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주옥(수필가)

[검경일보 특별기고/ 이주옥(수필가)] 연예인을 비롯하여 재벌가 자녀들의 마약 투약이 연일 화제다. 부러울 것 없이 넉넉한 환경과 고급 스펙을 지닌 그들이 포승줄에 묶이고 모자로 얼굴을 가린 채 카메라 플래시 세례를 받는다. 또 한때는 열광하고 환호하는 팬들을 향해 여유 있게 손 흔들던 사람이 모두가 잠든 새벽 공항을 통해 도둑처럼 잠입한다. 든든한 배경에 넉넉한 경제력, 사회적 인정 등 세상이 원하는 것을 다 가진 것처럼 보이는 그들에게도 결핍은 있었을까. 하루하루 지난한 삶의 고개를 숨 가쁘게 오르내리며 사는 평범한 사람들은 그저 통탄할 일이다.

인간만사 새옹지마. 가진 자에게는 지금 누리고 있는 것들의 소중함을 일깨우고 없는 자에게는 쥐구멍 볕 들 날에 대한 희망의 메시지다. 그들 말대로 단순한 실수거나 어쩔 수 없이 굳어진 상습이라 해도 쉽게 이해받지 못할 일이다. 울먹이며 후회한다고 말하지만 때는 이미 늦다. 그러나 그들을 향해 정색하며 왜 그랬느냐 묻는 것도 실례일지 모르겠다. 분명 남의 삶을 어떻게 단순히 객관적인 잣대로만 단정 지을 수 있냐고 항변할 테니 말이다. 하지만 정신 똑바로 차리지 않으면 눈 뜬 채로 모든 걸 순식간에 잃는 세상에 제정신을 버리고 물리적인 약물에 몽롱함을 선택하며 횡설수설하는 그들에게 분명 화가 난다.

그들의 행태는 그들만의 어두운 이력으로 끝나는 것은 아니다. 그들과 연계된 기업과 가족에게도 치명타다. 세상의 사랑은 쉬워 보이지만 그 사랑이 그들의 과오를 모두 감싸고 보듬는 영원한 순애보는 아니다. 주고받는 것에 분명한 가름이 있고 지극히 현실적이고 이성적인 것이 현대인들의 사랑 방식이라는 것을, 가차 없이 불매나 퇴출을 부르짖는 모습에서 볼 수 있다.

매일 아침 두 딸 출근길에 일부 동참한다. 출근 시간이 서로 30여분 정도 간격이 있어 집에서 지하철역까지 왕복 4번을 왔다 갔다 한다. 날마다 한 시간 가까이 숨 막히는 교통난에 시달리는 아이들에게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배려이며 응원이다. 한 5분 여 정도의 짧은 동행이지만 그 사이 아이들의 일상이나 고민을 나누기도 해서 더없이 소중한 시간이다.

그런 와중에도 그들은 간혹 비나 눈이 내리는 날이면 회사 가기 싫다는 투정을 한다. 하지만 난 종종종 걸어서 출근하는 사람들을 가리키며 비록 짧은 지하철역까지라도 차타고 가는 건 호강에 겨운 것이라고 일침하거나 때론 못 들은 척 한다. 가뜩이나 전쟁 같은 삶, 때때로 드는 회의감이나 나태로 쉽게 현실을 놔 버릴 수는 없지 않은가. 애써 손 흔들며 역사驛舍로 들어가는 아이의 등 뒤로 연민의 눈빛을 보내며 나날이 더 씩씩해지기를 바랄 뿐이다. 또한 건강한 이성을 지니고 건실한 일상을 꾸리며 살아주는 것에 더없이 감사한 마음을 갖는다.

흔히 사는 것 별 거 아니라고 하지만 정작 사는 것은 별 것임을 수시로 느낀다. 뜻대로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는 인생살이에 자주 절망하고 분노도 일지만 참고 견디는 것이 보통 사람들의 삶이다. 힘겨운 삶의 고비고비에 치열함을 마약처럼 마시며 살아내지 않으면 어찌 그 무게와 중압감을 견디겠는가.

흐드러진 벚꽃이 바닥을 향해 난분분하다. 달리던 차에 비상 깜박이를 켜고 잠시 멈춘다. 말갛게 피었던 하양, 분홍 벚꽃 잎이 사그라지고 조심스레 연둣빛 새순이 오르는 것을 핸드폰에 저장한다. 켜 놓은 비상등은 더 이상 비상이 아니다. 경계의 신호도 아니다. 이 봄날에 펼쳐진 눈부신 향연을 들여다보라는 손짓이다. 화사하게 펼쳐진 봄 풍경이야말로 기꺼이 취하고 싶은 마약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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