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주옥(수필가)

[검경일보 특별기고/ 이주옥(수필가)] 언제부턴가 봄꽃의 대명사는 벚꽃인 듯하다. 하얀 벚꽃이 마치 팝콘 터지듯 몽실몽실한 4월은 말 그대로 환장할 봄이다. 벚나무는 밤사이 은밀한 작업을 하는지, 야행 성질 때문인지 낮까지 아무 일 없이 졸고 있다가 어느 아침 눈 비비고 기지개 켜는 사이에 환하게 꽃잎을 피워낸다. 벚꽃은 온전히 봄을 닮았다. 화려하지만 찰나에 피어나고 잠시 머물다 낙화한다. 짧아서 아쉽지만 짧기에 더욱 아름답다.

일본소설에서 벚꽃의 유래를 읽은 적이 있다. 어느 산적 두목이 여자 하나를 보쌈 해 데려왔는데 그 여자는 도무지 웃지 않다가 그가 사람 머리 하나를 자르자 설핏 웃었더란다. 그 두목은 여자가 웃는 모습을 보려고 수많은 사람의 머리를 잘랐다. 참수한 머리를 나무 밑에 묻었고 그 나무에서는 너무나 어여쁜 꽃이 피어났다는 내용이었다. 치명적인 사랑의 결과물이다. 아마 벚꽃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무엇인가를 한 산적 두목의 마음을 닮았나 보다. 새삼 사랑을 위해 어떤 것까지 할 수 있는가를 생각하게 한다.

꽃잎 생긴 것은 작은 나비 같은데 하는 짓은 영락없는 애첩 같다. 애첩의 요염한 밤의 밀어에 한 사내가 온밤 내 잠들지 못하고 열정으로 피워낸 꽃인가. 벚꽃이 흐드러진 4월, 하얀색, 분홍색 꽃잎 분분히 날리는 꽃그늘 아래로 상춘객은 몰려들고 봄은 사뭇 도도하게 흐른다.

거북 등걸처럼 거친 고목에도 여린 잎은 송송 피어난다. 어디서 그 굳센 힘이 나오는 걸까. 바람 한 줄기와 빛살 한줄기에도 제 몸을 사르는 장엄함이 그 여린 벚꽃 잎에 있다. 벚꽃은 만개와 낙화까지 대략 열흘이면 충분하다. 그 사이 비라도 오면 떨어진 꽃잎은 보도블럭 위로 하얀 버짐처럼 깔린다.

시인 정연복의 노래처럼 ‘온 몸으로 뜨겁게, 온 가슴으로 열렬하게, 화끈하게 살다가 미련 없이’ 꽃잎을 떨군다. 꿈결처럼 하루아침에 화르륵 피었다가 4월에 내리는 함박눈처럼 바람에 흩날리면 그 황홀한 아름다움에 잠시 삶이 아득하고 슬퍼진다. 짧아서 더 강렬한 몇 가지가 있다. 여행지에서 우연한 만남이 그렇고 길 위를 나란히 달리다가 제 길을 찾아 우회전하며 사라지는 자동차의 뒷모습이 그렇다. 그리고 겨울 밤하늘에 떴다 사라지는 짧은 별빛, 한낮에 나타났다 사라지는 낮달의 그림자도 짧디 짧아서 더 아련하고 아름답다.  

밤 산책길은 가로등 없이도 꽃등이 환하게 밝혀준다. 봄이면 어김없이 퍼져 나오는 노래 ‘벚꽃 엔딩’. 꽤 맑은 목소리를 가진 남자 가수는 봄 내내 벚꽃 잎이 흩날리는 거리를 둘이 걷자고 꼬드긴다. 그 노래를 들으며 사람들은 아지랑이처럼 아른거리는 추억 몇 개 남기리라.  

벚꽃이 피면 사람들은 삶이 지루하다고 말한다. 화사하게 피어나 한 열흘 화려하게 살다 가는 벚꽃의 섭리가 삶의 행로에서 잠시 주저앉고 싶게 만드는 모양이다. 화무십일홍이다. 아무리 어여쁜 꽃도 열흘 이상 가지 않는데 한 백년 이어질 우리네 인생을 어찌 그 짧은 꽃의 생애에 비하겠는가. 흩날리는 꽃비 맞으며 다음 계절을 향해 걸어야 하리라. 꽃보다 많은 사람들이 이 봄에 서 있다. 그들의 웃음소리가 벚꽃처럼 환하게 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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