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 시작 네 시간 반 만에 대청봉에 올라섰다. 돌탑에는 ‘해발 1,708m 대청봉’이란 빨간 글씨가 또렷하다. 하늘이 더없이 파랗다. 누군가 코발트색 물감을 뿌려 놓았나보다. 뭉쳤던 가슴이 일순간에 시원해진다. 동치미 한 사발이라도 마신 기분이다. 그것도 잠시뿐, 파란 하늘에 수놓듯 간간이 떠돌던 하얀 구름이 이리저리 급히 몰려다니기 시작한다. 세찬 바람이 뺨을 때리고 내 몸을 밀어댄다. 몸뚱이를 종이비행기처럼 날려 올릴 기세다. 그야말로 상황 급전이었다. 옷깃을 여미고 몸을 한껏 낮춘다. 다리에 힘을 주고 발바닥 전체를 접지시켜 버텨보지만 낭떠러지에 처박힐 듯하다.

중청 대피소로 가는 길로 내려섰다. 좌·우측 크고 작은 바위 틈새에서 ‘바람꽃’이 바람을 온몸으로 맞고 있다. 순백의 옷을 걸치고 무도회라도 연 걸까. 템포가 너무 빨라 위태로워 보이기까지 한다. 바로 그 옆에 바짝 엎드린 나무가 눈에 띄었다. 바늘잎이 다섯 개씩인 것으로 보면 분명 잣나무인데 뭔가 이상했다. 정체가 의심스러워 들춰 보았다. 제법 통통한 몸통이 땅을 기듯이 구불구불 뻗어 있다. 나무껍질은 진한 회색에 가깝고, 잔가지가 무성하다. 짧고 검푸른 잎이 바람에 방향 없이 흔들거린다. 주변을 둘러보니 완만한 경사를 이루는 능선 곳곳에 그런 나무들이 무리지어 똬리를 틀고 있다.

‘눈 잣나무’였다. 남한에서 오직 한 군데, 설악산에만 자생하는 나무다. 누워 있다 해서 ‘눈’이란 접두사가 이름에 붙었다고 한다. 눈측백, 눈향나무처럼 말이다. 눈 잣나무는 대청봉에서 중청봉 능선 좌·우측 완만한 경사면에 자리 잡고 있다. 추운 지방에서 자생하는 북방계 나무로 설악산이 남방한계선이라고 하니 남한에서는 대청봉 언저리에서만 볼 수 있는 귀한 나무다. 힘들게 산에 올라 멋진 풍광에 도취되거나, 청순미를 발산하는 하얀 바람꽃에 홀리고 연분홍 이질풀꽃에 마음 뺏기다 보면 그런 나무가 거기에 있는지조차 모른 채 지나치기 일쑤겠다.

설악산 눈 잣나무는 기껏해야 1m 높이에 5~60 cm 굵기로밖에 자라지 못한다. 재목이 된다는 건 감히 바랄 수 없는 일이다. 눈 잣나무는 평생 단 한 번도 허리 펴고 일어서지 못하고 누워서만 지낼 거다. 푹신한 침대도 아니고 딱딱한 맨땅에서 그러하니 얼마나 불편하고 힘들까. 등창이라도 나면 어쩌려고 그럴까. 마냥 누워만 있으니 저 멀리 다른 세상 구경을 할 수도 없을 테다. 다만 누워서 하늘의 해와 달과 별을 친구 삼고, 변화무쌍한 모양으로 다가오는 구름을 이웃 삼을 뿐이리라.

강한 바람은 친구도 아니고 이웃도 아니다. 친구라 한들 남 잘 되는 것 못 봐서 시도 때도 없이 심술부리는 나쁜 친구일 거고, 어디 딱히 갈 곳도 없는데 이런저런 구실로 동네에서 내쫒으려는 나쁜 이웃이나 다름없으니 차라리 없느니보다 못할 거다. 바람은 때때로 광풍으로 변해서 곧추 서 있는 나무들을 가차 없이 뿌리째 뽑아버렸다. 나무의 허리를 끊어 놓기도 하고, 가지들을 분지르고 잎을 훑어 고사하게도 했다.

눈 잣나무는 대대로 억겁의 세월을 지내는 동안 산등성이에 부는 매서운 바람을 온몸으로 맞으며 다른 나무들이 바람에 쓰러지고 넘어지고, 부러지고, 그러다 죽고 마는 것을 지켜봐야 했다. ‘낮추고, 숙이고, 아예 엎드리거나 눕는’ 것이야말로 생존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는 것을 터득했을 테다. 광풍이 불면 ‘나는 죽었소.’하고 바짝 엎드려 있다가 바람도 지쳐 쉴 즈음이면 돌아누워 언제 그랬냐는 듯 천연덕스럽게 해와 달과 별을 세며, 지나가는 구름을 벗 삼아 이웃 삼아 지내왔을 테다.

눈 잣나무는 열매가 실하지 못해 자손 퍼트리는 일 또한 만만치 않았으리라. 눈 잣나무 열매를 먹고 사는 잣 까마귀라는 텃새의 덕을 볼 수 있어 그나마 다행이었다. 잣 까마귀가 양식으로 묻어 놓았던 열매에서 싹을 틔울 수 있었으니 눈 잣나무는 잣 까마귀에게 절이라도 해야 할까 보다.

한데 그건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게 자연의 이치일까. 까마귀 과 새 가운데 가장 작은 잣 까마귀가 강풍을 뚫고 올라 대청봉에 터를 잡은 이유는 눈 잣나무 열매라는 좋은 먹잇감 때문이었다. 눈 잣나무와 잣 까마귀는 서로 도우며 악조건을 극복해온 것이었다. 얼마 전에는 잣 까마귀들이 채 익지도 않은 눈 잣나무 열매를 따 먹는 바람에 오히려 눈 잣나무 종족 보존을 위해서 보호망을 씌워 잣 까마귀 접근을 차단한 적도 있었다고 한다. ‘영원한 친구도, 영원한 적도 없다.’는 말은 자연계에서도 통하는 말인가 보다.

바람 못지않게 무서운 존재가 바로 사람이었다. 한때는 사람들이 몰려들어 아무 데나 천막을 치고, 나무를 짓밟기 일쑤였다. 겉으로 드러난 뿌리나 몸뚱이마저 아무렇지도 않은 듯 밟고 다니는 바람에 말라 비틀어져 죽은 나무들이 비일비재했다. 그대로 버려두면 멸종할 위기까지 몰렸다. 이럴 즈음 눈 잣나무를 보호하겠다고 나선 것도 사람들이었다. 사람이 다니는 길을 따로 내고, 생태환경을 만들어 준 덕에 요즘에는 개체가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괴롭히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고마운 사람도 있다는 건 세상사 꼭 같은 이치라는 걸 자연 속에서 실감한다.

대청봉 산등성이 여기저기 앙상한 몸으로 서 있는 구상나무들 옆에서 일평생 누워서만 지내는 눈 잣나무는 내 마음을 붙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손잡고 일으켜 세워주고 싶었지만 그럴 수도 없었다. 좀처럼 자기 존재감을 드러내지 않는 겸손한 눈 잣나무, 극악한 조건들을 이겨내는 억척스러움과 불굴의 투지를 웅변하는 눈 잣나무. 제 성질 이기지 못하고 목을 뻣뻣하게 들고 불쑥불쑥 나서기를 좋아하는 내게 몸으로 얘기하고 있었다.

‘때로 몸을 낮출 줄 아는 것도 용기이고 지혜라는 걸 알아둬!’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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