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박정현, '나가수'에서 스트레스 많이 받았지만 보람 느껴

박정현(35)은 1998년 데뷔 앨범 를 내고 한국 가요계에 발을 들여놓았다. 그리고 13년 동안 노래 잘 부르는 가수로 인식됐다. 그러다 올 들어 <나는 가수다>를 통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디바이자 국민요정으로 떠올랐다. 20대에도 들어보지 못한 ‘요정’이라는 말이 30대 중반 박정현에게 전혀 어색하지 않다. 지난 6개월 동안 박정현이 노래 부르는 것을 보면서 사람들은 행복감을 느꼈다.

<나가수>를 명예졸업과 동시에 수석졸업한 그녀를 만나 보면 여전히 귀엽고 소녀 같은 매력을 발견할 수 있다. 말하는 것도 조근조근하다. 사람들이 박정현에게 던지는 질문은 한결같다. “작은 체구에서 어떻게 그런 폭발적인 가창력이 나오느냐”는 것이다. 이 질문에 박정현은 살짝 웃기만 한다.

박정현은 <나가수>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노래로 ‘나 가거든’(조수미)을 꼽지만 그녀가 불러 전 국민적인 히트곡이 된 조용필의 ‘이젠 그랬으면 좋겠네’는 이제 ‘<나가수>의 박정현’을 추억할 수 있는 소중한 노래가 됐다.

CF 출연 등 데뷔 후 가장 바쁜 일정 보내

<나가수>는 그녀의 삶을 크게 바꾸었다. 연예계에 들어와 CF도 처음 찍어 봤고, 수많은 행사 출연 제의도 받고 있다. 박정현 스스로도 <나가수>를 통해 인생 자체가 바뀌었다고 했다. 박정현은 “예전에는 미용실, 식당에서 나를 알아보는 사람이 극히 적었는데 이제는 전부 다 알아봐 주신다. 나를 알아보는 사람이 많아 좋기는 하지만 조금 불편하기도 하다”고 솔직하게 털어놨다.

박정현은 <나가수>가 조금 더 일찍 시작했거나 나중에 방송됐다면 자신은 <나가수>에 참가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그만큼 <나가수>가 자신의 노래 인생에서 시의적절하게 찾아왔다는 의미다. 박정현은 “내가 음악적 활동을 줄이고 방향 설정을 하며 약간 좌절하기도 한 찰나 <나가수>를 만났다”고 말했다. 1년여간 가수 활동을 중단한 채 만학도로 공부에 매진해 지난해 5월 컬럼비아대학을 졸업한 후 음악 인생에 대한 계획을 잡고 있을 때였다.

박정현은 <나가수>에서 새로운 걸 준비하면서 힘도 들고 스트레스도 많이 받았지만 보람을 느꼈다고 했다.

1976년 미국 LA에서 태어난 박정현은 어려서부터 노래를 잘 불렀다. 그녀의 부모는 그녀가 변호사가 되길 바랐다. 항상 최고가 되기를 바라는 부모 밑에서 박정현은 줄곧 우등생의 길을 달렸다. 하지만 노래를 포기하지는 않았다.

“노래는 어릴 때 엄마가 가르쳐주셨다. 엄마가 노래를 잘하셨는 데, 나와 함께 동요를 자주 불렀다.”

시·소설 등 문학을 좋아한 그녀는 UCLA 연극영화과에 이어 미국 동부의 명문 컬럼비아대학교로 편입해 중세영문학과 비교문학을 공부했다. 요즘도 감수성을 잃지 않으려고 규칙적으로 에세이를 쓰고 있다고 한다.

박정현은 UCLA 2학년 때인 1995년 한국의 한 음반제작자의 눈에 띄어 한국으로 건너왔다. 가족을 두고 홀로 한국에 온 그녀는 한국말이 서툴러 고생을 많이 했다. 가수가 음반을 발표하면 그와 관련된 이야기를 하기 위해 방송에 출연해야 하지만 인터뷰가 안될 정도였다. 지금은 한국말 스트레스에서 많이 탈출한 셈이다.

“노래마다 다 다르게 불러요”

박정현은 요즘 콘서트에서 ‘이젠 그랬으면 좋겠네’를 엔딩곡으로 주로 부르고 있지만 누가 뭐래도 박정현 최고의 히트곡은 2002년에 발표한 4집 에 수록된 ‘꿈에’다. 데뷔 4년 만에 정점을 찍고 어쩌면 자신에게 더 이상의 노래가 나오기 힘들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박정현은 짜인 틀 속에 갇혀 있지 않고 조금씩 변화를 시도해 갔다. 목소리가 얇고 미성이 바탕이 된 자신의 R&B적 창법에 재즈, 보사노바, 솔(soul), 록 등 다른 장르와의 혼합을 끊임없이 시도하며 기존의 틀 속에서 변화와 발전을 모색해 갔다.

박정현에게는 R&B 창법이 주는 애절한 호소력만이 아닌 귀여움과 감미로움, 조근조근함, 가벼운 투정 같은 것도 담겨 있다. 이런 감수성은 ‘귀요미’ 스타일의 박정현과 썩 잘 어울렸다. 이렇게 해서 박정현은 계속 다른 것을 보여줘야 한다는 강박을 떨칠 수 있었다.

박정현이 음반을 낼 때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보컬 녹음이다. 앨범마다 새로운 톤과 창법이 묻어난다. 속삭임과 지름, 진성과 가성의 완급 조절을 절묘하게 해낸다. 그래서 박정현의 노래는 어떤 때는 뮤지컬을 보는 듯하고, 어떤 때는 가스펠을 듣는 듯하며, 뉴에이지 분위기에 젖어들 때도 있다. 노래를 들으면 한 편의 완성된 드라마를 감상한 느낌마저 든다.

“노래마다 다 다르게 부른다. 주로 가사에 맞추고 분위기와 스타일을 결정한다. ‘하비샴의 왈츠’는 뮤지컬 하듯이 했고, ‘미아’는 영화 한 편 보는 느낌이 들도록 불렀다.”

요즘 박정현은 MBC <위대한 탄생2>의 멘토로 활동하고 있다. <위탄2>의 멘토는 말을 많이 해야 한다. 말로써 지원자를 평가, 지적하고 멘티를 가르쳐야 한다. 박정현에게 멘토는 아직 낯설다.

박정현은 “지금까지 한번도 남을 가르쳐본 일이 없다. 미국에서는 내가 언니(1남2녀 중 첫째)지만 한국에 와서는 항상 나보다 나이 많은 사람들과 작업해 왔다”면서 “오디션 프로그램에 나오시는 멘티 입장이나 심리 상태는 어느 정도 알 수 있다. 그 사람들의 입장을 헤아리고, 그 사람들의 노래를 잘 들어주고 내가 가진 음악적 감성과 지식을 이야기해 준다. 난 한마디로 멘티 같은 멘토다”고 전했다.

박정현의 노래는 파워풀하면서도 부드럽다. 폭발적인 성량을 자랑하지만 이를 과잉으로 흐르게 하지 않는다. 작은 체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폭발적 가창력으로 대중을 감동시키는 ‘요정’ 박정현. 이제는 주로 공연장에서 관객과 만나고 있다. 그녀는 지방에서 단독공연 ‘조금 더 가까이’를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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