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주옥(수필가)

[검경일보 특별기고/ 이주옥(수필가)] ‘어쨌거나 착하게 살아야 한다.’ ‘선善이 삶의 가장 큰 미덕이다.’ ‘선한 끝은 있어도 악한 끝은 없다.’ 이렇듯 착한 사람이기를 강조하는 수없는 말들이 있다. ‘결국’이라는 단어에 가장 어울리면서 누구나 지향하는 가장 최고의 결미도 아마 선일 것이다. 착한 사람이 복 받고 악한 사람이 벌을 받는 것은 지난한 인생을 사는 사람들에게는 그나마 희망이라고 말하면 언어도단일까. 또한 악행을 일삼는 사람들을 때때로 뒷덜미 낚아채며 불편하게 하는 것도 아마 이 선이 주는 부담감이지 않을까 싶다. 또한 행해지는 모든 싸움 중에 가장 치열한 것도 선과 악의 대치일 것이다.

동서양을 막론한 동화나 영화도 최상의 마무리는 대체적으로 선이다. 그런 결과여야만 읽는 사람도 보는 사람도 관람료도, 시간도 아깝지 않다고 생각한다. 또한 만든 사람도 별 거리낌 없이 세상에 내 놓고 정당함을 주장하고 당당 해 한다. 그러니 결국 삶의 최고지향은 착하게 살다 죽는 것일지도 모른다.

우리나라 여자 이름 중 유달리 이름에 착할 선善자를 많이 쓴 것도 선이 가지는 의미와 무게가 그 만큼 크기 때문일 것이다. 미스코리아 선발대회에서 선이 된 미인은 진이나 미에 비해 스포트라이트를 못 받고 조금은 얼렁뚱땅 왕관을 쓰지만 한껏 함박웃음을 짓는다. 그것도 선이라는 한자가 주는 압박일지 모른다는 조금 억지스런 명분을 세워본다.

세상엔 선한 사람 반, 악한 사람 반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람 마음 하나에도 언제나 선과 악, 두 개의 마음이 존재하면서 팽팽하게 대결하고 대치한다. 그러다가 선이 이기면 착한 사람이 되는 것이고 악이 이기면 악한 사람으로 평가되는 것이다. 착함에는 다분히 양보하고 희생하고 손해 보는 것들이 함께 뒤따른다. 그들도 사람인지라 물욕도 있고 치받치는 성질도 있으리라. 하지만 착한 사람은 그것을 소유하려는 욕심을 덜어낼 줄 알고 치받치는 성질을 다독일 줄 아는 것이 조금 남다를까. 반면 소유하는 것들은 아무래도 대부분 악함과 더 가까운 거리에 있는 듯하다. 그것이 재물이나 권력에 가까우면 더 없이 좋은 궁합을 이룬다. 욕심은 끝이 없는 것이기에 그 악함은 사람의 이성과 양심을 마비시키면서까지 뻗어가는 것 같다.

동화 중에 선과 악의 극명한 대비로 자주 언급되는 것은 흥부와 놀부다. 서양에는 신데렐라가 있을 것이다. 착한 사람은 늘 악한 사람에게 구박을 당하고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는다. 하지만 결국 신의 가호를 받으며 하루아침에 환골탈태함으로써 독자에게도 본인에게도 보상을 한다. 얼마나 후련한 반전이고 통쾌한 결과인가. 하지만 누군가는 요즘 세태와 비교해서 보다 이성적으로 그 착함에 반박하기도 한다. 융통성 없고 자아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자기애가 없는 무조건적인 희생은 결국 스스로에게 선하지 않다는 논리일 것이다.

착한 사람 증후군. 오랜 세월 암묵적으로 강조되고 교육되어 온, 착하게 살아야 한다는 것이 결국 이 시대엔 하나의 증후군으로 자리한 것 일까. 상처받을지라도 무조건 착해야 한다는 명제가 알 수 없는 압박과 스트레스가 되어 병증으로 나타났는지도 모른다.

진정으로 착한사람은 스스로를 자유롭고 행복하게 만들어가는 사람이라고 한다. 남에게 착한 사람이 되기보다는 자신에게 그것을 되돌려주는 것이 옳다는 얘기다. 내가 나를 사랑할 때 다른 사람에게 그 사랑을 전달해 줄 수가 있다. 또한 평상시 자기생각을 자유롭게 드러내고 소통하는 사람은 크게 화를 낼 것도 없고 참을 것도 없기 때문에 세상을 좀 더 편하게 살아갈 수가 있다. 결국 착한사람은 내가 붙인 개념이 아니라 주변에서 나를 그렇게 평가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일부러 그렇게 보이려고 하는 것은 어쩌면 내 개인에게는 불행의 시작이 된다고 할 수 있다. 인위적인 노력은 언젠가 지치게 되고 세상에 대한 관점이 자꾸 삐딱해지는 부정적인 정서로 변질되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자꾸 나를 결정하고 나를 평가함으로써 나는 그것에서 얽매이고 벗어나지 못하고 자칫 무력감에 빠지게 된다. 자기존중감은 내가 주인이라는 확고한 믿음이 바탕이 되었을 때 생기는 마음의 상태이지 않은가. 무조건 착한 사람일 필요는 없다.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일이라면, 오히려 내가 다치는 일이라면 단호하게 NO 라고도 말하고 반격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내 자신에게 선한 사람이 결국은 세상 속에서도 착한 사람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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