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주옥(수필가)

[검경일보 특별기고/ 이주옥(수필가)] 가끔 사람들이 많이 모인 자리에서 자기소개를 해야 할 때가 있다. 또한 통성명을 하고 명함을 주거나 이름표를 부착할 때도 있다. 그럴 때마다 누가 이름을 지었느냐는 질문을 자주 받는다. 내 이름이 지금 하는 일과 묘하게 맞아 떨어지면서 작명한 아버지의 예지력까지 언급된다. 내 이름은 꽤 좋은 상황에서만 쓰인다. 더 할 나위 없이 좋을 때, 긴 말 필요 없을 때 한 문장 표현에 효과적으로 쓰이는 듯하다.

솔직히 그동안 내 이름에 흡족하지 않았다. 더 세련되고 고급스런 이름에 대한 아쉬움이 있었다. 윤동주의 ‘별 헤는 밤’에 나오는 싯귀처럼 모던하고 이국적인 이름을 지어 주셨으면 더 좋았을 텐데 싶었다. 거기다 이름 두 자 모두 구슬이라는 같은 한자음을 쓴 것조차 별 성의 없다고 억지를 부렸다.

친구는 딸 아이 이름을 내 이름과 똑 같이 지었다. 어이없고 민망해하는 내게 작명가에게 꽤 많은 돈을 주고 지은 이름이라고 하며 더 천연덕스럽게 부르니 나쁜 이름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 간혹 TV에 내 이름이 자막으로 나오거나 책에 활자화 된다. 더 뺄 것도 보탤 것도 없이 내 이름 두자 넣으면 더 할 수 없이 좋다는 것이 되니 그만하면 자부심을 가질 만도 하지만 여전히 생경하고 민망하다.

미혼 시절에 감각적이고 은유적인 순 한글 이름을 미리 지어 두었을 만큼 나는 미래의 내 아이들 이름에 의미를 두었다. 하지만 남편과 의견이 맞지 않았고 결국 적당히 양보하여 큰 딸 이름을 다인茶仁이라 지었다. 고향을 상징하는 한자 하나를 넣은 것이 애향심이 대단한 사람처럼 보이지만 그보다는 아이 이름에 대한 내 의지를 제대로 펼치지 못한 보상 같은 것이었다. 하지만 큰 아이 이름은 그런대로 만족스럽다. 그러나 둘째 아이의 이름은 나랑은 한마디 상의 없이 시어머니와 남편의 합작으로 호적까지 올리고 통보했던 터라 나는 지금도 섭섭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이름은 평생 지니면서 한 사람의 이미지나 운명까지도 결정 짓는다고 생각하기에 조금 더 고민하는 성의가 있어야지 싶다.

사람은 살아가면서 나름대로 ‘값’을 해야 할 부분이 있다. 대체로 밥값, 얼굴값, 자릿값, 몸값 등이다. 다른 말로 ‘몫’이라는 표현이 있지만 ‘값’이라 표현하면 조금은 다른 뉘앙스가 풍기는 게 사실이다. 왠지 ‘몫’보다는 더 진솔하고 여유가 있으면서도 거역할 수 없는 당위성을 느낀다.

우선 얼굴값은 두 가지로 해석되는데, 잘 해서 얼굴값 하고 또한 못해서 얼굴값 하기도 하니 긍정과 부정의 중의적 의미가 있다. 자릿값은 무엇보다 무게와 책임이 나란히 한다. 또한 억울하면 출세하라는 노골적인 노래가사도 있고 권력을 지니고 권한 행세하기에 완장만큼 강한 것도 없기에 흔히 자리가 사람 만든다고도 한다.

그래서일까. 정치인들은 물론, 소규모 단체장마저 ‘자리’를 위한 치열하고 맹렬한 싸움을 한다. 하지만 그 자릿값을 제대로 하지 못했을 때는 가차 없이 죗값을 치루기도 하니 ‘자리’는 훈장이기도 하면서 아슬아슬한 단두대 같기도 하다. 특히 ‘몸값’은 이 시대에 가장 매력적이고 예민한 수식어다. 연예인이나 운동선수들은 본인들의 능력이나 인기에 따라 얼마든지 유동적인 몸값이 매겨진다. 드라마 한 편, 노래 한 곡, 그리고 메달 색깔이 그들의 ‘몸값’을 높였다 낮췄다 하니 이 또한 자본주의 시대에 파생된 유물이 아닐 수 없다. 시인 김춘수의 시처럼 내 존재가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불과할지라도 이름 앞에 다른 수식어 하나가 더 붙을 때는 그에 합당한 값을 해야 하니 그 또한 삶이 지니는 무게이리라.

요즘 내 이름에 대해 자주 생각을 한다. 비록 아버지께서 대단한 소명의식 없이 그저 적당히 지으신 이름일지라도 ‘이름값’은 해야 않겠는가 싶다. 내 이름 같은 글을 쓸 수 있다면, 아니 내가 쓴 글이 모두 그런 글이 된다면 그 이상 좋은 이름값이 있을까.

어느 날부터 나를 소개할 때 이름에 대한 감사의 말을 빼놓지 않는다. 그러면서 내 글은 아무리 졸작이어도 어쨌거나 ‘주옥’같은 글이 될 터이니 이만한 이름이 어딨냐고 너스레까지 떤다. 그러나 마음 한쪽이 조금 무겁다. 적어도 그 이름값 할 만한 명작 한 편은 써야 할 것 같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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