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주옥(수필가)

[검경일보 특별기고/ 이주옥(수필가)] 나는 세상 돌아가는 일을 글로 말하는 일을 한다. 덕분에 지구촌에서 일어나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에 두루 관심을 갖는다. 그리고는 어느 한 개인의 신상에서부터 나라 곳곳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일들을 공공연하게 언급한다. 때로는 순전히 주관적인 입장에서 개인적인 소견을 말할 때도 있다. 하지만 국가적인 대사는 내 시선으로 말하기가 애매할 때는 두루뭉술하게 세상의 시선에 편승할 때도 많다. 지극히 편향적인 나만의 잣대가 자칫 문제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조차 여의치 않을 때는 단정하지 않는 애매한 문장을 쓴다. 그래서 ~같다, ~듯하다, ~하리라 등으로 표현한다. 문제가 생겼을 때 온전히 책임지고 싶지 않은 약간은 비겁한 방편이다.

신문이나 방송은 시사적인 문제나 사건 사고는 간단명료하게 팩트만 알린다. 그 팩트 앞에서 정작 감정을 가지는 것은 독자들의 몫이기에. 하지만 한 때는 시인이 되고 싶었고 지금은 수필가라는 이름을 가진 내 글에는 약간의 간질거림이 들어가고 결국은 내 감성을 섞게 된다. 아무리 마음을 단단히 먹고 이성적이고 건조한 시선으로 바라보려 해도 어디선가 나의 감성이 묻어난다. 전문가들은 육하원칙에 의해 사실만 적으면 되는 것이 뭐 그리 어렵냐고 하지만 내겐 그저 어려운 일이다.

세상엔 숱한 팩트가 존재한다. 그 중에는 저절로 감정이 솟구쳐 눈물이 나올 것 같은 이야기도 많지만 너무 끔찍하고 삭막한 사건 사고도 많다. 하지만 그것이 오히려 감성을 건드리게 된다. 전쟁도, 살인도 숱한 감정이 함께 넘나드는데 사람 사는 세상에 어떻게 팩트만 전하고 아무렇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요즈음 유난히 말도 안 되고 상상도 안 되는 사건 사고가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다. 그야말로 망망대해 부표처럼 흐르고 있는 예멘 난민들의 처지도 마음 아프고 강진 여고생 살해사건은 더더구나 경악할 일이다. 자국에서 전문적인 공부를 하며 미래를 꿈꿨던 젊은이가 남의 나라에서 거처가 불분명한 채 불안해하면서 그물망을 손질하는 모습, 아빠 친구를 따라가다 숱한 의혹을 남긴 상태에서 산꼭대기 주검이 된 것도 팩트다. 또한 온 가족이 하나같이 상상이상의 갑질을 함으로써 대한민국은 물론, 세계적으로도 망신을 당하고 있는 대기업 오너 일가의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그런 팩트 뒤에는 얼마나 많은 감정의 물결들이 출렁이고 있는가.

나는 세 가지 패턴의 글을 쓴다. 지나가는 바람 한줄기를 바라보면서 또는 짭쪼름한 고등어 한 마리를 구우면서도 수많은 사색을 하고 거기에 감정을 삽입한다. 기자가 취재한 내용을 바로 전송 받아서 짧고 굵은 말로 세상에 전한다. 때로는 인터넷을 뒤지고 관계부처를 방문하여 250여 페이지에 달하는 프로그램 보고서를 작성하기도 한다. 그러다보니 글의 패턴을 정확히 잡고 따라가지 않으면 자칫 중심이 흔들리고 섞여서 혼란을 겪기까지 한다.

그래서 간혹은 지극히 감성을 요구하는 글인데 지나치게 이성이나 논리가 들어서서 사람의 마음이 들어설 틈이 없다고 지적을 받는다. 또는 알맞은 에피소드를 삽입해서 사람들의 공감을 얻어내야 한다고 말한다. 그것이 진정 진솔한 글이라고. 하지만 에피소드는 자칫 사생활이 드러나는 일이기에 그에 무작정 따르기도 쉽지 않다. 그들은 마음을 다 열고 내려놓아야 좋은 글을 쓴다고 가르치지만 내 삶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것이 말처럼 간단치 않다. 한편, 지극히 이성적이어야 할 시국사건이나 범죄에 관련한 글을 쓰다보면 나도 모른 울컥함이나 욱하는 감정이 들어 애꿎은 감정이 섞은 글을 쓰고 만다. 그럴 때 그들은 가차 없이 임팩트가 없다고 수정을 요구한다.

순수한 문학을 떠난 글쓰기는 결국 세상과의 대치이며 타협이라고 스스로 위로를 하지만 그저 글을 뽑아내는 기계처럼 느껴질 때가 있어 수시로 회의감에 빠진다. 하지만 요구에 맞출 줄 아는 것이 프로이리라. 오늘도 나는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팩트와 정제되지 않은 내 감정 사이에서 우왕좌왕 갈팡질팡하고 있다. 그들은 언제나 요구한다. 팩트만 말하라고, 하지만 나는 그 요란한 팩트 앞에서 여전히 감정이 넘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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