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주옥(수필가)

[검경일보 특별기고/ 이주옥(수필가)] “어둠이 깊을수록 별은 더 환하게 빛난다.” 참으로 고전적이고 시적이지만 물리적으로도 맞는 말이다. 별빛마저 잠든 하늘은 그야말로 칠흑이다. 하지만 인간의 일상에 문명이 잠입한 뒤로 온전히 세상이 어둠에 잠겼던 적이 있었던가 싶다.

시골의 밤은 유난히 까맸다. 외등하나 없는 골목길은 공포스럽기까지 했다. 밤 8시를 전후로 동네는 모두 잠 속에 빠진 듯 적막했고 간간히 개 짖는 소리만 고요를 흔들어 깨우고는 했다. 나 또한 유난히 초저녁잠이 많은 부모님 덕분에 덩달아 일찍 불을 꺼야 했고 텔레비전조차도 어둠 속에서 봐야 했다.

대도시의 밤은 오히려 낮보다 화려하고 유동적인지도 모른다. 서울 도심을 가로 질러 흐르는 한강에 비치는 화려한 네온은 짙게 화장하고 캉캉 춤을 추는 무희 같다. 한 밤 중에도 도시는 정념에 쌓인 남녀처럼 빛과 빛들이 서로를 껴안고 열정을 태운다. 언제부턴가 세상은 잠을 잊고 24시간 full로 깨어있는 듯이 보인다.

글 쓰는 일을 직업으로 가졌던 아이는 한 때 온 밤을 밝히며 낮과 밤의 사이클을 바꿨다. 어쩌다 한밤 중 잠에서 깨면 환한 불빛이 집을 밝히고 있었다. 밤이면 더 초롱초롱해지는 아이의 눈빛까지 더해져 마치 대낮 같았다. 노트북 화면의 불빛과 핸드폰에서 새 나오는 불빛이 어우러져 아이의 볼에 기하학적 무늬를 만들고는 했다.

간혹은 의지를 벗어나 인위적인 빛의 정령들에게 끌려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현관 입구 천장에 달린 자동 센서등은 내 작은 움직임은 물론 기침소리에도 반응하며 시도 때도 없이 불을 밝힌다. 부엌 싱크대에 달린 라디오는 단 한순간도 눈감지 않고 반짝거리며 주파수를 알리고 시간을 알린다. 미리 해 놓은 전기밥솥 보온 표시등도 빛을 발하며 묵묵히 밥의 온도를 지킨다. 냉장고 문에 달린 온도 표시 센서 장치에서 새 나오는 불빛 덕분에 한밤중에도 더듬거리지 않고 문을 열 수 있고 엎지르거나 흘리는 실수 없이 물을 꺼내 마신다.

어둠에 선 채 휘둘러보면 집은 마치 우주선 같다. 구석구석 어딘가에 부착돼 있는 기기들에서 나오는 불빛들은 나를 순간적으로 무중력 공간을 헤엄치는 우주인으로 만든다. 아니 마치 진공상태의 우주선 안을 유영하는 로봇 같다고나 할까. 내 몸 곳곳에도 센서 장치가 있어 잭을 꽂으면 자동으로 몸 구석구석에 불이 켜질 것만 같다.

사람이 빠져 나간 도심빌딩은 밤이면 비상계단에 켜진 불이 거대한 건물을 사수한다. 한강을 가로지른 대교 아치는 형형색색 네온사인을 뿜어내며 또 다른 진풍경을 연출한다. 해지는 오후, 일제히 켜지는 가로등도 꾸벅꾸벅 졸면서 온 밤을 보초 선다. 술 취해 잠든 승객을 태우고 달리는 심야 택시, 상향등 전조등 할 것 없이 모든 불빛을 쏘아대며 무한질주 한다. 자동차 안은 라디오 불빛과 내비게이션 불빛이 엉켜서 마치 사이키 조명을 켜 놓은 유흥업소 같다.

범람하는 인공 불빛 때문에 밤하늘의 별빛, 달빛이 세력을 잃고 감흥을 잃은 지 오래다. 강렬하고 화려한 빛의 포화 속에서 굳이 어두운 밤하늘의 별을 찾는 사람도 없고 교교히 비치는 달빛을 전등 삼아 밤길을 걷는 사람도 찾아보기 힘들다.

듬성듬성 달린 꼬마 알전구와 솔방울 몇 개 매달아 크리스마스트리를 만들었고 비교적 어둠에 길들여진 우리는 그 반짝임을 보려고 일부러 방 안의 불을 끄곤 했다. 하지만 지금은 수백 개의 전구로만 장식된 화려한 대형 트리가 환상적인 위세를 자랑한다. 오색 불빛을 머금은 분수가 선율을 타고 솟구치고 뼈대에 둘러진 전구만으로도 사슴을 만들어 공원을 장식한다. 장미와 튤립에도 불빛이 감겨 그 화려함이 과유불급이다.

낮밤 가리지 않고 세상은 온통 빛으로 둘러싸여 있다. 잠시도 어둠을 허락하지 않는다. 더 밝고 환하기 위해서 어느 순간은 온전한 어둠도 필요할 터, 사람들은 온종일 꺼지지 않는 불빛 때문에 날마다 불면이고 어쩌면 어둠을 모르는 빛은 더 이상 찬란하지 않은지도 모르겠다.

문득 어둠을 이기고 밝아오는 순명의 새벽빛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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