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주옥(수필가)

[검경일보 특별기고/ 이주옥(수필가)] 사는 즐거움 중에 식도락만큼 강렬하고 환영받는 것도 드물 것이다. 우리 부모님세대는 그저 허기만 채울 수 있다면 어떤 것이든 목으로 넘기던 시절을 지냈다. 독이 되는 풀만 아니면 무엇이든 먹거리로 사용해야 했던 설움을 요즘 3-40대마저도 이해못할지도 모른다. 돈이 없으면 ATM 기계에서 뽑으면 되고 쌀이 떨어지면 라면이나 빵을 먹으면 되지 않느냐고 한다던 아이들의 세계는 풍요를 안겨준 우리 세대들의 훌륭한(?) 유산인가.

수십 개의 텔레비전 채널에서는 어디서나 요리 프로그램이 인기다. 생소한 재료를 이용하고 맛깔스럽게 소스를 가미해서 멋지게 플레이팅한 요리는 예술의 범주에 넣을만하다. 각종 블로그에 포스팅 된 맛집은 굳이 식도락가가 아니더라도 한번쯤 찾아가고픈 명소가 된다. 언제부턴가 일상에 찌든 삶의 활력에 여행은 필수고 여행지에서 먹어보는 그 곳만의 요리는 여행 스케줄의 백미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유명 맛집은 어디나 문전성시다. 하다못해 간단한 음료 한 잔도 허투루 마시지 않는 사람들. 그리고 SNS에 남기는 인증샷은 나름의 스트레스 해소 역할도 한다. 나 또한 유명하다는 맛집은 가능하면 발품 팔아서라도 가보고자 하는 편이다. 얼마 전 휴가차 다녀 온 일본도 우리나라와 다르지 않았다. 유명하다는 스시집 앞에는 악 100M가량 사람들이 늘어서 있었고 우리도 그 줄에 끼어 1시간 이상을 기다리는 뚝심을 부렸다. 일단 먹어본다는 것에 중점을 두었고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맛이었는가는 차후 문제였다.

삼계탕으로 유명한 도심 한 복판 식당 앞의 장사진은 신문에도 대서특필 될 만큼 화제였고 유명 빙수가게는 30분정도의 기다림은 기본이다. 다른 사람이 하는 것, 나도 한다는 단순한 편승 심리도 있을 테고 사돈이 장에 가면 나도 간다는 군중심리도 작용하겠지만 이왕이면 더 좋고 더 맛있는 것을 먹자는 자기애의 한 단면으로 해석할 수도 있을 것이다. 초근목피 시절을 겪은 어르신들은 배고픈 설움을 모르는 젊은 사람들의 치기며 사치라고 혀를 찰지 모를 풍경이다.

줄을 서면서까지 먹는 이유를 조사한 재미있는 결과물이 있었다. 기왕 왔는데 포기하고 돌아가면 다시 오기 힘들 것 같아서가 30%를 넘었다. 시간상으로는 5분에서 30분까지는 기다릴 수 있다는 대답을 했다고 한다. 외국 같은 경우는 서너 시간 기다렸다 먹고 오기도 한단다. 언제 다시 오겠냐라는 심리에 과시용으로 SNS에 올려야 하는 이유도 있다니 우습기도 하다.

어느 심리학과 교수는 맛집 줄서기의 심리에 똑 같은 비용을 쓰더라도 보다 가치 있는 소비를 원하는 경향이라고 진단한다. 그만큼 요즘 사람들의 삶의 패턴이나 지향하는 관점이 예전과 달라졌음을 알 수 있는 사실이다. 시간을 투자하고 과한 비용을 지불하고서라도 기다림을 택하는 사람들. 어떤 선택을 하고 판단을 하던 모두 자기만족이니 비난도 응원도 할 수 없는 일이다.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는 말은 진리임을 실감할 때가 많다. 뚝배기보다 장맛이라는 말은 이제 속담에 불과하다. 그만큼 요즘 사람들에게 물리적인 배고픔을 해결하기 위해 단순한 먹거리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특별한 재료를 사용하고 멋진 식기에 맛깔스럽게 담고 거기에 기다리기까지 해서 먹은 음식에 물리적인 배부름에서 오는 만족감보다 심리적인 흡족함이 상승했을 수도 있을 것이다. 맛집의 기다림은 비단 음식 맛을 보기 위함만이 아니라 내 정신적 만족과 내 삶의 질이 보다 향상되리라는 기대심리가 함께 기다리는지도 모른다.

오늘도 인터넷에는 어느 블로거가 소개하는, 보기에도 먹음직한 요리들이 헤아릴 수 없이 많이 올라오고 TV 화면 속에도 군침이 도는 각종 음식과 분위기 좋은 카페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며 수많은 사람들을 현혹한다. 집중하고 눈 여겨서 보다가 그 중 가장 구미 당기고 눈길 꽂히는 것을 선택하고 메모해둔다. 이제 날을 잡고 시간을 빼서 그 즐거운 기다림의 행렬 속으로 가는 일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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