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주옥(수필가)

[검경일보 특별기고/ 이주옥(수필가)] 얼마 전, 밤새 열대야에 뒤척이다 찌뿌둥한 몸을 일으키는데, 아침 뉴스 헤드라인에 눈이 번쩍 뜨였다. 금괴 실은 배 한척이 울릉도 바다 밑에서 113년 만에 발견됐다는 소식이었다. 처음엔 납량영화나 만화영화 홍보인 줄 알았다. 하지만 내로라하는 국내 언론사들의 진지한 보도에 설마는 진짜가 되는 듯했다.

돈스코이 호. 러·일 전쟁 당시 울릉도 앞바다에 침몰한 러시아의 1급 철갑 순양함이다. 침몰 당시 배 안에 수많은 금화와 금괴가 있었을 것이라 주장하는 사람들에 의해 그동안 지속적으로 발굴 사업이 추진되어 왔었다고 한다. 하지만 대부분 실패로 끝났고 그저 어린이들에게 꿈과 모험의 대명사인 동화 ‘신밧드의 모험’이나 ‘보물섬’에 나옴직한, 다소 미망 같은 신비스런 스토리로 남아 있었다.

돈스코이 호는 1916년 일본이 최초로 인양 사업을 시도한 이래 우리나라의 대형건설사도 참여했다고 하니 그저 동화 같은 이야기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결국 지난달, 한 회사가 선체발견을 공표하면서 다시 화제가 되었고 그동안 설왕설래하던 사실이 현실이 되어 수면 위로 떠오르는가 싶었다. 돈으로 환산하고 역사적 의미까지 합치면 150조원에 가깝다하니 말 그대로 보물선이었다.

그 회사는 일찌감치 구체적인 인양계획을 발표하고 투자자를 모았던 모양이다. 투자자는 12만 명에 다다랐고 순식간에 수백억이 넘는 돈이 모아지며 현대판 노다지는 발밑에 쏟아지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날이 갈수록 의구심은 커졌고 투자자들에게 금괴를 담보로 잡고 가상 화폐를 판매했다는 의혹도 받았다. 날마다 조금씩 다른 진행상황이 터져 나옴으로써 괴담이 되어가는 듯 했다. 그러다 어느 사이 150조원의 가치가 슬그머니 10조원으로 줄어들더니 급기야 죄송하다는 사과문까지 나왔다. 이제 관련자들은 검찰의 부름을 받기에 이르렀으며 영락없이 사기꾼으로 전락하는 모양새다.

다람쥐 쳇바퀴 도는 일상에 미지의 세계나 가상의 현실을 상상하는 것은 분명 짜릿한 일탈이다. 그래서일까. 이성적으로는 분명히 비현실인 줄 알면서도 사람들은 SF영화나 판타지만화에 열광하기도 한다. 그러니 이번 보도를 보면서 사람들이 얼마나 전율 이는 짜릿한 상상을 하며 마음 안에 도사린 모험심이 발동되었을지 짐작이 되고도 남는다. 하지만 사기극에 가까운 사실이 표면화 되면서 금세 바람 빠진 풍선이 됐을 걸 생각하면 짠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은 가장 강력하게 힘을 발휘한다. 또한 그 사이에는 노동이 필수불가결한 매개다. 하지만 간혹은 돈과 노동 사이에서 꿈틀거리는 ‘한 쾌의 거머쥠’과 ‘불로소득’의 유혹은 소박하고 선량한 사람들을 항거불능으로 만들기도 한다. ‘한탕’이라는 목표를 둔 배팅의 유혹은 일상의 요소요소에서 간간히 뱀의 혓바닥처럼 날름거릴 때가 있다. 그러니 바다 밑에 가라앉은 천문학적 가치의 금괴는 원초적 심연의 유혹일 수밖에 없었으리라.

비트코인으로 하루아침에 벼락부자가 된 이야기도 소시민의 일상을 흔들었고, 대박을 꿈꾸며 매주 명당이라 이름 붙은 로또 가게 앞을 기웃거리는 것도 일확천금에 대한 환상일 터이다. 하지만 대박은 그저 한바탕 꾸고 마는 꿈일 때가 대부분이지 않던가. 보물선의 환상 또한 곧 손에 잡힐 것 같았던 신기루였음에 허탈한 웃음만 나올 뿐이다.

인간의 마음 바닥에 숨어 있는, 일확천금을 향한 열망의 심리를 교묘하게 이용한 주동자들 또한 어떤 절박함의 발로였을까 아니면 그들 또한 지도 한 장 들고 어딘가에 묻혀 있을 보물을 찾아 나선 현대판 신밧드였을까.

인간 생활권이 우주로까지 확장을 목전에 두고 있고 AI가 인간의 영역을 이미 침투해버린 최첨단 시대에, 어딘가 보물이 묻혀 있을지 모른다는 기대와 환상은 아직도 ‘꿈꾸는 소년’들이 많은 세상이라는 의미일까. 황당한 영화 같은 스토리에도 그에 동조하며 기꺼이 동행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아이러니하면서도 묘한 연민을 느끼게 한다. 영화나 동화 같은 현실을 꿈꾸는 것이 아직은 순수한 동심과 동의어라 생각하는 나 또한, 어쩌면 보물 한아름 캐고 싶은 신밧드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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