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주옥(수필가)

[검경일보 특별기고/ 이주옥(수필가)] 살림 경력 어언 30년이다. 눈 감고도 밥물을 맞추고 간 보지 않고도 식구들 입맛에 맞는 음식을 만들 만 한 시간이다. 하지만 30여 년 동안 친정어머니가 보내주신 반찬을 먹고 살았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어느 날 어머니의 손맛이 조금씩 변해 감을 느꼈다. 나날이 간이 세지는 반찬을 먹으면서 염치 모르고 짜네, 맵네 농담 섞인 타박까지 했다.

우리 아이들은 딱히 고유한 엄마반찬이라고 할 만한 게 없다고 지나가는 말로 한번 씩 툭 던진다. 내가 먹어봐도 내가 만든 반찬은 같은 재료라도 그때그때 맛이 다르니 훗날 어느 때 내 딸들에게 그리움이 되지 않을 것이란 생각에 미안해진다.

그러던 것이 어느 날부터 밥이 맛있게 되지 않았다. 묵은 쌀 탓이라고도 해보고 이제 밥 하는 실력까지 줄어들 만큼 나이가 들었나싶어 우울하기까지 했다. 진기도 없고 윤기도 없이 푸석푸석한 밥. 반찬이 부실해도 밥이 맛있으면 된다고 했던 어른들 말이 새삼 생각날 정도였다. 맛없는 밥은 반찬이 풍성해도 끝내는 아쉽기만 했다.

요즘의 밥솥은 멀티 플레이어다. 쌀 씻어서 물 부어 취사버튼 한번 누르면 뜸을 들인다고 말해주고 밥이 다 됐으니 잘 저어주라고까지 알려줌으로써 그 소임을 완벽하게 한다. 어느 날 작정하고 그녀의 멘트에 귀를 기울였다. 낭랑한 목소리로 뜸 들이기가 시작됐다고 했다. 3분여 남았을 즈음, 증기 배출이 된다는 멘트와 함께 추가 서서히 움직였다. 이 부분이 내 기억력과 힘겨루기를 한 부분이었기에 초 집중을 했다. 하지만 웬걸, 배출구에선 수증기가 피어오르지 않고 피식거리다 마는 것이다. 오호! 그동안 맛없는 밥이 됐던 범인이었다. 증기 기관차 화통의 연기처럼 힘차게 증기를 내뿜어야 했는데 바람 빠진 풍선처럼 피식거리다 그마저도 까무룩 사라졌다.

잽싸게 스마트 폰 검색을 했다. 전기 압력 밥솥의 고장은 대부분 증기 배출이 안 되는 것인지 그에 대한 해답이 널려 있었다. 알려준 대로 솥뚜껑에 달린 추를 풀고 밥통 바닥 쪽에 부착된 뾰쪽한 심으로 막혔을지 모르는 뚜껑 배출구의 구멍을 뚫었다. 다시 밥을 안쳐 놓고 예의 주시했다. 엔진 고장으로 시동 꺼진 자동차에 열쇠를 꽂는 마음이었다.

얼마간의 시간이 흘렀을까. 드디어 배출구를 뚫고 증기가 힘차게 뿜어져 나왔다. 환호성이 절로 나왔다. 그동안 숨구멍이 막혀 있었으니 제 딴엔 얼마나 답답했을까. 변비로 볼 일 못 본 듯 묵직하기만 했을 것이다. 작은 구멍이라도 막힌 것이 뚫리니 저렇게 힘차게 숨을 뱉어내는 것을.

나도 그랬을까. 내 안의 작은 구멍이 막힌 줄 모르고 늘 답답해하고 더부룩한 일상을 보냈는지도. 그저 타성에 젖어 윤기도 없고 진기도 없는 하루하루를 평화라고 위장하며 안주하고 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적당히 시어지고 묵어버린 김치 같은 가족들을 바라보며 그저 김치찌개를 끓이고 볶고 지지며 살았던 것이다.

내 나이 오십 중반이다. 100세 시대에 아직은 청춘이라고 해야 맞을지도 모른다. 침체되고 막힌 구멍 하나 뚫어주면 힘차게 증기배출하며 달릴 수 있는 나이다. 신체 어딘가 물리적인 고장이 난 게 아니라면 얼마든지 팔팔 끓고 수증기처럼 용트림하며 고소한 냄새 풍기며 식탁의 주인공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거기에 종종거리지 않고 서두르지 않고 느긋한 마음으로 뜸까지 들이면 윤기 차르르 흐르는 밥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2019년 기해년이 시작됐다. 누구에게나 친근하고 복을 준다는 돼지해다.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고 무언가 생산적인 일을 찾으며 막힌 것 뚫어가며 잘 먹고 잘 살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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