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주옥(수필가)

[검경일보 특별기고/ 이주옥(수필가)] 올해는 한파가 없었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입을 모았다. 해마다 멀쩡하다가도 그날만 되면 기온이 급작이 내려가서 당사자는 물론 고사장 밖에 있는 부모들도 가슴 떨고 마음 졸여야했다.

2019년도 수학능력시험이 끝났다. 한 개인에게도 그렇고 국가적으로도 거사를 치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변함없는 연례행사지만 한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 대부분의 청년들이 겪게 되는 첫 번째 통과의례가 명실공이 대학입시부터라고 할 수 있으려나. 굳이 물리적인 한파가 아니라도 충분히 마음이 얼 정도로 추운 일이다.

이미 유치원 이전부터 준비를 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대학입시. 그렇게 긴 시간 동안 준비해서 어느 하루 날에 지면을 통한 질문에 많은 날을 밤잠 못자고 했던 공부 속에서 답을 적어낸다. 점수를 어떻게 받고 어느 대학을 가느냐가 마치 일생일대 과업이나 되는 것처럼 부모와 학교, 그리고 수험생이 함께 뛰었던 시간들, 눈물겨운 고행의 시간이었다.

요 몇 달 동안, 교사 아버지가 같은 학교에 재학 중인 자식들에게 시험문제를 유출하고 정답을 알려줘서 등수를 높였다는 내신 부정의혹으로 대한민국이 시끄러웠다. 결국 수능 며칠을 남겨두고 아버지는 구속되고 자녀들은 퇴학처분을 받았다. 이만 봐도 대학 입시가 얼마나 중요한 지 단편적으로 알 수 있다. 벌건 화롯불에 손 담그는 무모함을 감행할 정도로 말이다.

그동안 배우고 공부한 내용을 질문으로 만들고 그에 맞는 정답을 사지선다 형식에서 답을 골라 점수가 나오는 게 일반적으로 말하는 시험이다. 똑같은 책으로 똑같은 가르침을 받지만 결과는 천차만별이다. 공부, 그 오묘하고 지능적인 세계에서 얼마나 노력을 기울이고 만족스런 결과를 내느냐는 순전히 개인적 역량이다. 그 개인차로 우수함과 열등함이 가려지고 소위 말하는 명문대학과 전도유망한 학과 선택에 유리한 조건을 갖게 되고 급기야는 인생의 성공과 실패를 미리 점찍기도 한다.

올 수능은 너무 어려웠던 탓에 ‘불火수능 운운하며 개탄한다. 특히 국어 한 문제가 이제껏 기울인 노력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어려웠다고 한다. 일명 ‘킬러 문제’다. 화롯불에 덴 것처럼 모두 화들짝 놀랐다. 변별력을 위한 최선책이었다 해도 씁쓸한 일이다. 하지만 분명 그 문제에 정답을 적은 수험생은 있었고 전국에 만점자가 4명이라는 발표가 났다. 입시전형이나 점수 환산은, 도무지 이해가 어렵고 골치가 아프다. 이제 거기에 매달려 또 한 차례 홍역을 치를 것을 생각하면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라는 문장이 떠오른다.

우리 아이들도 그런 과정을 거치고 이제 사회인이 됐다. 나 또한 아이 둘을 천편일률적이긴 하나 나름대로 치열함 속에서 키웠다. 때론 소신으로, 때론 부화뇌동으로 부대낌을 겪으면서 남다르게 훌륭한 결과물을 내 놓기를 바랐다. 그 사이 내 자신은 물론, 아이들도 혼돈과 혼란을 겪으며 고군분투했다. 하지만 지금, 물리적인 잣대의 성공을 했는지 묻는다면 잠시 망설여진다. 다만 모두가 가는 길에서 낙오하지 않고, 제가 속해 있는 세상 속에서 겉 돌지 않고 평범한 사회인으로 섞여 살고 있으니 감사할 따름이라고 위로 한다.

이제 입시를 시작으로 그들에게는 통과해야 할 과정들이 줄지어 서 있다. 그때그때 선택하고 또 그 결과를 보면서 기뻐하고 좌절할 것이다. 그러면서 무엇이 중요한 지 스스로 깨닫게 될 것이고 살아갈수록 제 삶의 몫이 크고 많아진다는 것도 알게 될 것이다.

사노라면 이번 국어문제처럼 누구도 풀기 어려운 문제는 곳곳에서 복병처럼 숨어 있다 불시에 튀어나올 것이다. 그렇게 화롯불처럼 뜨거운 일들을 헤쳐 나가는 게 삶이다. 또한 세상이 하는 무수한 질문엔 정답은 따로 없다. 그저 순리에 따르며 묵묵히 성실하게 살면 화롯불 같은 난데없음에도 비틀거리지 않을 수 있을 것이라는 말은 해 줄 수 있다. 수고한 수험생들에게 화롯불 같은 웅지와 파이팅을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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