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주옥(수필가).

[검경일보 특별기고/ 이주옥(수필가)] 유난히 다양한 교통수단으로 인해 일어나는 크고 작은 사건 사고가 계속해서 터지고 있다. 대내외를 막론하고 크게는 비행기 추락 사고를 비롯해서 작은 원동기 사고까지. 그로 인해 아까운 생명들이 목숨을 잃고 몸을 다치고 있다.

얼마 전 일어난 강원도 터널 5중 접촉사고도 드러난 원인은 졸음운전이었지만 충분한 차간 거리만 유지했어도 그토록 무모하게 앞차를 들이받는 것은 피할 수 있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운전자들이 규정 속도를 지키고 충분한 차간 거리만 유지한다면 큰 사고가 일어날 확률은 반으로 떨어질 것이다.

나 또한 종종 너 댓 시간 먼 거리를 차로 달릴 때가 있다. 고속도로를 오랜 시간 달리다보면 속도에 무감각해지기 쉽다. 가속이 붙어 자칫 방심하다보면 엑셀레이터에 힘을 주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긴장하지 않으면 어느새 앞 차의 뒤꽁무니에 바싹 붙어 있곤 한다. 그 결과 과속에 따른 범칙금 고지서는 어쩔 수 없이 감당해야 할 덤이지만 목숨이 위태로운 공포를 느낄 때마저 있다. 그나마 요즘은 네비게이션이 경고음을 내서 자제를 시켜주니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고속도로에서의 차간 거리는 최소 100m를 유지해야 한다. 고속도로 1차선은 차선 변경을 위해 남겨두고 2차선 이상을 이용하라는 준수 사항도 있다. 그런데도 종종 차선을 바꾸기 위해 시도하다보면 1차선을 내달리며 바짝 쫓아온 차 때문에 번번이 기회를 놓치기도 하고 추돌 위험을 느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운전은 특히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앞 차 옆 차 적정거리를 유지해야 하는데도 말이다.

교통사고는 인명피해를 동반한다. 즐거운 수학 여행길에 나선 우리의 소중한 아이들, 나들이 길에 나선 일가족, 모처럼 허리 펴고 노동의 시간을 벗어난 노인들이 여행길에서 운전자의 실수로 목숨을 잃고 육신을 상하니 이 얼마나 애석하고 슬픈 일인가.

고사성어에 불가근 불가원不可近 不可遠이라는 말이 있다. 풀이를 하면 ‘너무 가깝지도 않게, 너무 멀지도 않게’라는 뜻이다. 중용, 특히 거리距離의 원칙과 중요성을 단면적으로 말하는 듯해서 내가 늘 마음에 품고 있는 말이다.

비단 도로 위의 차와 차 사이의 거리를 말하는 것만은 아니다. 사람과 사람 관계에도 늘 적당한 거리가 필요하다. 관계는 서로 접촉하고 소통함으로 맺어지지만 또 그만큼 신중해야 하고 또 예민함이 있다. 너무 가까워서 생기는 밀착의 부담과 또 너무 멀어서 생기는 괴리가 얼마나 그 관계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지 한두 번 씩 경험 했을 것이다.

가깝다고 상대를 다 아는 것도 아니고 또한 멀리 있다고 해서 상대를 모르는 것도 아닌 거리의 오묘함. 부부나 부모자식 간에도 너무 가까이 있어서 오히려 보이지 않고 못 봤던 것들이 얼마나 많던가. 너무 가깝다고 믿었던 마음에서 오는 상실과 상처는 타인보다 훨씬 컸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적당한 거리에서 오는 약간의 긴장은 배려와 이해의 마음을 심어준다. 또한 관계를 더욱 끈끈하고 오래 지속 시켜 주기도 한다.

집과 집 사이 골목과 골목 사이에도 바람이 지나갈 틈이 있다고 한다. 빽빽하게 들어선 높다란 빌딩들과 다닥다닥 붙어 있는 아파트들 사이에도 마찬가지다. 소위 말하는 바람길이다. 바람길은 상징적으로 소통이고 숨이라고 생각한다. 차와 차 사이, 길과 길 사이. 사람과 사람사이의 거리. 그 거리 사이에 있는 틈으로 우리는 숨을 쉬고 제대로 바라보고 올바르게 이해를 하게 되는 것이리라.

앞 차에 바짝 붙어 따라갔던 까닭에 부딪혀서 일어난 차 사고, 너무 밀착 되어진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피할 수 없는 충돌, 좁은 평행선으로 대치한 길과 길 사이의 숨 막히는 긴장감은 틈이 없고 거리를 유지하지 못한 데서 일어나는 것 같다. 언제 건, 무엇이든, 필요한 곳과 필요한 만큼의 거리距離는 우리 사는 세상에 가장 아름다운 미덕이며 건강한 호흡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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