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특조위, 5개월 활동 조사보고서 발표…“국가·군, 진솔하게 사과해야”

[검경일보 조성수 기자] 5·18 민주화 운동 기간 동안 당시 계엄군이 비무장 상태의 광주시민들에게 헬기 사격을 한 사실이 38년 만에 공식 확인됐다.

국방부 5·18 특별조사위원회는 7일 헬기사격과 전투기 출격대기 의혹을 규명한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특별조사위는 “5·18민주화운동 기간 동안 육군은 공격헬기 500MD와 기동헬기 UH-1H를 이용해 광주시민을 향해 사격을 가했고 공군도 수원 제10전투비행단과 사천 제3훈련비행단에서 이례적으로 전투기와 공격기에 폭탄을 장착한 채 대기시켰다”며 “해군(해병대)도 광주에 출동할 목적으로 5월 18일부터 마산에서 1개 대대가 대기했다가 출동명령이 해제됐던 사실이 확인됐다”고 밝혔다.

다만 공군의 전투기 폭탄 장착 대기의 목적이 광주를 폭격하려는 계획에 따른 것인지, 공군에 의한 광주폭격을 포함한 진압작전계획으로 검토 되었는지 여부는 최종 결론을 유보했다.

특별조사위는 유보 사유로 “한국 공군에는 5·18과 관련된 당시의 자료가 거의 없고 당시 공군 관계자들이 상황을 잘 기억하지 못하며 공군관계자들 중 일부는 조사에 불응해 불가피하게 미국 공군과 미국 대사관 자료를 포함한 국외 자료 조사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며 그 조사에 상당한 기일이 예상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1985년에는 안전기획부(당시 안기부장 장세동)가 주도한 ‘광주사태진상규명위원회’(위원장 국무총리실 행정조정실장)와 실무위원회(일명 80위원회, 위원장 안기부 2국장)가, 1988년에는 국방부 주도로 ‘국회대책특별위원회’(위원장 국방부 차관)가 조직돼 5·18민주화운동과 관련된 많은 자료를 수집하고 그 중 일부를 왜곡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 같은 사실은 지난 2017년 9월 설립돼 5개월간 조사활동을 폈던 국방부 5·18특별조사위원회가 발표한 ‘조사보고서’에서 밝혀졌다.

사진은 영화 화려한 휴가 스틸컷.

육군·해군·공군, 3군 합동작전으로 5·18민주화운동 진압

광주에 투입된 공수부대가 비무장 시민들을 상대로 사격을 가하는 등 무력 강경진압을 실시해 이에 항거하는 일반 시민들이 대거 시위에 참여해 무장을 하게 되고 이어서 공수부대가 광주시 외곽으로 철수한 후 시 외곽을 봉쇄해 시위가 전국적으로 확산되는 것을 방지하는 한편, 광주 재진압작전을 수행한 5·18민주화운동 기간 동안 육군은 광주에 출동한 40여대의 헬기 중 일부 공격헬기 500MD와 기동헬기 UH-1H를 이용해 5월 21일과 5월 27일 광주시민을 상대로 여러 차례 사격을 가했고 공군은 수원 제10전투비행단 F-5 전투기들과 사천 제3훈련비행단 A-37 공격기들에 각각 MK-82 폭탄을 이례적으로 장착한 사실이 인정됐다.

또한 해군(해병대)은 해병대 1사단 3연대 33대대 병력을 광주 출동을 위해 마산에 대기시켰다가, 계엄군의 진압작전 변경으로 해병대의 추가 투입의 실효성이 떨어져 출동 해제되었음을 확인했다.

과거의 조사에서는 5·18민주화운동 기간 육군의 진압행위 중 지상에서의 사격이나 강경진압으로 시민을 살상한 행위를 조사하는데 그친데 반해 이번 특별조사위원회는 5·18민주화운동 진압작전에서 계엄군이 공수부대를 비롯한 상무충정작전에 참여한 육군 병력들의 발포 등과 협동작전으로서 공중에서 시민을 상대로 한 헬기에서의 사격을  실시한 것을 처음으로 밝혀냈다.

또한, 5·18민주화운동 진압은 육군과 공군, 육군과 해군(해병대)이 공동의 작전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군사활동을 수행하거나 수행 하려한 3군 합동작전이었음을 사상 처음으로 확인했다.

특별조사위는 “현재 국회에 입법 발의돼 있는 5·18 관련 특별법에 따른 특별기구의 조사를 통해 이 같은 수원과 사천의 공대지 폭탄 장착의 목적 등 5·18당시 계엄군의 광주재진압작전에 공군 전투기와 공격기에 의한 폭격이 검토되었는지 여부가 명확하게 밝혀지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특별조사위는 헬기사격의 근거에 대해 “5·18민주화운동 당시 5월 21일부터 계엄사령부는 문서 또는 구두로 수차례에 걸쳐 헬기사격을 지시했으며, 인적이 드문 조선대학교 뒤편 절개지에 AH-1J 코브라 헬기의 발칸포로 위협사격을 했었다는 증언이 있었고 헬기사격 목격자는 계엄군의 도청 앞 집단발포가 이뤄진 5월 21일과 계엄군이 전남도청에 재진입한 5월 27일에 많았다고 진술했다”고 설명했다.

계엄군 측은 지금까지 5월 21일 19시30분 자위권 발동이 이뤄지기 이전에는 광주에 무장헬기가 투입되지 않았다고 주장해 왔으나, 실제로는 5월 19일부터 31사단에 무장헬기 3대가 대기하고 있었던 사실이 기록을 통해 밝혀졌다.

또한 5월 21일 오후에 전남도청 인근과 광주천을 중심으로 헬기사격이 이뤄지는 것이 8곳에서 목격됐고, 5월 27일 새벽에는 전남도청과 전일빌딩을 중심으로 헬기사격이 이뤄지는 것이 6곳에서 목격됐다고 밝혔다.

전일빌딩 10층 내부 150개의 탄흔

전일빌딩 10층 내부에서 2016년 12월 13일 150개의 탄흔이 발견됐고,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2017년 1월 12일 이 탄흔은 UH-1H에 장착된 M60 기관총이나 개인화기 M16 사격에 의해 발생한 것으로  감정했다.

특별조사위는 코브라 헬기 사격 가능성에 대해 5월 22일 103항공대장 이○부 등 조종사 4명은 AH-1J 코브라 헬기 2대에 발칸포 500발씩을 싣고 광주에 출동했다고 진술하고 있으며, 20사단 충정작전상보 첨부자료에 의하면 103항공대는 5월 23일  전교사에서 발칸포 1500발을 수령한 점을 들어 코브라헬기에서 발칸포를 사격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밝혔다.

특별조사위는 이어 헬기사격의 의미에 대해 “5월 21일 헬기사격과 5월 27일 헬기사격은 그 의미가 완전히 다르다”면서 “5월 21일의 헬기사격은 전남도청 인근과 광주천을 중심으로 이뤄졌는데, 시위 군중을 강제로 해산시키는 한편, 전남도청 앞에 있던 공수부대와 새로 광주에 투입된 20사단 병력을 교체하려는 과정에서 비무장상태의 시민들을 향해 헬기사격을 가했다”고 말했다. 이어 “그러나 공수부대의 집단발포 후 시위대가 무장을 하게 되면서 계엄군 병력 교체 계획은 실패했다”고 덧붙였다.

또한 “계엄군은 5월 21일 헬기를 이용해 일반 시민에게 위협사격을 가했으며 무장을 하지 않은 시민에게 직접 사격을 하기도 했고 이러한 5월 21일 헬기사격은 무차별적이고 비인도적인 것으로 계엄군 진압작전의 야만성과 잔학성, 그리고 범죄성을 드러내는 증거”라면서 “특히 시민들과 물리적 충돌 과정에서 실시되었던 지상군의 사격과 달리 헬기사격은 계획적·공세적 성격을 띄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특별조사위는 “계엄군은 지금까지 5월 21일 집단발포에 대해서 무장시위대에 대한 자위권적 차원의 조치였다고 주장해 왔으나, 계엄군의 5월 21일 비무장 시민에게 가한 헬기사격은 계엄군의 이러한 주장을 뒤집는 증거로서, 민주화를 요구하는 광주시민을 상대로 한 비인도적이고 적극적인 살상행위로 재평가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5월 27일의 헬기사격은 계엄군 특공대의 전남도청 진입을 위해 주변에서 가장 높은 전일빌딩에 설치되어 있을지도 모를 LMG와 시민군을 제압하기 위해 헬기에서 사격이 이루어졌으며, 전남도청에서도 도청 진입에 앞서 헬기에서 시민군에게 사격한 경우도 있었다”면서 “칼빈 소총 등 재래식 무기로 무장한 약 300명의 광주시민을 상대로 치밀한 군사작전에 따라 공수부대 3개 여단과 2개의 정규사단 약 7300명의 병력을 투입하고 대량살상 능력을 갖춘 무장헬기까지 동원해 헬기사격을 가하고 시민을 살상한 집단살해 내지 양민 학살이었다”고 발표했다.

특별조사위원회는 “아직도 밝혀지지 않은 5·18 관련 의혹들의 진실을 규명하기 위해서는 관련 특별법이 조기에 마련되고 독립적인 조사기관의 성역 없는 자료 수집과 관련자들에 대한 조사가 보장돼야 한다”면서 “국가와 계엄군 이라는 이름으로 불법을 저질러 그 잘못된 행위로 많은 시민들이 희생을 겪었고 지금까지도 그 상처는 완전히 치유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제 국가와 군이 국민에게 진솔하게 사과하고 과거로부터의 절연을 선언할 필요가 있고, 특히 광주시민을 상대로 한 헬기사격은 용납될 수 없는 반인륜적 범죄행위로서 정부는 시민을 상대로 자행된 헬기사격에 대해 깊이 사과해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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