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주옥(수필가)

[검경일보 특별기고/ 이주옥(수필가)] 그를 한마디로 괴물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동영상으로 보는 그의 행위는 누가 봐도 괴물의 그것처럼 보였다. 단순히 본인의 심기를 상하게 했다는 이유로, 또는 자신의 치부를 은폐하기 위한 방어책으로 선택한 물리적인 폭력. 인간이 인간에게 하는 최소한의 배려나 존엄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최악의 방법이었다.

인간이 인간에게 저지르는 가장 차원 낮은 감정 표현은 폭력이다. 비폭력주의자 간디는“비폭력은 인류가 활용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힘이다.”라고 말했다. 굳이 간디의 말을 빗대어 설명하지 않더라도 동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동종의 생물체에게 인간의 탈을 쓴 그 괴물이 가한 행위는 무자비하고 저급하기 이를 데 없었다.

인간은 간혹 마음 안에 깊숙이 내재 된 폭력성으로 잔인함의 극치를 보여줄 때가 있다. 쉽게는 동물 학대와 자연파괴에서 여실히 드러나지만 요즘은 너무 자주 사람에게 그 잔인성을 행사한다. 애초 인간의 속성에는 선과 악 두 가지 성향을 다 포함하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더 없는 온정도 인간적이고 상상 이상의 잔혹함도 인간적이라고 말한다. 그 인간적이란 말 속에 포함 된 의미는 순전히 개인적일 때가 대부분이어서 그 또한 점점 더 헷갈린다.

단순하게 모바일 상으로 댓글 두어 줄 썼던 이유로 그에게 불려가 귀를 울리고 얼굴이 돌아갈 정도로 따귀를 맞던 사람, 아니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자존심도 남겨 주지 않은 무릎꿇림이 동영상에 찍혀 보는 이들마다 공분을 사게 했다. 또 한 사람에게 한 행위들은 차마 말이나 글로 표현하기조차 어려운 비인간적이고 극악무도의 절정이었다. 그 행위는 사냥꾼에게 포획되어 저항을 포기한 동물에게나 할 수 있는 반 인격적이었다. 피해자는 지성의 대명사인 대학교수다. 폭력이란 그렇게 지성마저도 무력하게 만드는 1차원적이고 저급한 일임을 분명히 보여줬다.

가해자는 대한민국에서 내로라하는 기업을 운영하고 한 분야에서 인정도 받는 사람이었다. 결국 피해자들은 사회에서 설 자리를 잃고 그 모멸을 이기지 못해 은둔자가 됐다. 그러나 가해자인 그는 버젓이 불법적인 방법으로 기하학적인 재물을 모으고 힘 있는 자들과 손잡고 호의호식하고 있었다.

사람이 사람에게 받은 상처는 어딘가에 부딪히고 넘어지는 물리적인 상처보다 훨씬 아프고 깊다. 그건 아마도 극한 상황에서나마 인간적인 배려와 연민을 기대하게 되는 것이 또 인간이고 결국 그 기대가 무너졌을 때 받는 내상의 충격 탓이리라.

예부터 말 한마디로도 사람을 아프게 해서는 안 된다고 해서 그 또한 불교에서는 보시라고 했다. 또한 봉사활동으로 유명한 어느 연예인은 ‘꽃으로도 때리지 마라’고 했다.

사람이 사람에게 할 일과 아니할 일은 의외로 단순하다. 태생과 지위, 부와 명예를 떠나 가장 원초적인 인간의 입장에서 배려하고 존중하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어떤 악감정에서도 서로 맺어진 관계의 경직성과 물리적인 힘에 의해 한 인간이 인간에게 폭력을 당하고 무릎을 꿇을 일은 없다. 그리고 가진 힘을 얼마간의 금전으로 보상하며 히죽거릴 일은 더욱 아니다.

그러나 우리 곁에는 그런 무력과 재력으로 인간이 인간에게 가하는 반인륜적인 일들이 비일비재하다. 물리적인 아픔이야 시간 지나면 아물게 되지만 마음에 받은 상처는 그 무엇으로도 치유가 어렵다. 한 남자가 휘두르는 폭력에 두 남자가 무릎을 꿇었던 일. 무엇이 한사람을 무차별 폭행하는 괴물로 만들고 그런 괴물에게 두 사람이 난타당한 이유는 또 무엇이었을까. 같은 인간으로 태어났지만 한 세상 공존의 무게가 너무 무겁고 불공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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