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주옥(수필가).

[검경일보 특별기고/ 이주옥(수필가)] 便(편), 사전적 의미는 ‘여러 패로 나뉜 것들 중 하나하나의 패.’를 말하는 명사다. 사람은 혼자 살 수 없다. 기쁜 일에나 슬픈 일에나 누군가의 관심과 협조와 위로는 살아가는 힘이 된다.

나쁜 일이 있을 때나 좋은 일이 있을 때나 내 입장에 서서 충고하고 격려해 주는 사람은 내가 작정하고 덤비는 일에나 부지불식간에 저지르는 일에 있어서나 대단한 응원군이 아닐 수 없다.

특히나 궂은일에 내 편이 돼서 격려하고 위로를 받는 다는 것은 더하다. 내 편이 있다는 것은 물질적인 재산에 견줄 수 없는 것이다. 아무리 재산이 많고 지위가 높은 사람이라도 희로애락을 함께 해주는 편을 곁에 두지 못했다면 그 소외감은 돈으로도 살 수 없을 것이다.

사람들은 대부분 무리지어 산다. 예전 우리 조상들이 집성촌을 이뤄 상부상조하며 살았던 것도 그렇고 먼 친척보다 오히려 더 낫다는 이웃이 그렇다. 모든 것이 간편해지고 첨단 디지털의 시대라 해도 그것들이 채우고 메워 줄 수 없는 것들은 아직 너무 많다. 요즘 시대는 다변화하고 소가족의 형태가 됐다.

그것도 모자라 심지어 홀로 족들까지 생겨나고 있다. 이런 변화에 맞춰 생활은 거기에 걸맞은 물건이나 환경으로 변해 살아가는 데 부족함 없이 채워주고 있다. 하지만 사람들은 마음의 고독과 정신적 허기를 호소한다. 결국 우리들을 완전하게 채워 주는 것은 결국 가족이며 친구며 이웃임을 증명하는 일이다.

난 그리 맘이 넓거나 남에게 무엇인가를 넉넉히 베풀며 살지 못했다. 하지만 내 주위엔 막강하고 확실한 내 편이 몇 명 있다. 물론 그들은 내 부모나 형제는 아니다. 친구이며 동료, 그리고 이웃이다. 이해관계 없이 순전히 인간적인 신뢰와 정리情理로 연결된 사람들이다.

이성도 있고 나보다 연배가 높은 사람, 나이가 적은 사람도 있다. 그들은 엄청난 부자도 아니고 그럴싸한 직업이나 직위를 가진 사람들도 아닌, 그저 평범한 일상을 꾸리며 소박하게 사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내게 기쁜 일이 생기면 나보다 더 환호성을 지르며 행복해 한다. 어쩌다 내가 외부의 공격을 받아 감정 주체 못하고 흥분할 때에도 나보다 더 분노하고 열 받아 준다. 내가 내 안의 것들과 대치하며 침묵에 빠져 있을 때도 내 입이 열릴 때까지 숨죽이며 기다려 준다. 그러다 감정을 털어내고 어느 날 내 자리로 돌아오면 온 마음을 다해 환영해 준다. 아마 진정한 편이란 그런 것일 것이다.

설혹 내가 사회적으로나 도덕적인 시선에서 약간 비난받을 일을 했더라도 원론적인 시선에서 벗어나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것, 무조건 “네가 옳아.” “너에게 그럴 만 한 이유나 사정이 있었을거야.”라고 믿어주고 온화하게 등 두드려 주는 것. 내 편이 나에게 보여주는 마음과 표정과 몸짓은 엄청난 힘을 가진다.

그 힘으로 본래의 위치나 감정의 영역 안으로 쉽고 빠르게 돌아올 수 있다. 때로 흔들리는 마음의 기복 앞에서 스스로를 채근할 명분을 주고 또 스스로 재생 할 양분이 된다. 어쩌다 꽤 아프고 외로운 날에도 '아, 조금 기댈 사람이 있구나! 내 옆엔 강력한 내 편들이 있구나! 싶어 안도하게 된다.

그러면서 내놓고 얼마간은 감정에 충실하게 된다. 그러나 결국 고마운 그 사람들 때문에 상심과 방황을 멈추고 불끈 힘을 내게 된다. 세상은 갈수록 고립의 현실이 되고 있다. 함께 있어도 그 무리 속에서 시나브로 고독한 게 현대인들이다.

사람들은 더불어 사는 속에서 존재감을 갖고 발전을 하지만 또한 아이러니하게도 무리 속에서 부대끼고 연대 맺어 사는 것을 거부하는 현실이다. 쉬운 예로 지하철만 타도 그들은 사람과 사람으로 관계 맺기보다 스마트 폰 속의 말과 행동에 집중하고 오히려 더 기대고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지 않은가.

누군가는 말한다. 사람의 친구가 꼭 사람일 필요는 없지 않느냐고. 하지만 삶의 가장 든든하고 아름다운 고리는 결국 인간과 인간이 서로 기대고 관계 맺으며 사는 일이 아니겠는가.

인간은 결코 혼자살 수는 없다. 복잡하고 어려운 삶의 행로에서 자주 비틀거리며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다. 발목을 묶고 이인삼각으로 달려야 할 때가 많다. 그 때 어깨를 빌려주고 손을 맞잡아 주고 균형을 잡고 함께 달리는 그 사람들, 바로 그들이 내 편이다. 나는 누군가에게 온 마음 다해 편이 돼주고 있는 것일까.

사소한 호기심과 오해로 누군가를 배척 하지 않고, 비난하지 않고 언제나 신뢰와 든든함으로 온전하고 절대적인 편이 돼 주는 것. 서로의 삶이 더불어 행복하고 아름다워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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