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주옥(수필가)

[검경일보 특별기고/ 이주옥(수필가)] 아이들의 웃음소리를 천상의 음악이라고 표현한 작가가 있었다. 아무리 지난한 삶의 사슬이 옭아매도 아이의 웃음소리 하나에 애써 떨치며 산다는 가난한 사람의 인생은 누구나 고개를 끄덕이는 진심어린 팩트다. 아이가 내는 소리와 아이의 몸짓은 고달픈 현실위에 놓여있는 위안이고 위로였다. 하지만 언제부터였을까. 아이는 귀찮고 번잡하고 급기야 개인의 행복을 파괴할 수도 있는 민감한 존재로까지 추락했다.

사람은 태어나서 어른이 되고 누군가를 만나서 결혼해서 또 한 가정을 이루는 것이 인생사 자연스런 순리라고 여기며 살아왔다. 거기에 새롭게 태어나는 아이는 자동으로 유입되는 삶의 공기 같은 것이었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아이는 오랜 시간 치밀하게 계획하고 고심해서 단호한 결심을 내림으로 그 존재에 가치여부가 생성되는 처지가 된 듯하다. 물론 시대적 트랜드에 따른 일시적 현상일 뿐인데 조금 과한 비유와 해석이라고 할 만한 의견인지 모른다.

요즘 사람들은 개인주의가 팽배해지면서 자신만의 평화와 행복을 최대 지향점으로 잡는 듯해 보이기도 하다. 거기에 간혹은 이웃이나 가족들까지도 내 행복 저해 요건으로 포함시키는 게 요즘 젊은이들의 의식처럼 보일 때가 있다.

노키즈 존, 맘충. 위의 서술에 딸려있는 현대인의 달라진 의식에서 파생된 소산물이다. 고요하게 한 잔의 차를 마시는 공간, 우아하게 한 끼 식사를 하는 분위기 있는 식당. 하지만 그런 장소에 함께 있는 아이는 그 고요와 우아함을 한꺼번에 앗아가는, 자칫 민폐객으로 전락하기 십상이다. 또한 그런 민폐객을 눈치 없이 대동한 엄마는 순식간에 개념 없는 벌레가 되고 만다.

사람들의 출입을 허용하는 집 밖의 공간은 어디나 다소 이기적이다. 의식주에 편리함과 다양함을 요하는 젊은 세대들에게 집 밖은 물리적인 욕구를 해결하기 위한 장이기도 하지만 나름대로 특별한 대접을 요구하기도 한다. 그러나 한 편 젊은 부모들은 식당은 기본이고 전시회장에도 아이들과 동행하며 지적 갈증을 해소하고 문화혜택을 누리기를 원한다. 하지만 아이들로 인해 곳곳에서 입장 제재를 받고 주위 사람들의 눈총을 받으니 서로 타협점을 찾기에는 여러 애로사항이 있을 수밖에 없다.

아이들은 일방적인 통제가 어려운 부류다. 그렇기에 공공장소에서의 기본 에티켓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일까. 또한 요즘 내 자식이 최고라는 마음으로 자식을 키우는 부모들 의식 또한 커다란 장애물이다. 사람 많은 식당은 물론이고 공연장에까지 아이를 데리고 오는 초 무개념 부모들도 있다. 아이들이 울기도 하고 뛰어다니며 옆 사람들에게 피해를 입혀도 아랑곳하지 않으며 오히려 제재를 가하는 사람들에게 자기 자식 기죽인다며 항의를 한다. 결국 노키즈 존은 예견된 것이고 피해는 결국 아이들 몫이 됐다.

사실 노키즈 존은 일본에서부터 시작됐다. 노년의 조용한 삶을 원했던 어른들은 아이들이 내는 소음에 화를 내며 놀이터를 없애고 아이가 있는 집을 강제로 이사시키기도 했다. 그러다보니 아이 숫자는 점점 줄어들었고 결국 노년의 주위는 고독하기만 한 부작용을 낳았다. 물론 근본적인 원인을 아이들에게 예절이나 내 자식이 최고라는 부모의 이기심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사람 많은 찻집에서 이리저리 뛰어 다니며 혼란스러운 것은 물론, 심지어 차탁위에 아이를 눕히고 배변 기저귀 처리를 하는 무개념 엄마로 인해 나 또한 얼굴 찌푸린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놀라며 불평을 하는 딸아이에게 이해하라는 말조차 할 수 없을 때가 있었던 것이다.

한 나라의 미래는 물론, 한 가정의 주춧돌이 될 아이들이 어쩌다 이렇게 천덕꾸러기로 전락하고 말았을까. 대부분 아이들을 제대로 교육하지 못한 부모들 탓이라고 입을 모은다. 하지만 그런 과정 속에 자라온 아이가 또 그런 아이를 키우는 어른이 되는 악순환의 연속이 될 뿐이다. 하지만 문제가 있으면 해결책도 있는 법, 아이들을 위한 제반 시설을 갖추고 아이들 출입을 허용하는 공공장소가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얼마나 관심을 갖고 깊이 있는 고민을 하느냐에 따라 보다 충분한 고무적인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 어린이는 자라나는 새싹, 그들에게 있는 미래와 희망만큼 너그럽게 감싸고 이해하는 어른들이 반드시 필요하다. 아마 각종 음식점이나 커피숍에서 NO를 외치는 건 어쩌면 천방지축 구분 없는 아이들이 아니라 개념 없는 엄마들 일지도 모른다. 두 팔 벌려 아이들을 뛰게 하고 아이들이 웃게 하는 곳, 그곳이야말로 천국이며 가장 희망이 있는 장소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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