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설가 옹윤례.
[검경일보 객원 필자 기고/ 소설가 옹윤례] "어두워서 찾을 수가 없어. 그만 내려가자."
드디어 그가 체념을 했는지 말을 꺼냈다.
우리는 끝내 욕망의 무한대라는 토르소를 찾지 못하고 토탈 뮤지엄을 나왔다. 온 세상을 빨아들일 듯 깊은 정적감이 들었다.
초가로 지붕을 엮은, 움막처럼 동그랗게 생긴 카페는 이미 문이 닫혀 있었다. 늘 그랬다. 너무 빠르거나 늦었다. 그와의 만남 또한 모든 게.

화사랑은 담배연기가 자욱했다. 그는 오징어불고기와 동동주를 시켰다. 그는 속주머니에서 명함을 꺼내 나에게 주었다. 언젠가 본 소설책에서 주인공은 사랑하는 남자를 떠나보낸 뒤 잠 못 이루고 창밖에 기대어 울고 있었다. 주인공은 그리움에 지쳐 남자의 사진과 자신의 사진을 포갠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사진을 마치 남녀가 하나가 되듯이 하나로 겹쳐진다. 그런 주인공의 모습을 훔쳐본 언니가 하도 신기해서 다음날 아침 그 사진들을 꺼내 포개본다. 그러나 사진의 크기가 맞지 않아 겹쳐지지 않았다. 언니는 아마 하나가 되고 싶어 하는 사랑의 힘이 그런 기적을 나은 것 같다고 생각한다. 나는 소설속의 주인공처럼 그의 명함과 나의 명함을 합쳤다. 놀랍게도 그의 이름 세자와 나의 이름 세자는 어긋나지 않고 정확히 겹쳐졌다.

"지금도 술 많이 마시냐?"
"아니. 내가 언제 술 많이 마셨어?"
"너 항상 많이 마셨잖아. 성년식 땐가 나이대로 마신다고 소주 스무 잔을 마시고 뻗은 것 기억 나냐? 그 때 스쿨버스 안에서 잤어. 커튼을 뜯어서 이불로 쓰고..."
" 내가 언제 그랬어?"
"기억이 안 나는 거야? 다음 날 아침 일찍 수원식당에서 해장국도 먹었잖아."
몰라. 그가 답답하다는 듯 막걸리 잔을 입에 댄다.
"너랑 남원 갈 때 기차 안에서 너 가 내 얼굴을 만졌다. 사람들이 다 보는데. 왜 그랬냐?"
"내가? 나 그런 적 없어."
"정말 생각 안나? 아마 그때가 오월 이었을 거야."
"모르겠어. .....옛날에 새벽 1시엔가 너 가 무슨 호텔이라고 하면서 오라고 했어. 그 때 왜 그랬어?"
"내가 언제?"
"아이 참, 내가 택시타고 호텔 앞에서 내리자 너 가 기다리고 있다가 택시비까지 냈잖아. 205호실이었지, 아마"
"기억이 안나."
"아마 겨울이었을 거야. 커피요람이라는 카페에서 너 가 막 울었다. 왜 우냐니까 다음에 말해준다고만 했어. 왜 그랬어?"
"몰라."
"우리가 꼭 기억 상실증 환자가 된 거 같아."
"......"
"왜 내가 기억하는 건 너가 기억하지 못하고 너 가 기억하는 건 내가 기억할 수가 없지. 참 슬프다. 추억마저 공유하지 못하고... 우린 왜 그럴까?"
"글쎄, 추억도 자기가 기억하고 싶은 것만 기억하는 게 아닐까? 잊어버리고 싶은 것은 잊어버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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