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설가 옹윤례.

[검경일보 객원 필자 기고/ 소설가 옹윤례] 엉굴할매와 순둥이네 가족이 그렇게 동네를 떠났다. 어른들은 그들의 뒷모습을 보며 가여운 눈초리로 혀를 차고 아이들은 그들의 뒷모습을 부러운 시선으로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순용이와 순분이의 빨간 구두가 먼 산에 막 피어나기 시작하는 진달래모양 한 점으로 보일 때까지.
나는 검은 지푸라기를 얼굴과 옷에 잔뜩 묻힌 채 집으로 돌아왔다.
아빠, 우리는 언제 이사가?
여름방학이 얼마 남지 않았다.
영희와 명순이는 방학숙제를 보여 달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나는 아버지 몰래 숙제 장을 꺼내 영희에게 가져다주었다.
영희와 명순이는 저수지 옆 둑 위에 엎드려 내가 한 숙제를 베꼈다.
나는 그 옆에 앉아 삐삐 거리며 풀피리를 불었다.
멀리서 왕매미가 요란하게 울어댔다.
동구 밖에서 아버지와 고모가 나란히 걸어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나는 숙제 장을 빼앗아들고 얼른 아버지에게 달려갔다.
뚱보였던 고모는 서울 가서 봄과 여름을 보내는 사이 늘씬한 아가씨가 되어 돌아왔다.
부은 것 같던 눈두덩은 퀭하니 깊은 눈이 되어있었다.
고모는 나를 보자 살짝 웃었다. 딴 사람 같았다.
할머니는 닭을 잡고 고모가 좋아하는 떡까지 해 놓았으나 고모는 닭고기 하나 손을 대지 않았다.
할머니가 걱정스럽게 물었다.
분님아, 어디 아프냐?
아니어라. 엄니. 살찔까봐서요.
살 좀 쪄야 제. 한 석 달 굶은 사람 얼굴을 해가지고 살찔 걱정하고 있냐?
서울 가서 못된 것만 배워가지고...
그러나 고모는 국물만 몇 모금 후루룩 마신 뒤 힘없이 일어났다.
아빠, 고모가 왔으니까 우리도 이제 이사 가는 거야.
아버지는 아무 말도 않고 할머니를 바라보았다. 할머니는 수저를 놓고 밖으로 나갔다. -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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