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대통령, 출범 6개월도 안돼 청와대 비서실장 등 참모진 5명 물갈이

[검경일보 이진화 기자]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 5개월여 만에 청와대 비서진에 대한 인사를 전격 단행했다. 말이 인사지 속내는 경질에 가깝다. 새 정부 출범 초반 국정운영의 불안정, 위기관리 능력 미흡 등과 관련된 것이 이번 인사의 배경이라는 게 지배적이다. 박 대통령이 기존 스타일에서 벗어날 만큼 파격적 인사를 단행한 것은 그만큼 사안의 중대성을 가늠케 한다. 박 대통령이 현 국정상황을 상당히 어렵고 무겁게 인식하고 있다는 증거가 아닐 수 없다. 2기 비서진에게 주어진 기대와 책임은 그래서 막중하다. 대통령의 국정 운영 철학과 의지를 제대로 대변하고 반영시키는 역할을 주도적으로 해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 과정에서 대통령에 대한 직언도 서슴지 않아야 한다. 사실 정부가 처한 대내외 환경은 여간 만만치가 않다. 야당이 장외투쟁에 나설 만큼 정치권의 정치력 부재는 여전하다. 여기다 수개월째 공백 상태에 있는 공기업 기관장들의 부재는 국민들로부터 많은 원성을 사고 있다. 2기 비서진들이 당장 풀어야할 숙제다. 검경일보가 집권 6개월에 즈음해 그동안 느슨했던 하반기 국정운영에 고삐를 죄려는 박 대통령의 의지를 헤아려봤다.

▲ 박근혜 대통령이 8일 청와대에서 비서실장 및 수석비서관 임명장 수여식을 마친 뒤 환담장으로 향하고 있다. (사진제공=청와대)
박근혜 대통령이 새 정부 출범 이후 5개월여 만에 청와대 비서실을 전면 개편했다. 박 대통령은 허태열 청와대 비서실장을 교체하고, 신임 청와대 비서실장에 김기춘 전 법무장관을 임명했다.

신임 김 실장은 박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꼽히는 인사로 집권 6개월에 즈음해 하반기 국정운영에 고삐를 죄기 위해 자신의 정치철학을 잘 아는 최측근 인사로 낙점을 받았다는 분석이다.

청와대 신임 정무수석에는 박준우 전 EU(유럽연합) 대사가 파격 발탁됐다. 민정수석에는 홍경식 전 서울고검장이, 미래전략수석에는 윤창번 전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 원장, 고용복지수석에는 최원영 전 보건복지부 차관이 각각 임명됐다.

정치권 일각에선 그동안 인사위원장으로서 공공기관장 인사를 관장했던 허태열 전 비서실장이 잇따른 검증 실패와 불협화음 등의 책임을 지고 물러남에 따라 공공기관장 인선작업에 탄력이 붙을 것으로 보고 있다.

청와대 관계자도 검경일보와의 통화에서 “공공기관장 인선은 순차로 진행될 것”이라고 말해 청와대 참모진에 대한 인선이 단행되면서 조만간 공공기관장 인사도 진행될 것임을 시사했다.

앞서 청와대는 ‘모피아(옛 재무부와 마피아의 합성어)’ 독식과 ‘관치금융’ 논란이 불거지자 청와대는 진행 중이던 공공기관장 인선을 전면 중단했고, 이후 후보군을 6배수까지 늘리고 검증시스템을 강화하는 등 새로운 인선 방식을 도입했지만, 아직 한국가스공사 사장 임명을 제외하면 새로운 인선은 없었다.

공공기관장 인선 지연에 따른 경영 공백 장기화는 결국 하반기 국정운영 전반에도 적잖은 부담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일부 공기업은 기관장 부재 속에 사업 차질은 물론 조직 기강해이, 경쟁력 약화 등의 파열음이 흘러나오고 있다.

공기업의 한 임원은 “될 수 있으면 9월 추석 이전에 인선이 끝나길 기대하고 있다”며 “장기간 공석인 상황에서 대행체제로 버티고 있지만, 아무래도 사업추진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산업통상자원부 산하의 한 공공기관 임원은 우리 기관의 기관장은 이미 몇 달 전 임기가 끝났지만 후임자 인선이 지연되면서 다시 자리에 엉거주춤 주저앉은 상태라고 했다.

업무가 끝난 기관장은 기관장의 이름으로 하는 사업도 없다. 그러나 딱히 하는 일도 없으면서 수천만 원씩 현직의 기관장에 해당되는 월급을 꼬박꼬박 챙길 수 있어 중견 간부들 사이에서는 부럽다는 비아냥거림까지 나온다.

임기가 끝난 기관장은 '영(令)'이 안 선다. 임기가 끝났다고 후임도 내정이 되지 않은 상황에서 자리를 비울 수도 없다. 매주 월요일에 진행하는 간부회의도 없어진지 한 달이 지났다. 임기가 끝난 임원은 퇴임하고 가기로 했던 교수자리도 시일이 지체되면서 불투명해져 고민이 깊다고 했다.

정부가 공공기관장 인선이 지연되고 있는 가운데 인선이 늦어지는 공공기관 대부분에서 벌어지고 있는 풍경이다.

공공기관 경영정보시스템 알리오에 따르면 정부 산하 공공기관은 공기업 30개, 준정부기관 87개, 기타 공공기관 178개를 합쳐 295곳이다. 이 중 현재 기관장 임기가 종료됐음에도 후임자 인선이 이뤄지지 않은 곳은 무려 27곳에 이른다.

정부가 임기가 끝난 공기업들 중에 기관장 인선 작업이 현재 진행 중인 공공기관은 한국거래소와 신용보증기금, 코레일, 한국수력원자력, 한국지역난방공사, 한국서부발전, 한국남동발전, 한국산업단지관리공단, 한국산업기술진흥원, 한국석유관리원 등이다.

이 중 지역난방공사, 산단공, 거래소 9곳은 수개월째 수장이 공석인 상태인 것으로 알려졌다. 산업기술진흥원, 서부발전 등 나머지 18곳은 임기가 끝난 기관장이 '눈칫밥'을 먹으면서 자리를 지키고 있는 실정이다.

시급한 문제는 기관장 부재에 따른 경영 공백이 장기화되면서 공공기관의 경영성과에 차질이 빚어진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온다. 실제 공공기관의 경영위기는 심각한 수준인 상태다.

지난해 말 기준 공공기관 부채는 500조원에 달한다. 이미 국가부채(445조원)를 넘어섰다. 공공기관의 발주를 기다리고 있는 민간 부문에서도 경영상의 어려움을 하소연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총체적인 부실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 박근혜 대통령이 8일 청와대에서 김기춘 신임 대통령 비서실장에게 임명장을 수여한 뒤 악수하고 있다. (사진제공=청와대)
청와대는 지난 5일 비서실장과 일부 수석비서관을 교체한 데 이어 공공기관 인사도 순차적으로 진행할 방침이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출입 기자들과 만나 "공기업 인사도 순차적으로 진행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전날 비서관 교체로 '인사공백'에 대한 우려는 오히려 커졌다.

지금까지의 인선 과정을 볼 때 비서실장 민정수석 등 인사라인의 교체로 인해 공공기관장의 인선 작업이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일각에서는 벌써 전체 공공기관장의 3분의 1 이상을 교체해야하는 내년 하반기를 걱정하기도 한다.

특히 정부 관계자는 "주요 공공기관장의 임기가 만료되는 내년 하반기에도 지금 같은 상황이 반복된다면 '공공기관 업무 대란'이 일어날 수 도 있다"고 걱정했다.

일부 전문가들은 공공기관장 인사 대란을 막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인선 작업을 시스템화 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미 마련돼 있는 공공기관 운영에 관한 법률에 맞춰 임원추천위원회가 공정하고 객관적으로 CEO를 추천하는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도록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는 설명이다.

현재 공공기관장의 인선이 늦어지고 애를 먹고 있는 것은 ‘체계적인 인사시스템 없이 청와대의 한마디 말에 인사가 결정되는 게 현재의 공공기관 경영공백 사태를 낳은 가장 큰 이유’라는 게 정치권 안팎의 분위기다.

노영기 중앙대 경제학 교수는 "설계된 시스템대로만 인선을 진행한다면 지금처럼 인선 작업이 늘어질 이유가 없다"면서 "전문성 등 업무능력 이외의 요소들을 참고하다보니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장기간 공석인 기관장부터 인선을 서둘러 달라는 요청을 (청와대에) 했다”며 “조만간 급한 곳부터 인선절차에 들어갈 것”이라고 전했다.

특히 연일 계속되는 무더위로 전국이 폭염경보에 휩싸여 있는 요즘 공공기관장 인선 작업이 2개월째 공전하면서 에너지 공기업의 사장 인선 작업도 장기화됨에 따라 전력난 해소 등 현안 해결에 적잖은 부담을 주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한수원과 남동발전, 서부발전은 지난 6월 신임 사장 공모를 마쳤지만 후보 심사 절차는 진행하지 못하고 있다.

한수원 사장 공모에는 약 15명, 남동발전과 서부발전에는 각각 20여명, 17명의 후보자가 공모에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지난 6월 일부 공공기관장에 대한 관치·낙하산 인사 논란이 일자 청와대가 공기업의 신임 사장 공모 절차를 중단시켰다. 이에 따라 한수원 등은 후보자에 대한 심사 작업을 보류했다.

지역난방공사도 지난 6월 정승일 전 사장이 퇴임한 직후 임원추천위원회를 꾸렸지만 청와대의 인사 중단 지시로 공모조차 엄두도 내지 못하는 상황이다.

이에 따라 이미 지난 4월 임기가 끝난 김문덕 한국서부발전 사장과 이미 사의를 표명한 장도수 남동발전 사장은 계속 출근하고 있다.

한수원과 지역난방공사는 각각 전용갑 부사장과 김상기 부사장이 사장 직무대행을 맡고 있지만 중요한 의사결정을 내리기 어려운 것으로 지적된다.

한수원 관계자는 "부사장이 자신의 원래 업무를 하면서 사장의 역할까지 소화해 내기란 그리 쉽지 않을 것"이라며 "정상적인 조직 운영과 속도감 있는 업무 추진을 위해서는 이른 시일 내에 공기업 사장 인선 작업을 마무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인사논란에 날씨까지 논란에 부채질을 해대자 청와대도 급해졌다. 박근혜 대통령이 출범 5개월여 만에 허태열 전 비서실장 등 청와대를 대대적으로 정리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여기다 박 대통령이 신임 비서실장에 자신의 최측근으로 꼽히는 김기춘 전 법무장관을 임명한 것도 이 같은 분위기에 무게를 더해준다. 집권 6개월에 즈음해 그동안 느슨했던 하반기 국정운영에 고삐를 죄겠다는 박 대통령의 의지가 묻어나는 대목이다.

이 같은 분위기에 편승, 벌써부터 하마평이 무성하다. 모 공기업 직원들 사이에서는 국회의원 또는 관료 출신 인사의 하마평이 돌 때마다 삼삼오오로 모여 해당 인사의 업무 스타일 등에 대해 얘기를 나눈다. 업무에 대한 집중도는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들은 "직원들끼리 유력한 사장 후보자에 대한 이야기로 많은 시간을 보낸다"며 "하루라도 빨리 인사가 마무리돼야 조직이 안정을 찾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치권 안팎에서도 같은 분위기를 감지하면서, 공기업과 공공기관장 후보 30여명의 명단이 이미 청와대에 전달된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관료 출신뿐만 아니라 학계, 연구원, 정치권 등 다양한 후보군이 명단에 들어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관치논란에 휩싸이며 한때 공공기관장 인선이 중단됐던 점을 고려하면 해당 조직 내부인사나 기업 최고경영자(CEO) 등 민간분야 전문가들이 대거 발탁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그동안 공기업 기관장들의 인선이 늦어짐에 따라 임기가 만료된 일부 공공기관장들이 공식적인 업무를 보지도 않으면서 국가의 혈세를 축내고 있다는 비난을 들어왔던 박근혜 정부. 정부 출범 5개월 만에 청와대 비서실장 등 참모진 5명을 전격 교체하면서 지지부진했던 공기업 기관장 인선에 속도를 내고 있는 박 대통령의 인선행보에 정치권의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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