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주옥(수필가)

[검경일보 특별기고/ 이주옥(수필가)] 직장인인 두 딸은 밥은 굶을지언정 화장은 거르지 않는다. 매일 아침 1시간 가까이 공을 들인다. 화장은 남에게 보이기 위함이라고도 하지만 정작은 자기 자신을 위한 차원이라도 하니 딱히 그 부분에 대해서 잔소리 할 수는 없다. 그런 아이들에게 나는 언제부턴가 줄기차게 마스크 쓰라는 잔소리를 한다. 미세먼지 때문이다. 하지만 잠도 줄여가면서 아침 내내 곱게 화장한 제 얼굴을 가리기 싫은지 꿋꿋하게 거부하고 나섰다.

그런 어느 날, 큰 아이가 퇴근길에 제법 커다란 박스 하나를 안고 들어왔다. KF94라는 숫자가 마치 암호처럼 느껴져 알 수 없는 긴장감까지 주었다. 마스크였다. 냄새에 유난히 민감하고 거기다 비염까지 앓는 아이는 먼지와의 싸움에서 급기야 백기를 든 모양이다. 내심 반가웠다. 마스크를 쓴다고 해서 아침 화장하는 시간이 크게 줄어든 것은 아니지만 립스틱 바르는 시간정도는 벌었으니 그것도 좋은 일 아닌가 싶어서. 하지만 매일 무언가 만족스럽지 못한 찌뿌둥한 얼굴로 출근했다.

맑고 청명한 하늘 본 지가 언제였던가 싶다. 혹여 완연한 봄기운에 햇살 눈부신 날은 외출의 유혹이 강렬하지만 희뿌연 먼지에 곧 마음을 접고 만다. 혹여 그나마 맑은 날이다 싶으면 대부분 바람이 많이 불고 기온이 내려간 상태다. 이래저래 맘 놓고 바람 한 번 쐬기가 쉽지 않다. 빨래도 실내에서 마르고 어쩌다 밖에 나서 봐도 눈만 내 놓고 얼굴을 가린 사람들만 종종대며 걸어 다닌다. 혹여 아는 사람을 만난다 해도 그냥 지나치지 싶다.

먼지의 발원지에 대해 의견이 분분하다. 공공연하게 지명 된 중국은 온갖 이유를 대며 자기 나라 탓이 아니라고 발뺌 한다. 거기에 국가나 관계부처에서는 달리 대응책도 내놓지 않고 방치하는 인상이다. 국민들은 그저 불안해하며 대책만 바라고 있을 뿐이다.

그동안 북핵문제로 정작 당면해 있는 먼지로부터 국민 안전은 사뭇 뒷전인 듯했다. 세계가 주시했던 북미 회담이 허망하게 불발이 되자 국민들은 이제 내놓고 먼지 걱정을 쏟아내기 시작하고 당국에서는 대책 마련에 시동을 거는 듯하다. 미세먼지를 ‘사회재난’에 포함시키고 우선 각 학교에 미세먼지 측정과 공기정화기 설치를 의무화 하는 법안을 통과시킨 것이다. 미세먼지는 입자가 매우 작아서 흡입하면 호흡기에, 특히 폐질환에 영향을 끼친다. 미세먼지는 황산염이나 질산염 비율이 가장 높다고 하니 얼마나 끔찍한 일인가. 농작물과 생태계에도 나쁜 영향을 끼칠 것은 당연한 일이다.

오래전 “자연은 사람보호, 사람은 자연보호”라는 캠페인송이 있었다. 그저 포스터에나 나옴직한 구호 같은 가사가 신선하고 재미있어서 열심히 흥얼거렸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이제 생각해보니 그것은 현명한 선견지명이었고 무서운 경고였다. 그때부터 자연과 사람이 밸런스를 맞춰 가꾸고 지켜야 했다. 혁신적인 산업화는 대한민국의 눈부신 경제발전을 가져다주었고 우리는 정신없이 그것들을 받아들이고 누렸다. 공장에서 뿜어내는 연기는 더 풍요로운 내일을 위한 깃발이었고 나날이 늘어나는 자동차는 그런 풍요에 대한 가시적인 보상이었다. 하지만 이제 그 결과는 어떤가. 쓰레기는 이미 포화 상태고 이제와 다급하게 줄이고 자제하라고 말하지만 편리함에 익숙한 사람들은 쉽게 놓지 못한다.

‘먼지라도 되어 그대 곁으로 날아가고 싶다’는 노랫말이 있다. 연인에 대한 간절한 보고픔에 하다못해 먼지라도 되어 날아가고 싶은 그 마음이 백번 공감이 되어 하찮은 먼지마저도 가사로 만든 작가가 대단해 보였다. 하지만 이제 먼지가 되겠다고 하면 그나마 가까이 다가오던 사람도 더 멀리 달아나지 않을까 싶다.

먼지가 지겨워 차라리 춥고 바람이라도 불기를 바라는 마음이니 성큼성큼 다가오는 봄은 길을 잃고 헤맨다. 너나 할 것 없이 커다란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사람들. 마음은 또 얼마나 오그라들고 닫혀 있겠는가. 하얀 새 옷 입고 분홍신 갈아 신고서 산 너머 조붓한 길이나 햇살 맑고 바람 향긋한 들길을 걷는 꿈은 이제 우리 모두의 버킷리스트로 남을 모양이다.

저작권자 © 검경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