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주옥(수필가)

[검경일보 특별기고/ 이주옥(수필가)] ‘저녁이 있는 삶’을 목표로 한 주 52시간 근무제가 시행 된 지 두 달여 가까이 됐다. 종업원 수 300명 이상인 업체나 공공기관의 근무 시간이 주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조정 된 것으로써, 하루 최대 8시간에 휴일근무를 포함한 연장근로를 총 12시간까지만 법적으로 허용한다. 300인 이상 사업장과 정부 및 공공기관은 지난 7월부터 주 52시간 근무제를 이행했고 50~300인 미만 사업장은 앞으로 1년6개월의 준비기간을 더 거쳐 2020년 1월부터, 5~50인 미만은 2021년 7월부터 순차적으로 주 52시간 근무 체제를 갖추게 된다고 한다. 이에 대해 고용부는 “노동자의 소득 감소 및 중소기업의 경영상 부담 등을 고려해 기업 규모별로 단계적으로 시행하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일단 52시간 근무제를 경험한 사람들에게 한 달의 결과는 그다지 긍정적이지 않다. 시행착오는 곳곳에서 발생했으며 의견이 분분하다. 줄어든 근무시간은 무엇보다 노동자들 급여에 첫 번 째로 영향을 끼쳤고 줄어든 급여는 가정 경제에 확실한 타격을 주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동안 정규 월급이외 초과 근무 수당은 샐러리맨들에게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이었기 때문이다.

회사들이 몰려 있는 주변의 상인들에게도 그 파급이 상상 이상이다. 근무시간이 줄어듬으로써 정시 퇴근자가 많으니 손님이 현저히 줄어든 것은 당연한 현상. 그로인해 식당이나 술집은 물론이고 하다못해 노래방조차도 울상이라고 한다. 폐업 신고하는 가게들이 늘어난다고 하니 이는 한 개인의 생계위협을 벗어나 대한민국 경제 활성화에도 악영향을 끼치는 일임이 분명하다.

워라벨(Work-life Balance)을 지향하는 처음의 의도는 근사했다. 여유 있는 시간이 국민들 삶의 질을 높일 것이라는 기대였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늘어나는 여유 시간에 시간을 핑계로 밀쳐 두었던 자기계발을 위해 어학 학원에 등록하고 취미생활을 위해 각종 스포츠 용품이 불티나게 팔린다고 한다. 또한 소원했던 가족과 함께 돈독한 시간을 갖는 고무적인 현상은 일어났다. 하지만 부작용도 나타나고 있다. 갑자기 남아도는 시간을 활용하지 못해 안절부절 하다 보니 시간 낭비와 심리적 부담을 느끼고 또한 그에 따른 취미 활동이나 여가 선용을 하려는 사람들은 그 나름의 지출이 더 늘어난다고 볼멘소리다. 또한 남자들은 이른 귀가에 가사일 분담이 늘어 또 다른 고달픔이 뒤따른다는 웃지 못 할 상황도 발생한다고 한다.

산 좋고 물 좋은 정자는 없다. 어느 일에나 시행착오는 있게 마련이고 정책이나 방침이 자리 잡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진통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생계가 걸린 문제에는 그저 느긋하게 관망만 하기란 쉽지 않다. 일단 심리적으로 불안하다. 학자들은 앞 다퉈 국민들에게 경제와 안보가 확실히 보장되지 않으면 그 나라 전체가 불안하게 흔들리는 것은 자명한 일이라고 진단한다.

올해의 화두는 소확행이다. 거기에 발맞추듯 근로시간 단축 실행이 현실화 됐다. 그 두 요소가 적절하게 짝을 이루면 작은 행복을 만끽하기 위한 확실한 발판이 되기에 더할 나위 없으리라. 일에 쫓겨 자신에게 집중할 수 없었던 직장인들에게는 더 없는 기회가 될 것이고 맞벌이 부모를 둔 어린아이들에게는 부모와 함께 할 시간이 늘어나니 행복한 가족으로의 귀환은 당연한 선물일 것이다. 하지만 흔들리는 가정 경제, 당장 필요한 금전을 위해 대다수 샐러리맨들은 저녁에 할 일을 다시 찾는 악순환이 벌어지고 있다. 정해진 지출은 빤한데 하루아침에 뭉텅 줄어든 급여는 또 다른 일자리를 기웃거리게 만든다. 가뜩이나 불안한 경제에 투잡(Two Job)을 원하는 사람들은 넘쳐나니 인원수용이 어려울 수밖에 없고 그러잖아도 청년 실업이 큰 문제인 시점에서 경제는 더욱 어수선해지고 심한 불균형을 이룬다. 마음의 여유는커녕 또 다른 압박과 상실 앞에서 행복은 조금 더 멀리 달아나는 것은 아닐까. 과연 진정한 쉼이 있는 ‘저녁’이 오긴 오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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