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주옥(수필가)

[검경일보 특별기고/ 이주옥(수필가)] 지독하게 무더운 여름이었다. 111년만의 폭염이라느니, 1994년의 최고 기온을 경신하기엔 무리 없을 것이라느니 올 여름을 겪으면서 들었던 무성했던 말들. 어떻게 들으면 교만한 인간을 향해 던지는 조롱인 것 같기도 하고 재앙의 시대에 돌입했다는 협박이나 경고처럼도 들렸다.

선풍기는 물론, 에어컨도 잠시 쉴 틈이 없었다. 도심 강가는 열대야를 이기지 못한 사람들로 불야성을 이루기도 했다. 오히려 바닷가에는 사람들이 뜸했고 대형 쇼핑몰이나 호텔로 모여들어서 바캉스 대신 쇼캉스, 호캉스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했다고 한다. 그것도 그나마 있는 사람들 얘기였을 뿐, 30일 가까이 이어진 열대야에 가난한 서민들은 죽지 못해 산 것이었을 것이다. 급기야 국민들은 정부에 누진제 폐지를 청원했고 정부는 완화와 폐지를 논의한 끝에 결국 가구당 한 2만여 원 상당을 깎아 준다고 결정지음으로써 가뜩이나 더위에 지친 서민들을 더 열나게 했다.

5월부터 이미 조짐이 보였던 올해의 더위. 대체 왜 그랬던 걸까. 히말라야 기류 때문이란다. 북태평양 고기압의 영향은 들어봤지만 난데없는 히말라야 기류라니. 그렇다면 내년에는 어떨까. 또 후년에는 어떻게 되는 걸까. 우리는 꼼짝 없이 매년 이런 더위를 겪고 살아야한다는 말일까 싶다. 혹독하다 못해 무서운 여름을 겪었다. 이제 가을이 왔다 싶지만 언제 또 ‘히말라야 기류’가 변덕을 부려 폭염이 재기할지 아무도 모른다. 길거리에는 ‘폭염은 재난입니다’라고 붙여놓은 플래카드도 보인다. 그래도 다행인 건 지구가 도는 한, 어쨌든 시간은 흐르고 선선한 가을이 오기는 할 것이라는 사실이었다.

입추 지나면 아무리 독한 더위도 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잔뜩 기대를 했지만 올해는 약 올리는 것처럼 꿈쩍도 않고 버텼다. 그러다 며칠 전 말복이 지나자 거짓말처럼 아침저녁 기온이 다르다. 매미는 제 생의 시간을 붙잡고 막바지 울음을 토해낸다. 더위를 이겨낸 사람들은 그 조차도 너그럽게 들어준다. 가는 것의 마지막 울음이기에. 이때 누군가는 말한다. 웬만하면 그간의 정리로라도 가는 것들에게 ‘다시 또 보자’ 하건만 이번 여름에겐 도저히 그 말이 나오지 않는다고, 하지만 가는 여름은 눈을 흘길지도 모른다. ‘이게 다 누구 때문이냐’고 하면서.

내년이면 여름은 다시 올 것이다. 아니 앞으로 5년 후까지 이 폭염은 계속 될 것이라고 미리 예보하고 있다. 거기다 한파까지 몰아칠 것이라고 한술 더 뜬다. 물론, 환경문제를 순식간에 해결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환경과 불가분의 관계로 얽혀 있는 기후도 그렇다. 원인이 무엇이든 지구를 갑자기 하루아침에 어떻게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영국 소설가 다프네 뒤 모리에의 소설 <새>에 나오는 대사가 생각난다. ‘그래, 오늘 밤쯤이면 이 나라 최고의 브레인이라는 사람들이 뭔가 궁리를 짜내겠지.’ 그리고 또 ‘당연히 미국이 나서주겠지요. 미국은 언제나 우방이었잖아요.’ 그러나 어느 것도 속수무책. 방송마저 중단돼버린 라디오를 끄며 주인공이 하는 마지막 말이 더 섬뜩하면서도 무겁다. ‘이제, 우리끼리 헤쳐 나가야 해.’

정말 그랬다. 더위에 쌓인 지구를 식힐 거대한 선풍기나 순식간에 냉기가 도는 바람을 유능하고 똑똑한 과학자들이 뚝딱 만들어 내기를 기대했다. 기상이변이 비단 우리나라만의 일이 아니고 전 세계적인 일이니 분명히 재난인 것. 그러니 미국을 위시한 강대국들이 속 시원한 대안을 내 놓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하지만 들리는 소식은 폭염에 사람들이 죽고 홍수가 일어나서 도시가 무너지고 이 나라 저 나라 산불소식은 끊일 줄 몰랐다. 분명 재앙이다. 그래도 처음부터 생각해보고 작은 것부터,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그것도 아주 심각하게 말이다. 소설의 대사처럼 ‘우리가 헤쳐 나가야 할 일’임이 분명하니까.

자연의 힘은 너무 강하다. 아무리 용을 써도 그의 장난이나 심술이 발동되면 속수무책인 게 인간이다. 한 며칠 계속된 삼박한 바람결에 또 무더위쯤은 쉽게 잊어버릴 것이다. 하지만 또다시 폭염과 열대야를 알리는 기상예보에 바람은 감질 맛만 남기고 사라지는건가. 추석이 코앞인데 까짓 며칠이겠지 하면서도 또 무서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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