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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배우 故 신성일, 그의 극락왕생을 기원한다
  • 강영택
  • 승인 2018.11.05 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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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경일보 강영택 총회장] ‘한국 영화계의 큰 별’ 고(故) 신성일 씨가 지난 4일 오전 2시 25분 1년 반 동안의 폐암 투병 끝에 전남의 한 병원에서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세상을 떠났다. 향년 81세다.

고인은 지난해 폐암 3기 판정을 받은 뒤 치료를 받으며 회복에 힘써왔지만, 최근 병세가 크게 악화되면서 끝내 돌아오지 못했다. 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장례는 영화인장으로 거행된다. 장례위원회는 지상학 회장과 배우 안성기가 공동 위원장을 맡았다. 발인은 오는 6일 진행된다. 장지는 경북 영천이다.

1960년 영화 ‘로맨스 빠빠’로 데뷔한 고인은 1960-80년대를 대표하는 최고의 스타이자 국민배우였고, 국민영화인이었다. ‘맨발의 청춘’, ‘아낌없이 주련다’, ‘날개’, ‘만추’, ‘안개’, ‘군번 없는 용사’, ‘별들의 고향’, ‘겨울 여자’는 물론 2013년 출연한 ‘야관문’에 이르기까지 50년이 넘는 시간 동안 500여 편이 넘는 영화에 출연했다. 한국영화의 산증인이자 그 자체가 역사였다.

고인의 부인인 엄앵란 씨는 “가정적인 남자가 아니었다. 일에 미쳐서 집안은 나한테 다 맡기고, 자기는 영화만 하러 다녔다.”고 회고했다. 그러면서 “남편은 뼛속까지 영화인이었다. 까무러치는 때까지 영화 생각뿐이어서 가슴이 아팠다. 그렇게 버텨서 오늘날까지 많은 작품이 나오지 않았나 싶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 제22회 부산국제영화제 한국영화 회고전의 주인공으로 나서 “나는 딴따라가 아니다. 그 말을 제일 싫어한다. 1967년도에 한 스탠드바에 들어갔는데 어떤 이가 나를 보고 ”딴따라 들어오네.“라고 말하더라. 그 소리를 듣고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나는 종합예술을 하는 영화인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그 자리에서 사과를 요구하기도 했었다.”는 일화는 지금까지도 널리 회자되고 있다.

‘배우는 언제나 배우여야 한다’는 신념 아래 일이 없어도 운동을 거른 적이 없었다고 한다. 2005년 구속됐을 때 감옥에서도 콘크리트로 만든 역기를 들고, 골프채 대신 3m짜리 빗자루로 하루에 20~30번씩 스윙 연습을 했다. 추운 겨울에도 냉수로 샤워를 해 30대 청년처럼 근육이 잡힌 건강한 몸을 유지했다고 한다.

패션에도 자부심이 넘쳤다. 지난달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에선 150만 원짜리 명품 청바지를 입고 레드 카펫을 걷기도 했지만, 끝내 병마와의 사투를 이겨내지 못하고 파란만장한 인생의 무대에서 내려왔다.

검경일보 강영택 총회장

고인은 마지막 순간까지도 꼿꼿하고 강렬했다. 지난해 갑작스럽던 폐암 판정으로 모두가 놀라 입을 다물 때도 “그깟 암세포 모두 다 내쳐버리겠다.”고 의연함을 잃지 않았다.

그야말로 영화 같이 살다간 고인은 늘 도전하면서도 자유로운 삶을 지향했던 이 시대의 로맨티스트였다. 한국영화의 한 시대가 그렇게 저물었지만, 많은 이들은 그를 그리워하며 가슴에 묻었다. 고인의 극락왕생을 기원한다.

강영택  webmaster@pp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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