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주옥(수필가)

[검경일보 특별기고/ 이주옥(수필가)] "행복은 생존을 위한 지침서일 뿐 상장(賞狀)이 아니다. 행복해야 한다는 환상에서 벗어나라." 서은국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가 그의 책 '행복의 기원'에서 역설한 구절이다. 서 교수의 행복론은 생물학적 또는 진화론적 관점이기에 오히려 평범한 소시민들에게 편안하고 공감이 가는 이론인 것 같다. 그는 행복해야 한다는 명제 자체가 난센스라고 말하고 있다. 또한 인간은 행복하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생존 과정에서 행복을 느끼도록 설계됐을 뿐이라고 말한다. 어쩌면 행복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사람이며 또 거기서 만들어지는 관계라는 논리가 정립된다고 할 수 있겠다. 그의 말대로 행복은 도달했다고 상장을 받는 일은 아니다. 이렇게 하는 게 좋겠다고 말해주는 지침서일 뿐이다. 실체가 없는 행복에 도달하는 한계치가 존재할 리가 있겠는가.

대부분 삶의 궁극적 목표는 행복이라고 믿고 또한 지향하며 산다. 사람이 태어나 죽는 순간까지 행복을 꿈꾸며 열심히 질주 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행복은 딱히 ‘이것이다.’ 라고 명시되어 있지 않은 지극히 주관적인 정의라서 저 멀리에서 무지개처럼 손짓하고 있는 것 일게다. 분명한 형체도 없고 한눈에 볼 수 있게 도식화 할 수 없는 것, 그렇기에 누구도 남의 행복의 척도나 질량을 평가할 수도 없다. 결국 내 주관적인 잣대로 만족하면 되는 것이기에 오히려 모든 인간에게 공평한 목표치가 된다고 말하면 조금 난해한 주장일까.

많은 재물을 갖는 것에 행복의 목적을 둔 사람, 명예나 권력에 목적을 둔 사람. 모두 그 나름의 노력을 할 것이다. 그러니 재물이나 권력에 집착하는 사람을 무조건 나무랄 일도 아닐 것이다. 또한 부자가 가난한 사람들을 비난 할 일도 아니다. 무엇을 지향하는 것이 더 옳다고 말 할 수 없다. 자신의 주관과 잣대로 판단하니 말이다. 마음의 평화와 자기 만족감이 행복의 가장 최우선 척도가 되는 것, 결국 균형 감각이 필요할 것이다. 근래 대한민국 사람들은 '행복'과는 멀어 보인다. 어느 때보다 치열하게 살아가지만 계속되는 취업난과 경기침체 등에 지칠대로 지친 상태다. 또한 2003년 이후 줄곧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자살률 1위라는 오명도 갖고 있다. 젊은이들은 이런 우리나라를 '헬 조선(지옥 같은 한국)'이라고 부른다. 그러다보니 결국 그들은 자기 행복과 만족을 위한 자구책을 마련했다. 그것은 소소하게 낭비하기, 홧김비용, 탕진잼 (모아봐야 얼마 되지도 않으니 소소하게 탕진하는 재미나 누리자는 뜻)이다. 일명 '시발비용'으로 통용되는 홧김비용은 화가 나거나 스트레스로 인한 충동적인 소비를 뜻한다. 상당수가 충동구매로 이뤄지지만, 그리 큰돈이 아니어도 되는 경우가 많기에 그다지 부담스럽지 않게 생각한다. 당장 필요하진 않지만 평소 갖고 싶었던 물건을 사거나, 좋아하는 가수의 콘서트를 관람하며, 달달한 초콜릿 아이스크림을 사먹고 취향에 맞는 캐릭터 상품을 구입한다. 또 버스 대신 택시를 타며 자신의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것이다. 홧김비용이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들에게 적절한 해방구로 통하고 있으니 어찌 보면 자못 씁쓸하기도 하다. 결론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느끼는 주관적인 평가가 '행복'과 멀다는 사실의 반증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누구나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다. 학력이나 재력, 권력 유무를 떠나 사람이라면 당연히 가질 수 있는 권리다. 또한 어떤 것에 행복의 정의와 그 가치를 두는가도 개인의 선택이다. 건강하게 적당한 재물을 소유하며 좋은 인간관계를 이루는 것이 일반적이고 긍정적인 행복의 조건인 것 같다. 더구나 100세 시대에 이러한 행복의 조건은 더욱 의미 있어질 것이다.

학자들은 인문학을 통해 보다 참신하고 긍정적인 행복의 진정한 정의를 강의하고 사람들은 그 안에서 자기만의 행복론을 정립하며 각자의 삶을 꾸려 가면 되는 것이 아닐까.

행복은 언제나 내 가까이 있고 내 마음 안에 있다는, 너무나 평범하지만 또한 구시대 법전 같은 정의가 더욱 마음에 와 닿는 요즘이다. 별 일없이 평화로운 일상을 누리는 소소한 행복.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짙은 안개 속 같은 미래에 그나마 숨통 트이는 삶의 모습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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