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경일보 이주옥(수필가)] 대한민국에 때 아닌 트롯 열풍이다. 어느 종편 방송국에서 진행했던 예능 프로그램이 불러일으킨 반향이다. 12,000여명의 참가자들이 서바이벌 형식으로 예선전을 치렀고 그동안 작은 무대에서 겨우 생계유지하던 무명 가수부터 중 고등학생까지 숨어있던 트롯 실력자들은 물 만난 고기 같다. 그들의 구성진 노래에 국민들은 귀 호강을 하는 중이다.

젊은 트롯가수들의 세상의 한이란 한은 다 품은 듯 한 구성진 노래실력은 물론, 구수한 입담 안에서 품어져 나오는 수더분하고 정스런 가족사까지 더해져 정서적인 공감력까지 불러일으킨다. 남녀노소 가림 없이 저절로 빠져 들게 한다. 노래도 결국 가사와 멜로디의 밸런스가 이루는 기술이며 기교라고 할 수 있겠지만 새삼 타고 났구나 싶다.

트롯(trot)은 우리나라 대중가요 한 양식으로써 4/4박자를 기본 리듬으로, 구성지고 애상적인 느낌을 주는 음악장르다. 하지만 요즘은 세련되고 서구적인 멜로디와 가사가 대세인 세상, 대한민국 아이돌과 K-POP이 세계적인 입지로 도약하여 명성을 떨치고 있다. 이런 판국에 자못 청승맞기까지 한 멜로디에 구태의연한 가사의 트롯 열풍은 어쩌면 우리의 정서와 가장 어울리는 것을 제대로 찾고 싶은 반증일지도 모르겠다.

노래방이 등장한 이래 대한민국은 유독 노래가 일상에 깊숙이 끼어들어 있다. 노래방에서 선택하는 노래는 나이나 부류별로 조금씩 다르다. 그즈음 유행하는 댄스음악이나 고도의 가창력을 요하는 명곡 한곡쯤 뽑으면 순식간에 분위기를 압도하고 그동안과는 다른 모습으로 비춰지기에 더없는 역할을 한다. 개중에는 팝송이나 발라드를 불러야 지적이고 고급스럽다고 생각하며 곡 선택에 신중을 기하기도 한다. 또는 난데없이 찬송가나 가곡을 선택해서 분위기 다운시킨다는 핀잔을 듣기도 한다. 그때마다 나도 노래방 용 노래 한두 곡은 따로 연습해둬야겠다는 생각을 하는데, 그러기엔 함께 박수치기 좋고 거기에 적당히 몸까지 흔들 수 있는 리듬감 있는 트롯이 제격일지 모르겠다.

어느 세미나에 참석했을 때였다. 겉모습이나 말투, 그리고 써내는 글마다 고급스런 문장을 구사하는 한 문인이 간드러진 목소리와 몸짓으로 트롯을 부르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환호했고 나 또한 반전을 느꼈다. 새삼스럽게 트롯이 그런 분위기에 어울리는 노래라는 생각이 들었다. 남녀불문, 호불호 없이 함께 즐기기에 좋은 노래라는 것도 새삼 알게 됐다.

예전 농번기가 끝난 후의 꽃놀이나 단풍놀이는 고달픈 서민의 삶에 청량제 역할을 했다. 지금이야 관광버스나 열차 안에서의 음주가무는 옆 사람에게 실례 되는 일이고 고성방가니 경범죄 운운하며 금기시 하지만 막걸리 한잔에 불콰해진 얼굴로 움직이는 그들의 춤사위를 타고 흐르는 뽕짝 멜로디는 쌓이고 쌓인 노동의 고달픔과 설움까지도 치유하는 명약중의 명약이었다.

나도 요즘 유독 트롯이 귀에 감긴다. 나이 탓일까. 가사가 남다르게 들리고 목소리를 휘돌아 토해내는 슬픔이 절절하기만 하다. 끊어질 듯 이어지는 꺾기의 기술은 너무 절묘해서 저절로 탄성이 나온다. 인생사 희로애락을 담고 있는 가사는 모두 내 이야기 같고 진솔함을 담아 부르는 애상적인 멜로디에 절로 희열이 느껴진다. 아마 반백의 나이가 주는 삶에 대한 이해와 통찰이리라.

다변화한 시대에 그때그때 유행하는 것들이 시간과 함께 어느 정도 머물면 문화라는 이름으로 자리매김한다. 그 생명력은 경우에 따라서 길기도하고 짧기도 하다. 하지만 오랜 세월 우리민족의 정서를 놓고 볼 때 트롯 열풍이야말로 정작 오래 머무르고 자리매김 되어야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매일 맘에 닿는 트롯 서너 곡을 듣는다. 따로 배우지 않았는데도 자연스럽게 가사가 이어지고 멜로디가 저절로 입가에 맴돈다.

그동안 노래 부를 기회가 있을 때마다 대략 곤혹스러웠다. 내겐 신명이 없다고 스스로 단정하며 노래 부르기를 꺼려했다. 하지만 이젠 내 안에 분명히 있을 신명을 뒤적여 적당하게 꺾어 넘기며 트롯 한 곡 부를 수 있을 것 같다. 인생 그 오묘한 슬픔 한 두어 개쯤 누구 눈치 보지 않고 노래를 통해 절절하게 토해내도 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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