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주옥(수필가)

[검경일보 특별기고/ 이주옥(수필가)] 오후 여섯시, 하루의 일과를 대충 마무리 할 시간이다. 뉘엿 저물어가는 노을이 불현 듯 평화를 주는 시간, 따뜻한 쉼터 생각이 간절하며 서둘러 귀가한다. 작고 소박한 내 방에 눕는 순간, 몇 시간 전에 받았던 스트레스도 풀리는 듯하고 며칠 째 떠나지 않던 고민거리에서도 잠시 놓여나는 듯도 싶다. 그것이 아마 보통 사람들이 누릴 수 있는 작은 행복일 것이다.

나의 육신을 허물없이 받아주고 나의 산란해진 마음을 다독여 주는 곳. 바로 ‘방’이다. 그런 방이 유난히도 절실하고 소중한 사람들이 있다. 바로 타향에서 학교를 다니거나 직장생활을 하는 젊은이들이다. 달동네의 허름한 곳일지라도 내가 마음 편히 누울 방 한 칸의 의미가 그들에게는 형언할 수 없이 크리라. 하지만 그런 방 한 칸을 갖기가 쉽지 않은 세상이다.

대학가나 여느 주택가엔 원룸형태의 주거지에서 홀로 사는 젊은이들이 넘쳐난다. 갈수록 그들을 위한 편의시설도 늘어나고 다양화돼간다. 하지만 이런 생활은 그나마 경제적 능력이 있는 부모를 두었거나 스스로 해결책이 있는 직장인들에게나 부여되는 호사다. 가난한 부모에게 의탁하거나 박봉인 직장인들은 한 달에 수십 만 원 넘는 월세가 부담이다. 저축은커녕 예정에 없는 커피 한 잔 마실 금전적인 여유도 없는 게 젊은 그들의 현실이다. 이런 현실은 결국 그들에게 학업이외의 노동의 필요성을 주고 뒷바라지하는 부모들의 허리를 끝없이 휘게 한다.

정부에서나 학교에서는 그런 젊은이들의 주거복지를 위해 애쓰고 있다. 우선은 학생들에게는 기숙사를 지어 경제적 부담을 줄이고 각종 위험요소에서 보호 하고자 한다. 또한 청년들에게는 저렴한 임대주택으로 그 혜택을 입게 한다. 하지만 언제나 공급은 수요를 만족시키지 못하는 게 행정적인 기반위에 얹힌 복지 정책이다. 그러다보니 또 한 번의 선택의 기로에 놓여 박탈감을 느끼게 한다.

선택받지 못한 그들은 경제적 부담이 덜한 곳으로 자꾸 뒷걸음질 치다보니 주거 환경은 갈수록 낙후되고 삶의 질은 떨어지는 악순환이다. 거주지가 주 생활권에서 멀어지니 온 종일 거리에서 떠도는 인생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소위 말하는 주거 난민이 되는 것이다. 그들에게 쾌적하고 따뜻한 방 한 칸은 얼마나 간절하겠는가. 어쩌다보니 젊은이들의 인생이 온통 방 한 칸 마련을 위한 전력전일 뿐인가 싶어 서글프기 그지없다.

지방출신들에게 타향살이는 언제나 서럽다. 물리적인 어려움에서부터 심리적인 불안까지 가중되니 말이다. 뼈 빠지게 공부해서 상경하고 더 나은 미래를 위해 고군분투하지만 현실은 늘 부족함 투성이고 어려움의 연속이다. 고공 행진하는 학비와 물가는 물론이고 돈 없이는 한발자국도 떼지 못하는 도시생활은 가슴만 팍팍하게 만들 뿐이다. 이럴 때 적당히 손해보고 배려하는 차원에서 정부에서나 임대업자들이 감싸고 양보하면 좋으련만 업자들은 자꾸 임대료만 높여 배를 채우고 행정부처에서는 알게 모르게 임대사업자들 편에 서는 듯 한 인상마저 주고 있다. 가뜩이나 추워질 날씨에 마음까지 오그라드는 느낌이다.

‘배부르고 등 따시니 세상 부러운 것 없다’는 말을 한다. 소소한 행복을 누리는 소시민들의 단순한 자족의 말이 아니라 이 시대를 사는 못가진 자들의 절박함을 대신하는 말이다. 갈수록 팍팍해져가는 살림살이에 웬만해서는 배부르기 쉽지 않은 세상이고 겨우 눈만 붙이고 일선으로 뛰어나가는 사람들에게 방안의 온도는 차라리 길거리 호빵만한 따스함도 주지 못하는 현실이다.

많게는 백여 채에 가까운 집을 보유한 사람들 이야기를 종종 듣는다. 집은커녕 방 한 칸도 없는 사람들에게는 공상영화에나 나옴직한 이야기다. 정부에서는 이런 불균형을 잡기위해 여러 가지 대책을 고심하고 최근에는 강력한 규제 방안을 내 놓고 있다. 방 한 칸, 집 한 채가 절실한 사람들에게 조금 더 쉬운 기회를 주자는 의미이며 빈익빈 부익부의 형평성을 두자는 대책이겠지만 사유재산의 권리가 있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그 대책은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는 미지수다. 하지만 뜻이 있으면 길은 있을 것이다. 모두가 관심을 갖고 고심하면 적어도 누울 조그마한 방이 없어 난민처럼 떠도는 사람들은 줄어들지 않겠는가. 피곤한 하루를 끌고 가지만 또 그 곳에서 피곤을 떨쳐버릴 수 있는 곳, 방. 구겨진 마음까지도 펼 수 있는 작고 소박하지만 온기가 서린 방 한 칸 갖는 것이 가난한 젊은이들에게 결코 하늘의 별따기가 아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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