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주옥(수필가)

[검경일보 특별기고/ 이주옥(수필가)] 그는 대한민국의 민주투사이자 전직 대통령의 아들이었다. 세 아들 중 장남이었던 그는 특별한 아버지 곁에서 고행의 동반자였고 기꺼운 동행자였다. 아들의 그 삶은 자의에 의한 운명이었을까, 그 아버지 아들만의 숙명이었을까. 평생을 인동초처럼 살면서 한 역사에 큰 점을 찍은 아버지의 줄기세포였던 아들에게는 어쩌면 자연스러운 운명이었다는 말이 더 맞을 것이다. 생각해보면 아버지가 한 나라 정치의 중심에서 격동의 세월을 산 사람이라는 것은 가족에게는 그저 영화롭고 행복하지만은 않았을 터, 그 가시밭길은 우리 같은 민초들은 감히 상상도 못할 일이다.

민주화 투사였고 한 나라의 대통령으로 살았던 것은 사나이로 태어나 한 세상 살다가면서 충분히 가치 있고 명예로운 일이었겠으나 그 가족은 그 만큼의 무게를 지니고 댓가를 치렀다. 아들은 틈틈이 닥친 고초의 상흔으로 오랫동안 병마에 시달리며 변방에서 살다 얼마 전 아버지를 따라 먼 길 떠났다.

각 언론매체는 아들의 죽음을 알리면서 어쩔 수 없이 전직 대통령이었던 아버지를 소환했고 그로 말미암은 고인의 역경을 세세히 반추했다. 그러면서 부자지간의 애틋한 일화도 언급했다. 고문 후유증으로 거동이 자유롭지 못한 아들이 뇌물 혐의로 유죄가 인정되고 의원직을 상실했을 때, 뇌물을 받았어도 좋으니 그것을 들고 똑바로 걸어가는 것을 보고 싶다는 소망이 자식을 향한 평범한 아비의 마음을 대변했다. 설사 아버지의 강요가 아닌 본인이 선택한 길이었다 해도 그런 아들의 고초를 바라보며 자책하고 고뇌했을 아비의 마음을 헤아리니 너무 공감이 가고 마음 아팠다.

잘났거나 못났거나 세상의 아버지는 다 똑같을 것이다. 간혹은, 가족을 스스로 단죄하고 처단하면서 대의를 지키고 명분을 세우는 위인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아버지들은 자식이 아프거나 위기에 처하면 그런 대의명분을 벗어 던지는 게 인지상정이다. 밖으로는 언제나 나라를 위해 뜻을 굽히지 않는 강인함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사람이지만 아들이 구설에 오르고 눈앞에서 육체적, 정신적 고통을 당하는 것을 바라보면 그저 부성애 가득한 평범한 아버지가 되는 것, 얼마든지 인간적으로 이해가 간다. 구국의 선봉에서 위기의 국가운명을 사수하는 열혈남이었던 그도 아들에게는 그저 애틋한 속내를 품은 아비였음이라.

세상의 잣대는 대체적으로 이성적이고 냉정하다. 충분히 도의적, 인간적으로 봐 줄만 한 일도 누군가, 무엇인가와 이루어진 관계 때문에 더 날카로운 비수를 맞을 때가 많다. 아마 상대적인 당파가 있기 마련인 정치권에서는 더 자주 일어나는 일이리라. 한 나라의 역사에 길이 남을 사람의 아들이라는 이유로 어쩌면 더 혹독한 고초를 당했을 그에게 아버지는 그저 영웅이기만 했을까. 대통령의 아들인 것이 그저 행복하기만 했을까. 영웅의 아내일지라도 그저 여인으로서 지아비의 사랑을 받고 싶을 것이고 아들은 아무 거리낌 없이 소박하게 부자간의 정을 나누고 싶으리라.

역사의 흐름 속에서 정치권의 대물림을 자주 본다. 하지만 대부분 그 자손들은 행복한 삶을 사는 것 같지 않다. 마치 수순처럼 단죄를 당하고 결국 최종 행선지는 감옥이다. 한 때는 범접할 수 없는 제국의 공주로 살았던 사람이 지금 영어의 몸인 것만 봐도 여실히 증명되지 않는가.

삶의 명분이란 게 꼭 대의가 있고 유력한 존재감을 드러내야 하는 것은 아닐 터, 소소담담 어루만지고 부대끼는 일상의 사소함 속에서 천륜의 사랑을 나누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치 있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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