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라승용 농촌진흥청장

여름휴가 말미에 ‘파밍 보이즈(Farming boys)’라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봤다. 주인공은 대학은 졸업했지만 평범한 회사원은 거부하는 20대 후반의 취업준비생들이다. 무엇을 해야 할 지 막막했던 세 청춘은 농촌일손돕기 경험을 통해 ‘농업’에 관심을 갖게 된다. 한국의 농업은 힘들다고들 하는데 다른 나라 농부들의 삶은 어떨지 궁금했다. 2년 동안 전 세계를 누비며 다양한 형태의 농장을 체험해본다. ‘땅을 파서 꿈을 캐보자’는 청년들의 패기가 통했는지 긴 여정을 마친 농사꾼 유망주들의 얼굴에는 자신감이 넘쳤다.

이 시대의 대표적인 지성인 이어령 선생은 정책 자료집 농설(農設)에서 ‘다음 세대를 이끌 혁신은 생명의 신비를 가장 자주 그리고 가까이서 지켜보는 농부들이 이끌어 낼 것이다’고 예견했다. 근래에 새로운 생각과 기술을 갖추고 미래 생명산업인 농업의 변화를 주도하는 청년 농업인들이 늘고 있다.

‘2016년 기준 귀농·귀촌인 통계’에 따르면 30대 이하 귀농·귀촌 가구 수는 최근 3년간 증가추세다. 젊은 층의 귀농·귀촌이 확산되면서 농업이 새로운 일자리 산업으로 주목받고 있고, 농촌의 환경·생태·문화적 가치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도 높아지고 있다. 지금의 열기를 지속적으로 이어가기 위해서는 젊은이들이 농업을 통해 자신의 꿈을 실현하는 풍토가 만들어져야 한다.

우리 농업·농촌에는 기회의 창이 활짝 열려 있다. 농촌진흥청은 지난해부터 청년농업인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다양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정보통신기술(ICT) 활용이나 가공·관광 등의 분야에 참신한 아이디어를 가진 젊은 농업인을 선발하고 그 아이디어에 신기술을 접목시켜 농촌에 정착하도록 지원하고 있다. 이렇게 탄생한 사업장이 전국에 총 40곳 운영 중이며 2021년까지 500곳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이러한 성과를 바탕으로 농촌진흥청은 청년농업인 육성에 지속적으로 힘을 쏟을 계획이다. 장기적인 안목에서 청년들의 농촌 유입이 농가인구 감소, 농촌지역 고령화, 농산업의 정체 등 현재의 농업이 직면한 문제를 슬기롭게 극복하는 대안이기 때문이다. 세부적으로 각 시·군의 농산물 가공센터를 거점으로 농식품 스타트업을 지원하고 경영이나 마케팅, 세무 분야의 민간 전문가로부터 컨설팅을 받을 수 있게끔 도울 예정이다.

또한 청년농업인에게 전문적인 기술교육도 제공한다. 올해 한우를 시작으로 기술 수요가 많은 품목인 쌀, 양돈, 버섯, 채소, 사과, 배 등으로 교육이 점차 확대된다. 농진청의 전문가들이 멘토로 나서 맞춤형 영농상담도 실시해 전문 농업인으로 육성시킨다. 그 첫 걸음으로 지난 8월, 전국에서 한우를 키우는 청년 농업인들의 연구모임이 꾸려졌다. 그들만의 수평적 네트워크를 형성하도록 유도해 관련 정보와 기술을 교환하는 등 자생적인 힘을 가질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아울러 청년 창업농 개개인의 역량을 끌어올리고 경영능력을 겸비한 전문 농업인으로 키우기 위해 조직체도 육성, 지원한다. 이에 힘입어 올해 1월과 3월에는 ‘전남청년농업인협동조합(지오쿱)’과 ‘전북청년농업CEO협회’가 발족했다. 농업의 미래성장 산업화를 주도할 유망 일자리 발굴에도 주력해 ‘농작업안전보건기사’, ‘치유농업사’ 등 농촌진흥사업 분야의 국가기술자격 신설에도 적극 나선다. 예비 농업인의 저변확대 차원에서 2022년까지 청년 4-H회원을 5000명까지 육성하고 지역사회를 이끌어 갈 핵심 청년리더로 양성한다.

취임 이후 필자는 충남 홍성, 경북 성주, 전남 영광을 찾아 청년 농업인들을 만나고 진솔한 대화를 나눴다. 농업현장에서 체득한 젊은이들의 참신한 아이디어와 미래 농업을 내다보는 혜안에 내심 놀랐다. 이들의 비전과 가치를 공유하다보면 어느새 힘찬 기운도 받는다. 고백하건대, 청년 농업인과 함께 농업을 이야기할 때 가슴은 뛰고 행복하다. 청년 농업인을 잘 살리는 일이 농업을 살리는 일이며, 결국에는 우리 농업·농촌과 국민의 행복지수도 높이는 길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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