 앞에 서있어......내가 데리러 갈께......찰칵, 뚜우뚜우, 뚜뚜뚜뚜 위이잉.

나는 한참동안 수화기를 들고 있었다. 수화기에서는 멀리서 바람 부는 소리가 세차게 들려왔다. 나는 마침, 아침 겸 늦은 점심을 먹으려던 참이었다. 땡감을 먹은 것처럼 가슴이 답답해지면서 목에 뭔가가 박혀있는 느낌이었다. 입안에 있는 밥알을 씹어 억지로 꿀꺽 삼켰다. 그러나 침만 삼켜지고 밥알은 채 삼켜지지 않았다.

어린 시절 해충 약을 먹으려고 물을 몇 컵씩 마시지만 약은 그대로 있고 마이신 껍질만 벗겨져서 그 안에 쓴 약가루가 입안에 퍼지듯 쓰디쓴 물이 입안에 가득 고여 있다. 그리고는 독처럼 온몸으로 퍼진다. 나는 방안에 흩어져있는 반찬을 주섬주섬 챙겨 냉장고에 넣었다. 아, 아 퍼. 나는 속으로 비명을 지르며 씹던 음식을 쓰레기통에 뱉어 냈다. 그래도 아직 입안에 남아있는 밥알을 삼키기 위해 물을 한 모금 마셨으나 물마저 가슴 저 밑바닥에서 그 무엇과 같이 올라왔다. 얼굴에서 뜨거운 것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꿈이었나? 나는 한동안 눈물을 쏟아내고 나서야 다시 수화기를 내려 다 보았다. 실제 상황인지 아니면 잠시 꿈을 꾸었는지 분간할 수 없었다. 현실이라고 믿기엔 지금까지 꿈속에서 너무나 많이 겪었던 상황이었다.
그는 느닷없이 7년만의 공간을 아무렇지도 않은 듯, 마치 어제 만났던 사람처럼 태연하게 하하하, 웃으며 얘기했다. 편의점 앞에 서있어, 내가 데리러 갈께.

삐악삐악. 나는 그 소리에 문득 정신을 차리고 소리 나는 쪽을 바라보았다. 병아리 울음소리의 정체는 바로 병아리 모양 온통 노란색 옷을 뒤집어쓴 아이의 신발이었다.

허공에 들린 아이의 조그만 신발이 바닥에 닿을 때마다 삐악, 하고 비명을 질렀다. 그 소리에 놀란 아이는 새까만 눈동자를 동그랗게 굴리며 발바닥을 이리저리 살폈다. 그러다가 또 한걸음 떼고는 삐악, 소리에 놀라 멈춘다. 정말 한 마리의 병아리가 나들이 나온 것 같다. 갑자기 아이는 엄마 손은 놓고 양팔을 내두르며 앞으로 달려간다.

삐악 삐악 삐악 삐 삐삐.

지나가던 사람들이 일제히 뒤돌아본다. 아이는 제 엄마를 찾는 듯 뒤돌아보다가는 갑자기 땅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울음을 터트린다. 웃고 있던 엄마는 얼른 달려와 아이를 안아 올리고는 아이의 발에서 신발을 떼어내 아이의 손에 들려준다. 그러나 아이는 더 큰 소리로 울어댄다. 아앙--.

나도 저렇게 소리 내어 울고 싶다. 평강공주보다 더 오래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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