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재영 광복회 홍보팀장

갚을 보(報), 공 훈(勳). ‘공훈에 대한 값을 치른다’는 말로서 보훈의 사전적 의미는 대가다. 보훈은 국가의 안위와 안보를 위해 희생과 공헌을 한 정당한 대가다. 전쟁이나 내란, 천재지변으로 나라가 없어지기 전에는 그 대상자를 위해 반드시 나라가 수행해야만 하는 것이 책무가 보훈이다. 여기서 대가는 금전적 보상만을 말하는 것은 물론 아니다.

“(이제까지) 일제와 친일의 잔재를 제대로 청산하지 못했고, 민족정기를 바로 세우지 못했다. 독립운동가들을 더 이상 잊혀진 영웅으로 남겨두지 말아야 한다. 명예뿐인 보훈에 머물지도 말아야 한다. 독립운동을 하면 3대가 망한다는 말이 사라져야 한다. 독립운동가들을 모시는 국가의 자세를 완전히 새롭게 하겠다. 최고의 존경과 예의로 보답하겠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4일과 15일 제72주년 광복절을 맞아 독립유공자와 유족을 위해 마련한 청와대 초청 오찬사와 광복절 당일 경축사를 통해 밝힌 주요 내용이다. 우리 국민의 지지율 84.1%를 넘나드는 문 대통령의 소신 있는 작심선언을 적극 지지하며, 독립유공자와 유족들을 위한 보훈대책에 대해 평소 가지고 있었던 몇 가지 제언을 하고자 한다.

먼저 국가의 보훈정책은 금전적 보상보다는 희생정신을 기리는 것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2017년 8월 15일 현재까지 포상된 독립유공자는 1만 4779명. 이중에서 해당 유공자의 제수비를 받고 있는 유족의 숫자는 7300여 명이다. 국가보훈처에서는 훈장을 전수할 후손 찾기에 주력하고 있지만 서훈을 받은 유공자 중에서 절반 정도는 때 맞춰 제삿밥도 못 얻어먹는 무후선열이라는 뜻이다.

물질 보상과 함께 보훈의 한 축이 정신과 넋을 기리는 일이라면 해당 유공자들을 위한 현충시설 건립이나 위령제를 지내는 것에 정부가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이스라엘 야드바셈 안의 ‘증언의 페이지 컬렉션’이나 ‘마사다 유적’, 미국 버지니아주에 있는 ‘알링턴 국립묘지’와 같은 깊은 울림과 감동을 주는 추모의 공간을 우리나라도 만들어야 한다. 국민의 보훈정신 함양을 넘어 후세들이 선열들의 독립운동정신을 잊지 않고 계승 보전해가기 위한 역사교육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무엇보다 시급하기에 그렇다.

외세에 나라를 빼앗겼을 때 그것을 되찾기 위해 분골쇄신한 독립유공자와 나라를 되찾고 난후 그것을 발전시키는데 공헌한 국가유공자는 그 공헌도가 분명 다르게 인식해야 한다. 1990년 개정 이래 그대로 유지되고 있는 상훈법을 고쳐 독립유공자에게는 모두 건국훈장을 포상해 줘 명예를 높여주고, 건국포장이나 대통령표창은 공헌도에 따라 국가유공자들에게 줘 사회통합을 꾀하는 방법도 생각해볼 일이다.

무엇보다 유공자의 숭고한 정신 계승보다 금전적 혜택이나 물질적인 느낌이 먼저 드는 ‘보상금’이라는 명칭보다는 ‘예우금’이나 ‘명예금’ 또는 ‘보훈금’, 그 밖에 수혜자들이 자존감을 잃지 않을 품위 있는 이름으로 용어를 바꾸는 것도 고려해볼 일이다.

유공자 손자녀에게 주어지는 보상금에 대해 1인 독점 불가 헌법소원이 발생하는 등 보상금을 사이에 두고 유족 간에 관계가 소원해지는 경우가 다반사로 일어난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번 광복절 경축사에서 별도의 예산을 투입해 독립유공자 유족을 돕겠다고 약속한 대통령도 이 같은 사실을 잘 알고 계시기 때문일 것이다.

나라를 되찾기 위해 목숨을 바친 선대의 독립투쟁은 아무나 할 수 없는 숭고한 것이기에, 한 사람도 억울한 이가 없는 보훈. 차별받지 않은 고른 보훈. 유공자가 공훈의 정도에 따라 차등을 두는 것은 당연하지만, 훈격(1·3~7등급)별 유족 연금의 격차를 줄여야 한다.

유족 간의 보상금은 많게는 4배에 가까운 차이가 나고 있어 그 격차가 너무 크다. 책정 기준을 다시 정비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에 국가는 귀를 기울려야 한다.

암약한 채 일제에 쫓겨 다니기에 바빴던 독립운동가가 가족의 안위를 돌보지 못해 가난과 배움의 기회를 놓친 유족들이 많다는 항일 독립운동의 특수성을 감안한다면, 유족의 보상금은 사실 지급 초기부터 훈격별로 차등을 두기보다는 좀 더 신중하게 접근했어야 했다. 지금이라도 합리적이고 현실적으로 개선돼야 한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을 위한 보훈정책의 개선 점은 독립유공자 예우법과 관련해 이밖에도 많다. 역대 정부가 긴 안목에서 보훈정책을 체계적으로 수립하기보다는 ‘긴급 처방식’으로 수혈해 왔기 때문이다. 이제는 보훈정책에 대한 전반적인 검토가 필요한 시기가 됐다.

보훈의 수준은 국제 무대에서 그 나라 위상의 척도라는 말이 있다. 우리나라는 경제규모가 세계 12위권 수준이다. 그런 만큼 보훈제도도 전에 비해 많이 좋아졌다. 하지만 보훈제도가 잘 갖춰진 나라에 비해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 대체적인 중론이다.

이번 광복절을 전후해 기획한 모 TV 프로그램을 시청하고 느낀 점이 많았다. 서울현충원 무후선열제단에 모셔져 있는 어느 독립운동가 이야기다. 그의 외 현손들이 그가 걸어갔던 독립운동 여정을 따라 가며 길 위에서 흔적을 찾고, 도중에 100년 전에 그와 함께했던 옛 동지의 나이든 후손들을 만나는 장면도 나온다.

필자는 서로 모이면 아리랑을 부르며 우리말과 글을 잊지 않으려 애쓰는 그곳 후손들의 모습에서나 고국에서 그들을 찾아간 외 현손 남매에게 연신 찾아줘어서 고맙다는, 나라가 잊지 않고 기억해 주어서 감사하는 말에서 가슴 뻐근한 감명을 받아 프로그램이 끝난 심야에 싶게 잠을 이루지 못했다.

누군가를 기억하는 것, 잊지 않고 기억하는 것만큼 아름다운 것이 또 있을까. 역사에 대한 기억 또한 크게 다르지 않다. 더구나 아픈 역사를 잊지 않고 기억하려는 노력은 그래서 값지고 가치가 있다.

“돈으로 할 수 있는 일보다 더 중요한 것이 뜻을 기리고 명예를 회복해 드리는 일이다”라고 말씀하신 문 대통령의 말씀처럼, 보훈은 명예를 지켜주고 가치를 인정해주는 것이다. 공공의 이익을 위한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자부심과 긍지를 심어주는 일이다.

국정농단으로 말미암은 현직 대통령 탄핵이라는 헌정사상 초유의 사태가 일어나고, 5월 조기대선으로 출범한 문재인 정부는 지난 8월 17일자로 출범 100일을 맞았다. 조만간 새 정부의 독립유공자를 위한 보훈정책이 나온다고 한다.

보훈정책은 2004년 8월 참여정부 시절에도 자라나는 세대에게 독립정신을 고취시키고, 독립유공자에 대한 존경심과 예우하는 풍토조성을 위해 ‘독립정신 선양사업 강화’ 등 3대 개선 대책을 마련해 가히 개혁적인 수준에서 단행된 바 있다. 현 정부 또한 못 다 이룬 참여정부의 정치철학을 계승한 만큼 철저하고 획기적인 정책이 나와 주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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