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주옥(수필가)

[검경일보 특별기고/ 이주옥(수필가)] 지난 한주는 가시지 않은 폭염과 함께 몇 사람의 각기 다른 죽음으로 인해 다소 어두운 시간 속에 있었다. 한 사람은 언제나 노동자의 편에 서서 쓴 소리, 군소리로 보약이 되어 주던 진보정치의 대명사로 불리던 국회의원이었다. 또 한사람은 29년 전 물고문 치사사건으로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박종철군의 아버지 박정기씨, 그리고 한사람은 국가적 상황이나 국민정서에 건건히 반反하는 언행으로 많은 사람들의 공분을 사던 아나운서 출신 여성기업인 겸 언론인이었다. 그들에게 공통된 명제는 ‘죽음’이었지만 거기서 파생된 의미와 감흥은 사뭇 달랐다. 그들의 사인은 자발적 선택, 천명天命, 지병이었다. 정치인은 자신이 했던 ‘어리석은 선택’에 염치를 못 이겼고 한 사람은 경험하지 못한 사람은 감히 짐작이 어려운 참척慘慽(자식을 먼저 보내는 슬픔)의 고통을 안은 사람이었다. 그리고 한 사람은 오래 안고 있던 지병을 이기지 못하고 정한 목숨을 다했다.

정치인의 자발적 죽음은 정계는 물론, 많은 국민들에게 안타깝고 충격적인 일이었다. 그가 사는 동안 얼마나 소신 있고 존경받는 사람이었는지가 사후에 더 여실히 증명되고 있다. 정치동료들은 슬픔과 회한 속에 오열했고 시민 조문객의 발길은 끊이지 않았다. 본인의 어리석음을 인정하고 극단적인 죽음을 택했겠지만 그런 그를 바라보는 사람들에겐 그 선택이 오래도록 또 다른 상처와 아픔일 수밖에 없을 것 같다.

‘탁’ 치니 ‘억’하고 죽었다는 이해불가 한 이유로 아들을 떠나보낸 순하고 평범했던 아비는, 민주화 투사가 돼서 아들의 억울한 죽음을 끝까지 껴안은 채 살다갔다. 29년이라는 한 많은 시간을 지나 정한 목숨 끝자리에는 대통령이 애도를 했고 경찰과 검찰 수장들이 조문을 했다. 박정기씨는 진정으로 시대가 바뀌었고 지난한 역사와 진실이 화해를 한 것이라고 하늘나라에서 만난 막내아들에게 당당히 말할 수 있을까. 대한민국 역사의 아픈 점 하나를 찍고 89세를 일기로 아들 곁으로 간 노인에게 우리는 할 말이 많으면서도 지극히 할 말이 없기도 하다. 그에 반하여 다른 한사람, 여성 언론인의 죽음. 애도와 추모보다는 “왜 그렇게 살았느냐”는 질책이 대부분이었고 개중에는 망자에게 과하다싶을 만큼 원색적인 표현들도 있었다. 누구든 죽음이 주는 의미는 원칙적으로는 평등한 슬픔이고 망자가 아무리 악한 사람이었더라도 죽음 앞에서는 후덕한 게 인지상정인데, 왜 그녀는 최소한 인간적 애도마저 받지 못했던 것일까.

그가 어떤 생을 살았는가는 죽음이 말해준다고 한다. 그렇기에 잘 살아야 한다는 원론적인 이유를 그것에 두는 사람들이 많은지 모른다. 다변화한 세상에 인간사 죽음의 요소는 산재해 있다. 불시에 사고를 당해 남은 사람들에게 말 한마디 못하고 떠나는 경우도 있고 느닷없이 병마가 찾아와 속수무책인 경우도 있다. 또 정신적 나약함을 못 이기고 스스로 극단의 선택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래서 당장 한치 앞도 모른다는 삶의 유한함에 더욱 고개를 끄덕거리게 된다.

사람이 태어나 한세상 사는 모양새는 얼핏 다 그만그만한 듯 보인다. 하지만 죽음은 각기 다른 의미와 가치를 남긴다. 그 삶의 방식이나 발자취에 따라 극명하고 확연한 차이를 보이면서. 그러니 대다수의 사람들은 타인의 죽음 앞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다시 점검해보고 ‘나의 삶’이 죽음 앞에서 어떻게 평가 될지를 한번쯤 생각하는 것 일게다.

사유하는 인간의 행위는 어떤 식으로라도 행적이 되어 남는다. 그것은 인간이 사회적 범위에서 벗어날 수 없는 존재라는 사실입증이다. 살면서 겪는 이러저러한 일에 감정이나 행동을 적나라하게 표출하지 못하고 참고 견디면서 사소한 말 한마디, 작은 발걸음 하나도 엽렵해야 하는 이유다.

사람은 자의에 의해서든 타의에 의해서든 제 몫의 생애를 엮어가는 것일테고 잘 살아야 함은 잘 죽는 것으로의 귀결에서 피해 갈 수 없을 것이다. 인간사에 사필귀정과 인과응보라는 말은 부정할 수 없는 진리다. 그러니 누군가의 죽음 앞에서 새삼스럽게 ‘나의 삶’을 돌아보는 것은 다른 사람의 삶에서 내 삶을 보고 제자리를 찾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루 이틀 차이로 떠난 세 사람 모두 곡진한 사연을 지닌 채 나름대로 치열하게 자기 몫의 삶을 살았으리라. ‘어리석은 선택’을 한 탓에 극단의 죽음을 택한 정치인도, 시대의 혼돈 속에 휘말려 억울하게 떠난 자식의 아비도, 그리고 마지막 가는 길에 ‘관대’하라는 말을 남겼으나 그 조차도 애도 받지 못한 여성 언론인도.

그들의 지난한 삶의 온도만큼 뜨거운 여름 날, 먼 길 떠난 세 사람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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