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주옥(수필가)

[검경일보 특별기고/ 이주옥(수필가)]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 요즘 식으로 짧게 줄이면 ‘내로남불’이다. 이 말은 90년대 정치권에서부터 쓰기 시작했고 요즘도 여전히 정치권에서 가장 많이 인용한다. ‘자기 눈의 들보는 못보고 남의 눈에 티만 본다.’ 그리고 ‘똥 묻은 개가 재 묻은 개 나무란다.’는 속담과도 일맥상통하며 사자성어로는 아시타비(我是他比- 나는 옳고 다른 사람은 그르다)가 있다. 내가 하는 일에는 명분을 세우고 그럴듯하게 합리화하면서 남이 하는 일은 그 의미를 비하하거나 비난할 때 쓰는 말이다. 대부분 자기 위주의 시선에서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 시킬 때 사용한다.

국민들은 높은 자리에서 나랏일 하는 사람들이나 정치인들, 그리고 기업인들에게 무엇보다 도덕성과 양심을 요구한다. 어느 누구보다 타의 모범이 되어 줄 것이라는 기대를 품는다. 그들에게 나라 운영을 맡긴 입장이고 그들에 의해 국가적인 안위와 경제적인 안정이 좌지우지되기 때문에 냉정한 잣대를 들이대고 예민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들도 사람인지라 안이하고 교만한 마음으로 비도덕적이고 비양심적인 행위들을 저지른다. 하지만 그런 과오들은 어느 날 그들을 판단하고 평가하는 기준이 된다. 결국 고위직 수장으로 앉게 되더라도 그 과오들은 어떤 정책을 단행하거나 개정을 할 때 엄청난 걸림돌이 되기도 한다.

보통 임명하기 전 청문회를 통해 그들이 그 자리에 적임자인지를 평가하고 판단한다. 대부분 그간 암암리에 저지른 비리와 위법들이 밝혀지기 마련이다. 그때마다 국민들은 아연실색하고 그 당사자는 비난을 받고 신뢰감을 잃는다. 결국은 만인 앞에 적나라하게 발가벗겨져 수모만 당하고 만신창이가 돼서 퇴장하는 일이 다반사다.

사학의 공공성을 제고하고 공교육의 신뢰성을 높인다는 취지로 혁신학교 운영을 주장한 교육감은 두 자녀를 외고에 보냈던 전력이 있었다. 결국 교육청 앞으로 몰려간 학부모들에게 비난의 화살을 받고 설득력을 잃으며 내로남불의 주인공이 됐다. 또 어느 장관은 위장 전입을 수차례 했던 전력으로 그의 도덕성이 비난받고 한 순간에 위신을 잃었다. 그밖에도 음주운전과 세금탈루 등으로 국민들 앞에서 낯을 잃은 정치인들이나 유명 인사들은 수 없이 많다.

‘털어 먼지 안 나는 사람 없다’고 했던가. 사람이 일평생 살면서 사소하나마 했던 어떤 행위나 가볍게 내뱉은 언사라도 티끌 한 점 묻지 않고 한 가닥 과오 없이 살기란 거의 불가능할 것이다. 특히나 개인적인 가족사나 자녀문제, 그리고 재물에 관련된 일이면 아무리 고매한 인품이나 학식으로 뭇사람들의 칭송을 받는 사람일지라도 지극히 인간적인 모습을 보임으로써 실망감과 함께 실소하게 만든다. 결국 공적으로는 신뢰감을 잃고 개인적으로는 불명예를 얻는 일이다. 그러니 스스로 냉정한 1차 검증을 해 볼 필요가 있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비록 은밀함에 둘러싸여 위력을 얻는 나의 로맨스일지라도.

오늘도 타인의 눈에는 불륜으로 비치는 일들을 나만의 로맨스로 포장하는 일들이 곳곳에서 자행되고 있을 것이다. 물론, 충분히 명분 있고 합리적인 일이라고 판단되어서 실행에 옮기는 일도 많을 것이다. 나의 소신이 분명하고 나의 로맨스에 내가 행복하다는데 달리 할 말이 없기도 하다. 하지만 복잡다단한 세상에 타인을 떠나 내 존재가 힘을 갖기는 어지간해서는 힘들다. 함께 살아감으로 존재감을 찾고 명분을 얻는 사회라는 조직체를 떠나서는 내 머물 자리를 온전히 얻는 것 또한 어렵다. 그러니 아무리 내 인생은 나의 것일지라도 로맨스에 내 의지만을 관통시켜 아름답게 성공시키는 것은 쉽지 않다.

사랑의 기본은 자기애다. 강퍅하고 야박하기 그지없는 사람도 자신에게만큼은 너그럽다. 거기에다 문명에게 자꾸 자리를 뺏기고 매사 경쟁과 견제 속에 시달리는 사람들은 조바심을 느낄 수밖에 없는가. 갈수록 남의 시선쯤 아랑곳하지 않고 나만의 로맨스에 열중하는 낯 두꺼운 사람들이 넘쳐난다. 얼마 안가 지탄의 대상이 될지라도 우선은 달콤한 것을 어쩌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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