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주옥(수필가)

[검경일보 특별기고/ 이주옥(수필가)] 세상이 전문화 될수록 사람들은 치열하게 영역 싸움을 한다. 그 누구도 자신의 것이라 믿는 것을 잃지 않으려 하고 그 어떤 것도 불특정 다수를 위해 제 것을 허술하게 허락하지 않는다. 그런 닫힌 마음은 관계의 날카로움을 가져오고 급기야 단절도 야기 시킨다. 사람들은 갈수록 의무보다는 권리를 주장하며 소리를 높이고 움켜쥐고 도전하며 관계에 첨예한 울타리를 두른다.

흔히 인성이 마르고 세상은 더없이 척박하게 돌아간다고 한탄한다. 하지만 우리는 나름대로 자구책을 선택하고 마음을 다잡는다. 그 중에 대표적인 것이 음악이나 그림, 풍경들일 것이다.

어느 날 무심히 흘러나오는 노래 한곡에 발길을 멈추거나 잠시 심난한 마음을 다독일 때가 있다. 청아한 목소리로 부르는 ‘봄이 오는 길’을 들으며 문득 한 계절이 왔음을 알고 무심히 라디오를 켜다가 들리는 ‘잊혀진 계절’이나 ‘겨울아이’를 들으며 가을이 가고 겨울임을 알아차린다. 그러다 어느 날 길거리에서 울려 퍼지는 캐럴이나 백화점의 대형 트리를 보며 크리스마스를 알고 한 해가 가고 있음을 알게 된다.

언제부턴가 거리는 물론, 상가에서도 노래듣기가 어려워졌다. 하루 종일 틀어 놓는 노래가 소음이라고 민원을 제기한 것이 첫 번째 원인이고 또한 제작사에서 음원 사용료를 요구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크리스마스 캐럴도 마찬가지다. 12월이 되기 전부터 거리에 가득 울려 퍼질 때 우리는 얼마나 따뜻한 느낌을 받았는가. 하지만 언제부턴가 슬그머니 캐럴이 사라졌다. 역시나 저작권과 소음이라는 이유로 특정 업소나 장소에서 사용료를 지불하고 한시적으로 틀수가 있다고 한다.

이제 급기야는 커피숍이나 쇼핑센터에서조차 음악을 들을 수 없을 것이라고 한다. 이번에는 저작권료를 넘어서 억대의 공연료를 청구했다고 한다. 음악이 끊긴 커피숍이나 상점을 떠 올리면 쉽게 적응되지 않을 듯하다. 그곳에 가면 요즘 인기 있는 유명 아이돌의 노래는 거의 빠짐없이 들을 수가 있었고 더불어 기분이 UP되기도 했다. 그런 분위기가 아마 매출에도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또한 사람들은 그런 소란한 틈에서도 대화가 가능했던, 다분히 멀티 플레이어 기능을 발휘했다. 물론 혹자는 소리가 너무 크고 요란했는데 이 기회에 조용한 클래식을 틀거나 라디오를 켜면 오히려 커피숍이나 카페의 분위기가 더 나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젊은이들로 북적거리는 시내의 쇼핑가나 식당은 요즘 유행하는 음악이 없다면 금세 분위기가 침체되고 그 여파는 상상이상일 것이다.

공연은 저작물 또는 음반 등을 재생해서 대중에게 공개하는 것이라고 명시된다. 법률적인 의미로 보면 오픈 된 매장에서 공공연하게 재생되었으니 분명 합당한 요구임엔 틀림없다. 이제 8월부터는 15평 이상의 매장에서 상업용 음악을 틀면 공연료 지불이 의무화 된다고 한다. 음악 시장이나 사업장에서는 별 수 없는 변화가 생기고 자구책이 필요할 것 같다.

음악이 사람의 심리에 끼치는 영향은 자못 크다. 즐겁고 신나는 음악은 분명 구매 의욕을 불러일으켰을 것이고 카페의 음악 또한 기분을 전환시켰을 것이다. 하지만 법적으로 명시 된 사안이라면 비용을 지불할 수밖에 없을 터, 사업주들은 고민일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가뜩이나 경기침체로 업주들은 울상이다. 거기에 이런 비용부담까지 해야 한다면 그 부담은 더 클 것이다. 우리는 조만간 조용한 아주 조용한 커피숍에서 소곤소곤 대화를 나누고 조용한 쇼핑센터에서 온전히 상품에만 집중할 수 있으려나. 하지만 적응은 쉽지 않을 것 같다.

언젠가 지나가는 차 안에서 들려오는 노래 한곡에 매료된 적이 있었다. 무슨 노래인지 궁금했지만 물어 볼 수도 없는 일, 가사 한 소절을 내내 읊조렸다가 검색기를 동원해서 찾아 낸 적이 있었고 지금도 그 노래를 즐겨 듣는다. 쇼핑센터에서 우연히 들었던 노래, 커피숍에서 스쳐 지나듯 들었던 노랫말이나 멜로디에 취하는 것, 충분히 즐겁고 멋진 일이다. 이제 노래 소리가 사라진 곳에 사람들의 소리만이 오롯이 남게 되려나. 그런 사람의 소리가 멋진 노래가 된다면 아쉬울 것 없겠지만…. 왠지 글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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