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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의 배웅
  • 이주옥
  • 승인 2017.09.12 0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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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주옥(수필가)

[검경일보 특별기고/ 이주옥(수필가)] 파격적인 소재와 필체로 문단에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작가가 유명을 달리했다는 기사를 접했다. 그의 소설과 시는 내놓고 행하거나 발설하지 못하는 이야기라는 것으로 시선을 모았고 화두가 됐다. 하지만 몇몇 가라앉고 숨겨져 있던 것에 답답함을 느꼈던 사람들에게 카타르시스이기도 했을 것이다. 은밀함이 주는 속성의 파괴에서 대리만족을 하고 응원을 받았던 것이 아닌가 싶다. 그러나 한 편에선 외설인가 예술인가로 의견이 분분했다. 문화계에서는 각자의 판단에 따라 영화로, 음악으로 제작되었다. 덕분에 그는 문화계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했지만 한 인간으로서는 지난한 삶을 살게 되었다. 건전한 사회도덕과 미풍양속을 해치고 뒤틀린 성의식 고취 혐의가 죄목이라면 죄목이었을까.

그의 작품들은 제목부터 심상치 않았다. [가자, 장미여관으로], [즐거운 사라],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 등 다분히 선정적이고 호기심이 일만한 것이었다. 그의 작품으로 ‘필화’가 본격적으로 대중에게도 상기되고 대두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성욕은 식욕을 능가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인간에게 무시할 수 없는 본능이다. 하지만 그것은 드러나지 않음에 더 명분이 있고 설득력이 있을 것이다. 그런 인간의 심리에 명분을 붙여 문학으로서 자리매김 하고자 했던 그는 분명 파격적인 사람이었지만 어쩔 수 없이 문화계의 이단아로 분류되어 눈총을 받고 고립된 것이 사실이다.

예술은 다분히 자유로움 속에서 그 진가를 발휘한다. 무엇보다 작가 영혼의 자유로움이 가장 우선 되어야 한다. 하지만 그런 표현의 자유가 국가 관련부처나 몇몇 사람들의 고시화 된 개념이나 상투적 관념 사이에서 종종 마찰을 빚는다. 특히 성性 적인 부분을 건드릴 때는 유독 민감하다. 검열의 잣대와 표현사이의 간극은 한 사람을 외설적인 사람으로 매도하기도 하고 그 잣대는 더 없이 정당하게 도덕적 우위에서 군림하고 만다.

그는 자신이 겪은 필화에 늘 힘들어했고 그의 작품은 사람들이 정해놓은 고정관념의 범주 안에서 자주 길을 잃고 헤맸을 것이다. 교단에서도 자리를 잃었고 늘 이런 저런, 이 사람 저 사람의 다른 판단과 선고 속에서 자존감을 잃고 외로웠을 것이다. 그의 사인은 우울증으로 인한 자살이었다.

요즘의 소설이나 영화는 검열의 잣대에서 많이 능동적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변했다. 가족들이 모두 보는 TV드라마에도 수위 높은 스킨십 장면은 예사고 대중가요 가사도 파격적인 내용이 부지기수다. 젊은이들은 어디서나 과감하게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고 거리낌 없는 행위로 그 감정을 나타낸다. 때론 때와 장소 구분이 없어 눈살을 찌푸리게 하지만 예전 풍기문란이라는 말로 짧은 치마나 긴 머리 단속까지 하던 때와는 격세지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사람들의 인식이 바뀐 것인지 아니면 알게 모르게 의식 속으로 자연스럽게 파고든 결과인지 명확치는 않다.

한 시대를 풍미하는 것들은 문화라는 테두리에서 성장하고 머물고 기록된다. 일반적으로 유행하는 의상이나 화장법, 요즘 폭발적인 한류열풍도 그에 속할 것이다. 소설이나 시의 형식이나 내용도 그때 그 시절에 합당한 유행이나 트랜드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어느 분야건 한 시대의 문화를 선도하는 사람은 분명 있겠지만 독자들이나 그 시대를 사는 사람들이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멍에가 될 수도, 명예가 될 수도 있는 책임감을 갖는다.

비운의 생을 마감한 것에 그의 제자나 그를 응원하던 문화계 종사자들이 애도하며 때늦은 한탄을 했다. 그가 허울이나 관념의 잣대에 걸려 길을 잃고 허둥댈 때 과감하게 방패막이 되어주지 못한 것에 대해서. 또한 그가 낳고 키워 세상 밖으로 내 놓은 수많은 ‘사라’들조차도 온 몸으로 그의 편이 돼주지 못한 것에 뒤늦은 눈물을 흘릴지 모른다.

세상은 사회적 통념이나 도덕적 관념에 위반한 사람에게 유독 관대하지 못하다. 확신 없는 설왕설래로 한 사람 고립시키는 일은 생각보다 간단하다. 허름한 장미여관에서 세상의 차갑고 날카로운 시선을 견디면서 그가 잉태한 ‘사라’들을 보호하지 못한 작가는 스스로의 검열에서조차 자유롭지 못했고 세상과도 화해하지 못했다. 끝내 어느 곳에서도 면죄부를 얻지 못한 채 생을 마감했다. 아마 세상의 평가와 시선보다는 스스로를 뛰어 넘어야 하는 자기 안의 방어벽을 깨뜨리는 것이 더 어려웠는지 모른다.

한 시절 하나의 관념과 화석처럼 굳은 통념을 타파하려던 작가는 결국 불행한 방법으로 생을 마감했다. 하지만 장미여관의 눅눅한 공기 속에서 피폐하게 꼼지락거리는 많은 ‘사라’들은 그를 진심으로 따뜻하게 배웅할 것이다. 부디 다음 세상에서 다시 만나 한바탕 축제를 벌이기를 바라며.

이주옥  webmaster@pp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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