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경일보 이주옥(수필가)] 혼잡한 지하철. 앉을 자리가 없다.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밖을 보지만 컴컴할 뿐 유리를 통해 내 얼굴만 낯설게 보인다. 앉아 있는 사람들을 바라본다. 고개를 들고 내 눈을 마주 보는 사람이 없다. 귀에는 이어폰을 꽂고 눈은 액정 화면을 바라보는 사람들. 어느 청년의 얼굴엔 웃음꽃이 만개했다. 그 옆의 여학생은 손으로 입을 틀어막는다. 아마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는 모양이다. 노곤한 몸을 겨우 가눈 채 눈을 감고 있는 아저씨의 귀에도 이어폰이 꽂혀 있다. 음악을 들으며 하루의 피곤을 떨쳐내는 것이리라. 모두들 자기 세계에 빠져 있는 사람들. 한 편의 모노드라마를 보는 듯하다. 군중 속에서 고독한 사람은 나뿐인 것 같다.  

요즘 세상은 혼자놀기에 부족함이 없다. 하루 종일 TV를 볼 수 있고 최근 개봉된 영화조차도 다운받아서 집에서 볼 수 있다. 소식이 끊겨 궁금한 친구도 스마트폰 터치 몇 번으로 근황을 알 수 있고 30명이 넘는 사람들과 집에 앉아서 무한 대화를 할 수 있다. 실시간으로 영상통화도 가능하고 그들이 보낸 인증 샷을 통해 어디에서 무얼 하는지 단박에 알 수 있다. 굳이 단장하고 돈 들이고 시간 들여서 밖에 나가서 만나지 않아도 된다. 함께 어울려 밥을 사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 전화 한통이면 혼자서 한‧ 중 ‧일식 구미에 맞는 음식도 배달시켜 먹는다. 외로울 틈이 없고 소통에 목마를 이유가 없다.

혼밥, 혼술. 혼자 사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생긴 단어다. 혼자 밥을 먹고 혼자 술을 먹는다는 말이다. 예전 어른들이나 우리 세대에는 혼자 밥 먹는 것처럼 서럽고 외로운 것은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저녁이면 온 가족이 다 모일 때까지 배고픔을 참고 기다렸다. 행여 식을세라 밥통을 아랫목 이불 속에 묻어 두고서 아버지를 기다리고 형제들을 기다렸다. 학교에서도 차라리 밥을 굶는 것을 택할지라도 친구 없이 혼자 밥을 먹는 것은 부끄럽기까지 한 일이었다. 하지만 요즘은 과감하게 혼자 밥을 먹고 혼자 술을 마신다. 어두컴컴한 극장에서 혼자 영화 관람도 한다. 아직도 혼자 하는 것에 ‘용기’를 끼워 넣어야 하는 나에 비하면 부러운 일이기도 하다. 혼자서 고기를 구워 먹을 수 있으면 홀로족의 가장 높은 레벨에 도달한 것이란다. 조만간 혼자서 고기를 구워 먹는 사람을 보는 일은 어렵지 않을 것 같다. 한 상에서 밥 한 끼 먹는 것으로 정을 쌓고 함께 모여 술잔 들고 건배함으로 고달픈 사회생활을 이겨내던 시절이 새삼 그립다.  

1인 가구 수가 날로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통계청 자료를 보면 전체 가구 수 27%에 육박하고 2035년에는 35%에 달할 것이라고 한다. 그에 따른 주거환경도 달라지고 있고 그들을 겨냥한 마케팅도 하루 다르게 발전하고 변하고 있다. 혼자 사는 데 따른 높은 임대료나 주거비에 수입의 대부분을 충당하지만 그들은 기꺼이 혼자 살기의 편리함을 택한다. 혼자 먹는 밥상을 예쁘게 세팅하고 커피를 내려서 우아하게 마신다. 마트에는 혼자 사는 사람들을 위해 소량의 음식들이 맛깔스럽게 포장돼 있다. 작은 평수의 오피스텔은 갖은 살림도구들을 빌트인 해 놓고 혼자 사는 사람들을 유혹한다. 혼자 있어도 외롭지 않은 세상, 어쩌다 누군가와 같이하는 것이 더 골치 아프고 피곤한 일이 돼 버린 걸까. 혼자서 좀 더 풍요롭고 멋지게 사는 일은 가장 트랜디한 현대인이 되는 관문인지도 모르겠다.

요즘은 많은 사람들이 하는 보편적인 삶이 정석이고 순리인 시대는 아니다. 젊은이들은 때가 되면 직장을 갖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뒷바라지하면서 늙어 가는 것은 기성세대의 삶을 답보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좋은 본보기가 되지 못한 우리 어른들의 탓일지도 모르겠다. 함께 모여 같이 사는 삶이 더 따뜻하고 아름답다는 것을 어떻게 설명해야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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