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주옥(수필가)

[검경일보 특별기고/ 이주옥(수필가)] 우리 삶은 무엇인가와 관계 속에서 이루어지고 흘러간다. 인간은 사회적인 동물이라는 거창한 명제가 아니라도 우리는 그 관계 속에서 나의 본질을 모색하고 확립하며 정리하는 것 일게다. 그런 과정에서 형성되는 카테고리를 우리는 쉽게 인맥이라고 말한다. 인맥. 사전적 해설은 ‘같은 계통이나 계열로 엮어진 사람들의 유대관계’다.

살면서 가장 예민하고 스트레스가 되는 것은 바로 사람과의 관계에서 오는 갈등임을 종종 실감할 때가 있다. 나 또한 물리적인 고통은 나름대로 잘 견디고 추스르는데 인간관계 속에서 받는 스트레스는 가장 못 견디고 마음고생을 한다. 아마 낯가림이 심하고 무던하지 못한 내 성격 탓이리라.

내 핸드폰엔 약 300여명의 연락처가 저장돼 있다. 대부분은 가족, 친구 그리고 일에 관련된 사람이다. 하지만 긴밀하게 잦은 연락을 하는 사람들은 10여명 정도인 것 같다. 그 중 일 관련 연락처는 대부분 1회성일 때가 많으니 인맥 정예요원은 아마 절반 이하일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나와 비슷한 상황이리라 싶다. 하지만 어떤 사람은 자신의 핸드폰에 저장 된 연락처 개수를 재산처럼 안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한마디로 ‘인맥부자’인 것이다. 살다보면 내가 누군가와 알고 지내며 인맥을 형성하고 때에 따라 그 인맥으로 인해 파생되는 다양한 삶의 조견표가 또 다른 내 명함이 될 때가 있다. 사람은 혼자 살 수 없기에 서로 주고받으며 기대고 사는 것, 많은 연락처의 개수는 한 개인사의 확실한 반경이나 척도가 된다고 해도 무리는 아니다.

나는 꽤 까탈스럽게 인맥 관리를 하는 편이다. 수시로 연락처를 정리하면서 좀처럼 연락 할 일이 없을 것 같은 사람은 과감하게 삭제한다. 또한 저장되어 있지 않은 번호로 수신번호가 찍히면 꽤 고민을 하면서 받는 편이다. 그러다보니 간혹은 인간관계에 마이너스가 되기도 하며 당사자에게 실례가 될 때가 있다. 당연히 반가운 목소리로 받겠거니 했던 사람들이 조금 낯설고 조심스런 응대에 당황하면서 서운함을 느끼기도 한다니 말이다.

SNS 친구 관계도 신중을 기한다. 일면식도 없는 사람이 소위 말하는 파도타기로 들어와 내가 적은 몇 개의 문장에 기대를 하고 친구하자고 하면 나는 과감히 거절 한다. 나를 잘 아는, 그리고 내가 충분히 알만 한 사람에 한해 조심스럽게 허락한다. 그러니 내 인맥은 지금에서 늘어나지 않고 늘 제자리걸음이다. 그 또한 적당한 소통의 고리가 이어지지 않으면 과감히 정리를 하니 점점 줄어든다고 해야 할 것이다.

요새는 관음증 환자가 넘쳐난다고 한다. 쉽게 말해 SNS를 통해 끊임없이 남의 사생활을 들여다보는 사람을 일컫는다. 또한 본인이 누구인지 알 수 있는 흔적은 온통 제거한 채 친구신청을 한다. 자신의 존재와 공간은 철저하게 폐쇄해 놓고 네 것만 보여 달라고 하는 이기적이고 얌체인 사람들이다. 난 내 의사와 상관없이 무작위로 저장된 연락처로 인해 딱히 인맥을 넓히고 싶지 않기에 수락하는 일은 드물다.

10대 청소년들은 자신의 SNS게시물에 표시된 ‘좋아요’ 개수에 존재감을 느끼고 인맥을 과시한다고 한다. 심지어 수업 중에도 그것을 확인 하느라 손에서 스마트 폰을 놓지 못한다고 하니 문명이 준 괴이한 현상이 아닐 수 없다. 문명사회에서 생겨난 공허함을 채우는 방법치고는 너무 불성실하다. 정신과 의사들은 이런 사람일수록 오히려 우울증이나 자존감이 더 낮다는 진단을 한다.

최근에는 20~30대를 중심으로 인맥 덜어내기 열풍이 불고 있다고 한다. 불필요한 연락처를 지우고 SNS를 탈퇴함으로써 과 부하된 관계 정리를 하는 것이다. 나의 지인 중 한사람은 불필요한 문자 1통, 사진 1장도 폰에 담아두지 않는다고 한다. 폰에 담겨있는 문자와 사진의 무게에 오히려 삶의 묵직함이 더해진다고 하면서. 지나치게 예민한 감이 없지 않으나 충분히 공감 가는 부분이다. 미니멀한 삶을 지향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시점에 넘치는 인맥이야말로 가장 덜어내야 하는 부분인지 모른다. 늘 덜어내고 솎아내도 여전히 남아있는 관계의 부담. 어쩔 수 없는 현대인의 멍에라 해도 수시로 덜어내며 가벼워지는 것도 좋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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