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환근.

좀 민감한 얘긴데, 오해 없이 읽어들 주셨으면 한다.

2012년 대선 때 안철수가 도와주지 않아서 졌다는 책임논란이 일 때,
나는 안철수는 참 억울하겠고,
그렇게 말하는 우리당 사람들은 찌질 함을 스스로 고백하는 우를 범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현격한 차이도 아니고,
여론 조사 상으로만 보면 막상 둘이 붙어서 누가 이길지도 모르는 판국에,
어떻던 한사람이 기권을 해버리고 거기다 지지선언까지 했다면, 그냥 그 자체로 매우 고마운 일이다.

경기도에서 두어 번, 광화문 문재인 유세현장에서 한 번, 직접 안철수가 나타난 걸 봤는데
뭐, 특별히 무성의하거나 문제 있어 보이지 않았다.
그 정도만 해도 많이 도와줬다 생각한다.
같은 당도 아니고, 안철수가 건사해야할 당이 있는 것도 아닌 그저 혈혈단신에다가, 정권 나누기를 약속한 것도 아니지 않은가.

2002년 대선에서 정몽준이 막판에 한 일을 생각해보고,
김대중. 김영삼이 87년 끝까지 단일화 못한 걸 생각해보면 된다.
안철수가 부처님 가운데 토막이 아닌 바에야,
속 좋게 열정에 넘쳐서 온 몸 다 바쳐 봉사해줄 걸 기대하는 게 오히려 욕심 아닌가.

이러저런 걸 떠나서 선거를 지는 건 모두 나의 책임일 뿐이다.
선거는 그 모든 변수를 고려해야 하는 승부이지,
패배의 탓을 타인에게 돌리거나, 어떤 다른 곳에서도 이유를 찾아서도 안 된다.
그래서 사실 이 논란이 확대될수록 민주당에게는 그 닥 득 될 일이 없었고, 상식적인 사람들은 안철수가 좀 억울하겠다 싶었을 거다.

그런데ㅡ,
이 모든 걸 안철수 스스로가 한방에 날려 버렸다.
그가 회고록을 쓰는 은퇴자라면 무슨 말을 해도 상관없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표를 놓고 경쟁하는 현역이다.
"짐승보다 못하다"는 표현은 중간적 입장의 사람에게는 "패배는 안철수 탓"의 민주당보다 훨씬 당혹스럽다.

대통령후보가,
아직도 여전히 힘을 합쳐서라도 꼭 정권교체 하라는 사람들이 많은 상황에서,
연대해야 하는 대상을 향해 "짐승만도 못한~"이란 표현은,
아무리 억울하다 해도 깽판의 언어 이상으로 읽히지 않는다.

정치인들이나 열혈지지자들이 착각하는 게 있는데,
문재인지지자가 많지만 사실 목숨 건 열혈들은 소수이고, 문재인 반대자도 그만큼 많지만,
역시 애비죽인 원수처럼 생각하는 극렬반대자는 생각만큼 많지 않다.
그의 지지율이 적을 때는 16~17%에서 많을 때는 30~40%로 왔다, 갔다한다는 건 그만큼 유동성이 많다는 거다.
정치인에 대한 지지란 게 원래 그렇게 흐름과 분위기를 타는 것이다.

안철수 본인 역시 한때는 30%가 훌쩍 넘는 지지를 받아본 정치인 아닌가.
그런데 한때 자신을 지지했던 사람을 되돌리는 건 순전히 자신의 노력에 의해서다.
사람들 중 일부가 "짐승보다 못한~"에 적극 동의한다 해도 그 사람들은 지금도 열렬히 안철수를 지지하는 일부일 뿐이며,
설혹 아니더라도 문재인에 대한 지지철회가 안철수로 돌진 않는다.

사람들은 "오늘의 말"을 "과거의 행적"보다 훨씬 중요하게 생각한다.
박근혜가 적폐의 온상이 되어서 온 국민의 외면을 받는 이런 분위기에서 말 몇 마디로 전여옥 같은 게 국민평가단이라 버젓이 TV에 나오는 세상 아닌가.
유승민이 나쁜 정권에 충성했던 그 숱한 세월들을 단지 잘 쓰여 진 원내대표 연설문 하나로 잊어주었던 게 사람 아닌가.

지도자의 언어가 속 시원한 건 좋다.
그러나 대중은 속 시원하되 금도를 넘지 않기를 또한 바란다.
사람들은 억울함을 잘 참고, 어지간한 건 내 탓으로 돌리며, 품격 있는 언어를 쓰는 정치인을 좋아한다.
정치인의 말은 그 정치인을 판단하는 50% 이상이다.
옳건, 그르건.
ㅡ ㅡ,
쭉 읽어 보셔서 아시겠지만, 나는 안철수나 국민의당에 대해 별로 비판을 안 하는 편입니다. 어차피 지지도 안 해줄 거면서 정치인의 행위들에 콩 나라 팥 나라하고 싶지도 않거든요.
그래서 제 비판들은 주로 우리당 주자들이나, 우리당 지지자들의 행태에 날이 서 있는 편이죠.
이 글 역시 그렇습니다.
정치인의 언어에 대한 얘기입니다.
소수의 분들은 선악과 선후와 사태의 공정함을 따지시지만,
많은 사람들은 오늘의 언어를 따질 뿐입니다.
그게 현실이고, 좋은 정치인은 그 현실을 잘 봐야 한다는 생각을 썼을 뿐입니다.
제가 특이하게도 글 쓰며, 오해하지 말아달라고 미리 밝힌 이유입니다.

그리고ㅡ,
새누리를 욕하는 건 그들이 권력으로 국민들에게 직접적 피해를 줬기 때문입니다. 우리당 주자들에 대해서 날이 서 있는 건 그런 우를 범해선 안 되기 때문 이구요.
국민의당은 정권을 잡아서 국민을 괴롭힌 적도 없고, 탈당을 하지 않는 한 제가 지지할 일도 없어서, 잘하니 못하니 말하는 게 결국 연대할 수밖에 없는 대상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 생각하구요.
다만 대권후보로서 정책에 대한 건 기탄없이 검증하고 발언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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