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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확행을 지향하며
  • 이주옥
  • 승인 2018.02.06 0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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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주옥(수필가)

[검경일보 특별기고/ 이주옥(수필가)] 작지만 확실한 행복. 줄임말로 소확행小確幸. 올해의 트랜드로 일찌감치 각광받는 용어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수필집에서 최초로 사용됐다고 한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그의 수필집 <랑겔한스 섬의 오후>에서 ‘갓 구운 빵을 손으로 찢어 먹는 것, 서랍 안에 반듯하게 접어 넣은 속옷이 잔뜩 쌓여 있는 것, 새로 산 정결한 면 냄새가 풍기는 하얀 셔츠를 머리에서부터 뒤집어쓸 때의 기분….’등을 소확행이라고 정의 했다. 세계 경제가 침체된 저 상장 시대에 불확실한 내일을 기다리지 말고 오늘을 소중히 하자는 '욜로(YOLO)' 현상처럼, 잡히지 않는 먼 행복보다 지금 바로 만질 수 있는 근접한 행복을 추구하는 '소확행'은 삶에 대한 재발견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모든 것이 불투명한 세상이다.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게 인생이란 말은 아득한 예전부터 있어온 진리지만 급격하게 발전하고 변형되는 현시대에서는 더욱 절감된다. 혹자는 미래를 위해 교육을 받고 농사를 짓는 것은 이제 더 이상 의미나 가치가 없다고 말하기도 한다. 어쩌면 그 말은 바로 확인되지 않으면 안심하거나 믿지 못하는 불신 시대의 반증이기도 할 것이다. 언제부턴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미래에 대한 빅 픽쳐가 없다. 당장 어찌될지 모르는 뿌연 세상에 몇 십 년 후의 계획은 무위할 수도 있기 때문일 것이다.

최근 미국에선 100m 마이크로 산책 (micro walks)이 유행이라고 한다. 일반적이고 통상적인 산책은 맞지만 집에서 100m 이내의 구석구석을 매일 조금씩 세밀하게 관찰하는 것이다. 가령 어제 몽우리 졌던 벚꽃 잎이 하룻밤 사이에 얼마나 벌어졌는지, 또는 엄지손톱만큼 자그맣던 감이 얼마나 더 커지고 색깔이 변했는지, 혹은 새로 매단 새집에 혹시 알을 낳아 놓았는지 등의 사소한 일상의 풍경을 마치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듯이 살피며 걷는 산책을 의미한다고 한다. 세계를 정복하겠다든지 벼락부자가 되겠다는 허황된 꿈 대신, 아주 작고 일상적인 자연과 소재에 관심을 갖는다는 의미 일 것이다. 실상 사람들에게 중요한 가치는 성공, 재력, 명예가 아닐지도 모른다. 한 잔의 커피, 사소한 빗소리, 취향에 맞는 음악, 아름다운 시집 등 소소하고 일상적인 것들이 주된 관심사가 된 것이다. 기왕이면 꿈은 원대하게 꾸라고 했던 말이 무색하기도 하지만 스스로 행복하면 그만이지 않을까.

소확행이란, '사소한 일상을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과 또한 그것을 ‘즐기는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을 것 같다. 한때 고학력에 경제적 성장과 기술의 혁신적인 발달기를 거치며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거창하고 천편일률적인 삶의 목표가 아니라 "이런 소소한 것도 사람의 삶에 더 없이 소중한 행복이다." 라고 외치는 일종의 사회적 반기며 자성의 소리이리라. 꼭 사회적으로 훌륭한 사람이 되어야 하고 경제적으로 부를 이루며 화려한 삶을 꿈꾸지 않는다고 해서, 소박한 일상이 아무런 의미도 없고 가치도 없는 것은 아니라고 말하는 외침이다. 그동안 모든 것이 풍요로워졌지만 오히려 더 느껴지던, 알 수 없는 갈증에 대한 해답이다. 소확행은 비관적인 현실에 대한 지푸라기나 미래를 불신하는데서 오는 무기력, 또는 패배주의와는 확연히 구분되어야 한다. 현실을 원망하는 비관이 아니라 소소하지만 희망적이고 능동적인 삶을 지향하는 것이 바로 올해의 트렌드로 자리한 소확행이 아닐까. 삶이 각박해질수록 오히려 행복에 대한 담론이 다양해지고 풍성해지고 있다. 행복의 의미가 지나친 환상이 아니라 실질적인 실현 가능한 것으로 변해 가는 긍정적인 현상이다.

그렇다. 궁극적인 행복은 작지만 확실한 것일지 모른다. 분명하고 충만한 작은 행복.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행복이 아니라 내가 원하는 행복이 무엇인지, 행복에 대한 나의 기준은 무엇인지 등 나의 행복에 대한 내밀한 관찰과 질문, 그것이 바로 소확행小確幸의 시작이며 정의일 것이다.

나는 지금 무라카미 하루키의 수필집 ‘랑겔한스섬의 오후’를 주문 해 놓고 기다리고 있다. 그러면서 랑겔한스섬을 검색해 본다. 랑겔한스섬이 실질적인 섬이 아니라 동물의 췌장에 있는 내분비 세포 이름이라는 것도 새롭게 알게 된다. 이것도 행복이다. 새로운 것을 앎에 대해, 그리고 책이 도착하기를 기다리는 이 순간이. 나의 소확행의 범위는 작아도 너무 작은가.

이주옥  webmaster@pp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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