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행복한 댄서 찰리(원윤경) 강사.

[검경일보 특별기고/ 행복한 댄서 찰리(원윤경) 강사] 중학교 국어 교사인 최은정의 출근길은 가슴이 답답한 그녀의 사랑처럼 늘 도로가 정체돼있다.
이런 출근길을 피해 이사 가야지 하면서도 못하는 이유는 따로 있다.
서울지역 비싼 물가는 핑계고 잊지 못할 추억이 그녀의 한쪽 마음을 늘어지게 잡고 있기 때문이다.
과천을 지나면서 우측 창가로 보이는 넓은 경마공원은 사랑했던 그 사람 근무지로 5년 동안 함께 데이트 하던 추억이 남아있는 곳이다.

은정은 집이 경마장 근처라 운동하기도 좋고 주말 경마장에서 말들이 달리는 모습을 보면 스트레스가 확 풀려 좋았다. 그리고 경마장에 차리고 온 사람구경하는 것 또한 여간 재미있는 게 아니었다.
햇살 좋은 토요일 그날도 가벼운 흰색운동복 차림으로 조깅을 마친 후, 경마장으로 가면서 경기 정보를 습득 하기위해 예상지를 읽다가 눈이 한곳에 집중되어 발길을 멈추어 섰다.

경마 예상지에 대학 동창이 올린 정보가 실려 있었다. ‘박철수 경마 예상 전문가’
반갑기도 하고 믿음도 생겨 동창이 예상한 경기에 베팅을 했는데 운 좋게 세금공제를 뺀 37만원을 벌게 되었다.
경마장에서 중요한 사람은 말을 가진 마주와 감독의 역할을 하는 조교수와 선수인 기수다.

경기는 6종목이다.

1. 단승 1등 한 마리 적중하는 경기로 (확률 1/10)
2. 연승 1,2,3등으로 들어오는 한 마리 적중 (확률 3/10)
3. 복승 1,2등 순서 관계없이 두 마리 적중 (확률 1/45)
4. 복연승 1,2,3등 순서 상관없이 두 마리 적중 (확률 1/15)
5. 쌍승 1,2등 두 마리 순서대로 적중 (확률 1/90)
6. 삼복승 123등 순서 관계없이 3마리 적중 (확률 1/120)

아무래도 연승이나 복 연승에 배팅을 하는 게 제일 확률이 높기 때문에 주로 은정은 복연승만 하는 편이다.
마권 1회 구매 액은 1인당 최대 10만원 까지 되어 있지만
은정은 재미로 1회에 오천 원만 건다.
친구 덕분에 오천 원으로 37만원을 배당 받고 재미있어서 그 친구 연락처를 수소문 끝에 알아내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박철수 입니다.'
대학 졸업 후 24년이 지난 그의 목소리 속에는 아직도 젊었을 때 특유의 부산 사투리가 조금 남아 있어서 어렵지 않게 그의 목소리임을 알 수 있었다.
'저~ 나 서울 k대 국문과 다니던 최은정 인데...'
은정은 혹시 철수가 자신을 잘 기억 못 할까봐 계속 더 자세히 설명을 하려고 말을 이어 가고 있었다.

'나 누군지 알겠어?'
전화기 넘어 철수는 은정의 목소리가 하나도 안변해서 금방 알겠다며 어쩐 일이냐고 물어왔다.

'나 지금 경마장인데 너 덕분에 돈을 많이 땄어.
고맙고 반가워서 전화 한건 데 혹시 경마장 주위에 있으면 끝나고 저녁이나 먹을까? '
이렇게 해서 은정과 철수는 대학 졸업 후 24년 만에 처음 만났다.
이를 계기로 둘은 5년 동안 매일 경마공원과 경마장에서 데이트를 즐겼다.

어느 날은 아무 말 없이 술 마시는 모습이 이상해 물어 보았더니 부산으로 내려가야 한다고 하면서 힘들어 했다.
철수의 Vip단골 고객 중 부산에 사는 스폰서가 있는데 경마예상 ARS 사이트를 같이 운영 하자는 제안을 받고 어쩔 수 없이 부산 경마장으로 가야 된다는 것이다.

혼자 사는 게 외롭고 힘들었던 은정에게 철수는 큰 힘이 되어 주었는데 마음이 많이 아팠지만 보낼 수밖에 없어서 철수가 부산으로 내려가기 전날 둘은 짙은 사랑을 했다. 그녀에게 그 사람은 말이나 행동 모든 면에서 참 맛있는 남자였다.
철수가 부산으로 내려간 이후 둘은 밤이면 밤을 새며 통화를 했다. 그래도 보고 싶으면 KTX로 내려갔다가 새벽에 올라와 출근을 하곤 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둘 사이는 전화 횟수가 줄어들고 몇 달이 지나자 통화 중에 갑자기 끊어진 통화음처럼 뚜~ 소리가 나면서 더 이상은 연락이 되지 않았다.
헤어지자 말을 한 것도 아닌데 둘은 헤어졌다.

심하게 사랑에 맞아 터지고 깨지고 퍼렇게 멍들어 아직 아물지 않은 마음으로 새로운 사랑이 들어오기까지는 시간이 걸렸는데 또 다시 아픔이 찾아왔다.
은정은 종가 집 외아들에게 시집을 가게 되었고, 일 년에 12번의 제사를 지내야 했다.
체력이 약했던 은정은 제사 치르는 일도 버겁지만 무심하고 자기밖에 모르는 남편에게 적응 하는 게 더 힘들어 23살 아들이 결혼을 하자 바로 이혼했다.

누구나 살면서 사랑의 아픔 하나쯤 없는 사람 있을까 !

성숙한 삶을 사는 사람은 그 아픔을 받아들이고 아픔의 해결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아픔에 무조건 화를 내거나 허둥대지 않고 상처를 잘 치료하는 사람인 것처럼 지금의 은정이 그렇게 결심을 한다.

사랑을 하는 사랑 면허증을 취소 해 버리자.
아픔의 터널에서 빠져 나왔으니 이젠 나를 위해 살자.
나를 위해 나에게 맞추며 살아야겠어.
구차하게 소식 없는 그 사람에게 매달리는 것도 보기 흉하고, 또다시 사랑을 찾기엔 자신이 없다. 다 잊고 싶어 건강을 핑계 삼아 그동안 쉬었던 공원에서의 운동을 시작했다.

교직원 댄스 동아리 반에서 비트 빠른 음악에 몸을 맡기고
박자를 따라 한 시간씩 춤을 추다보면 아픔의 상처가 아물어져가고 기분이 좋아졌다.

교직원들 중 춤 잘 추는 선생이 리더를 하는데,
은정이 리더다. 은정은 찰리 쌤에게 일주일에 한번 씩 개인 레슨을 받는다.
그리고 매주 금요일마다 학교 체육관에서 춤을 춘다.

이제는 춤꾼이 된 은정.
맛있는 사람을 좋아하고 맛있게 사는 것을 좋아하는 그녀에게 또 다시 맛있는 사랑이 찾아오길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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