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진환 교수.

현대시와 이미지

4. 절대 심상

여기에 다른 한 편의 시를 동원 했을 때 이 점 훨씬 극명해 질 것으로 본다.

억새풀에 목이 잘린 채
나자빠져 있었다.

풍선처럼 부풀었던
복부가 터진 채
엎어져 있었다.

요행히
목숨을 불어넣은 무리들은
산발로 비틀 거리며
숲을 헤매고 있었다.

포복으로 들녘을 빠져 나가기엔
대낮은
너무 환했다.

패주 뒤의 정적
소람거리는 나무들이
기습을 예비하는 바람의 음모를
수화 신호로 보내오고 있었다.

말갈기를 세워
질주하던 기마 전술의 게릴라들은
지금은 은신 중이다.

일진의 내습을 기다리는 동안
아무 일도 없다는 듯
뻐꾸기만 울고 있었다.

이 시는 졸작 「바람」이란 시의 전문이다.

앞의 시와 발상∙분위기∙배경이 흡사하고 소재 자체도 거의 동일하다.
다만, 뒤의 시가 바람을 게릴라로 보아 지금은 은신 중이기 때문에 몰려오지 않는 것으로 보는 시각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그러나 앞의 시와 뒤의 시는 사뭇 바람에 대한 해석과 바람이 불어오지 않는 원인이나 이유에 대한 진술을 각기 달리하고 있다. ㅡ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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