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오피니언
‘꽝’들의 합작
  • 이주옥
  • 승인 2019.06.25 08:23
  • 댓글 0

[검경일보 이주옥(수필가)] 퇴근 후 치과에 들러 치료를 받고 오겠다는 아이의 문자가 왔다. 부실한 이로 인해 치과를 가는 게 현재 아이의 일상에 가장 힘든 일이다. 건치를 물려주지 못한 미안함과 관리에 소홀한 자책까지 더해져 아이가 치과 가는 날은 유독 마음이 편치 않다. 치료가 끝나면 언제나 밥맛이 없다고 한다. 아마 이빨을 건드린 물리적 아픔 탓도 있겠지만 그 시간이 주는 공포 비슷한 감정도 입맛을 떨어뜨린 원인이 됐으리라.

무작정 굶길 수도 없어 요기시킬 무엇인가를 고민했다. 낙지로 죽을 끓일까 하다가 문득 병어조림 생각이 났다. 마침 햇감자도 있겠다, 부드러운 생선살은 이에 자극을 주지 않겠지 싶어서다.

집 근처에 있는 수산시장으로 달려갔다. 바깥 온도 27도를 기록하는 초여름 날씨, 오후의 시장은 한산했고 훅 끼치는 열기도 느껴졌다. 시장에 진열된 생선은 유난히 반짝반짝 윤이 났다. 흠집하나 보이지 않는다. 들여다보니 랩으로 정성스레 쌓여 있다. 아마 벌레가 달려드는 것을 방지하는 것이 주목적이겠지만 형광등 불빛 아래에서 싱싱하고 매끈해 보이는 효과를 노린 부분도 있겠지 싶다.

수산물만 취급하는 시장엔 대략 100여개 가까운 크고 작은 가게가 즐비하게 전(廛)을 펼치고 있다. 커다란 수조에서 힘차게 헤엄치는 활어부터 각종 조개류와 생선을 파는 가게, 그리고 끝자락엔 홍어만 전문으로 파는 가게가 나름 질서를 이루고 있다. 제철을 맞은 병어도 랩에 감겨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중 어른 손바닥만 한 것 가격을 물어보니 한 마리당 만원이라고 했다. 그 옆 훨씬 크고 좋은 것은 횟감으로 따로 분류해 놓은 것이란다. 난 수줍은 목소리로 2천 원 깎아서 마리 당 8천 원 씩 두 마리를 달라고 하자 주인은 진열 된 세 마리 모두 가져가는 조건이면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 조금 많다 싶었지만 손질해서 냉동실에 얼려두면 한번은 더 요리할 수 있을 것 같아서 흔쾌히 그러자고 했다. 아저씨는 조림용으로 손질해 주면서 집이 가깝냐를 물어보고 머리는 떼 줄 것인가도 물었다. 그때부터 당당한 거래는 아니었던 것 같다. 이제와 생각해보니.

감자 두어 개와 무를 조각내서 바닥에 깔고 보기에 흠집하나 없는 병어에 양념장을 끼얹어 끓이기 시작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고소한 조림 냄새가 날 것이라는 기대와는 달리 고리한 냄새가 풍겨난 것이다. 냄비 뚜껑을 열어보니 육안으로는 별 이상 없어 보였다. 하지만 젓가락으로 헤집어보니 탄력 없이 약간 검붉어 보이는 살집, 금세 냄새의 원인 규명이 됐다. 감자 또한 주군이 잃어버린 상실의 힘에 덩달아 무너진 무수리처럼 맛을 잃고 있었다. 그랬다. 처음부터 위험부담을 안았던 생선. 그것이 찝찝해서 내게 거리와 머리 탈착 여부를 물었으리라.

나는 어지간해서는 구입한 물건을 교환하거나 반품하지 않는다. 조금 부족한 구석이 있어도 그냥 대충 손해를 감수하고 사용하는 편이다. 번거롭고 귀찮은 것을 싫어하는 성격 때문이고 팔아도 되는 최소한의 상도덕은 지켰겠지 싶은 믿음 때문이다. 이번에도 먹는 것이 아니었으면 그냥 넘어가고 말았을 것이다.

구겨서 버린 영수증을 쓰레기통에서 찾아 전화를 했다. 주인은 단박에 내가 누구인지 알아차렸다. 생선 상태를 말하자 ‘그러니까 좋은 걸 사셨어야지’ 한다. 이런 어이없고 근거 없는 원리에 적반하장이 어디 있는가. 상인은 소비자에게 하자 없는 물건을 파는 것이 기본 의무이고 소비자는 지불한 돈의 가치에 대한 권리를 갖는 것이 아니던가. 신선도의 아슬아슬한 경계선에 있는 생선을 진열대에 올린 것은 상거래에 어떤 의미와 옵션이란 말인가.

그 많은 생선 가게 중에 하필 발길 닿은 곳이 거기였고 선택은 내가 했다. 30여년 가까운 주부경력이 무색한 나의 허술함과 미진한 신선도를 알면서도 두루뭉술 팔아버린 장삿속과의 불온한 합작이었다. 썩어도 준치라는 말이 있다. 아무리 상태가 악화됐어도 본래의 가치는 떨어지지 않는다는 말일 것이다. 준치의 자존감까지는 아닐지라도 적어도 반품이나 환불을 요하는 물건을 팔지 않는 것이 기본 아닐까. 내 꽝발과 꽝눈과 장사꾼의 얄팍한 꽝심의 합작은 여러 날 집 안을 휘도는 고약한 냄새였다.        

이주옥  leejo9004@hanmail.net

<저작권자 © 검경일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주옥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