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옥(수필가)

[검경일보 특별기고/ 이주옥(수필가)] 입춘 지나 확연히 달라진 날씨에 먼저 나무를 쳐다본다. 대부분 아직은 마른 가지에 겨울이 묻어있긴 하지만 하루하루 다르게 물이 오르는 축축함을 느낄 수 있다. 남녘으로는 예외 없이 꽃 소식이 날아온다.

유난히 추웠던 작년겨울이었다. 시베리아 기단의 영향이라고 기상청 관계자들은 원인을 분석하지만 나라 안팎에서 들려오는 불행한 소식이 물리적인 추위를 더 느끼게 했던 것 같다. 그래도 봄이 오면 나아질 것이라고 스스로 위로하며 나날을 보냈다. 봄이 오면 무엇보다 화사한 옷차림에 대한 기대로 설렌다. 두툼한 코트를 벗고 꽃무늬 화려한 원피스를 입고 난분분 흩날리는 벚꽃 길을 걸으면 더 이상 무엇이 부러울까.

대한민국 패션이 달라졌다. 겨우 눈만 빼고 턱부터 코 위까지 덮은 마스크가 새로운 패션 트렌드가 된 것 같다. 남녀노소 불문이다. 이른 아침 곱게 단장하고 출근길에 나서는 딸아이 얼굴에도 커다란 마스크 한 개가 씌어졌다. 새벽에 일어나 한 시간 여 공들여 단장한 화장이 빛을 발하지 못해 안타깝다. 미세먼지. 거기에 안개까지 섞이면 한 치 앞도 구분이 어려울 만치 시계가 뿌연 날이 연속이다.

흔히 봄철에 황사가 괴롭혔지만 어느 시기가 지나면 걷히는 것이기에 그런대로 견디며 지냈다. 하지만 이젠 중국발 미세먼지가 온 봄을 장악했으니 그러려니 하며 방치하기에는 그 범위는 너무 커진 것 같다. 중국발이라느니 우리나라의 공장이나 자동차 매연이라느니 설왕설래지만 아직 정확한 원인은 밝혀지지 않고 있다. 국가적 차원에서 나서 정확한 원인 규명을 하고 심각하게 대처해야 할 차례가 된 것 같다.

벚꽃 흐드러진 봄밤의 향연. 누구도 지나치지 못할 유혹이다. 따사로운 햇살과 싱그런 봄바람의 상춘. 추운 겨울을 지난 서민들의 소박한 일탈이다. 하지만 먼지로 인해 그런 소소한 일상의 재미가 사라질 위기에 놓여 있다. 새들 지저귀고 꽃잎이 벙그는 소리 대신 콜록거리는 바튼 기침 소리가 만연한다. 집 안이라고 안전하지는 않다. 빨래는 햇살 샤워 한번 못하고 실내에서 물기를 털고 있다. 바삭하게 마른 속옷을 입는 기분까지도 잃을 판이다.

아파트 마당 구석에 산수유 두 그루가 꽃을 피웠다. 마음 탓인가. 샛노란 색을 잃고 약간 노리끼리한 색을 내고 있는 듯하다. 꽃들도 청명한 햇살 아래서 더 빛나고 향기롭지 않겠는가.

쑥이며 냉이가 얼굴을 내밀 즈음이다. 살랑거리는 바람 맞으며 언덕배기에서 봄나물 캐던 추억은 누구에게나 유년이 주는 그리움의 대명사다. 요즘의 진달래나 개나리는 굳이 계절을 찾을 수 없이 겨울에도 피어나지만 올해는 유난히 속절없이 피었다 지며 눈길조차 못 받고 있을 것을 생각하니 짠하다.

올해도 더위가 일찍 찾아올 것이라는 예보다. 봄은 겨우 한 달여 엉거주춤 머무르다 때 없이 일찍 찾아드는 여름에게 자리를 내줄 모양이다. 5월이면 벌써 선풍기며 에어컨이 등장할 정도다. 가뜩이나 아쉽게 짧은 봄이건만 거기에 먼지까지 뒤덮으니 봄은 이제 영영 자리를 잃은 것일까.

맘껏 펼쳐질 때 누릴 수 있는 것은 축복이다. 겨울 끝의 봄은 언제나 시작이었고 희망의 계절이었다. 우리는 지금 변해가는 지구상에서 계절 하나를 송두리째 잃어가고 있다. 그것도 가장 따스하고 찬란하게 빛나는 봄을.

목련이 툭툭 꽃잎을 터뜨렸고 이제 벚꽃이 온통 팝콘처럼 팡팡 터지고 있다. 세상은 눈부시게 향기롭고 화려할 것이지만 그 밑을 걷는 사람들은 마스크로 코를 막았으니 그 향기는 어떻게 맡아야 할까. 화창한 봄 날 바구니 끼고 들판으로 나가 쑥이며 냉이도 캐고 싶지만 선뜻 나설 수가 없다. 그립고 귀한 것들은 문명이 깔깔거리며 다 빼앗는 것 같다. 애초 사람이 귀함을 모르고 지키지 못한 탓이리라. 그리운 것들이, 그리고 붙들고 싶은 것들이 자꾸 곁을 떠난다. 바람도 향기도 그리고 봄날의 그 기억까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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