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대 벤츠녀 셀프 주유소 아르바이트생에 폭행 등 갑질 횡포

▲ 검경일보 객원 칼럼니스트 이종석.

[검경일보 객원 칼럼니스트 이종석] 정의로운 세상은 힘이 있는 자들이 약하고 불행한 자들을 배려하고 붙들어 주어 더불어 평등한 세상을 만들어 가는 것인데 사람들은 모이면 일치하고 협력하기 보다는 불화하고 다투는 예가 허다하다. 이에 여러 가지로 문제를 볼 수가 있다.

특히 ‘갑’ 질의 조건은 우월감<Sense of Superiority : Superiority Complex>에 자신을 타인보다 우수하다는 그런 생각으로 인해 자기 긍정의 감정이다. 이는 정신분석학에선, 인격 장애로 질투, 오만, 자기존중감이 성취되지 않으면 일종의 수치심을 느껴 분노발작을 일으켜 정신적 공항에 빠지게 된다. 그래서 자신의 행동에 대해 옳고 그릇됨을 분별하지 못하여 “도둑이 매를 든다.”는 말도 있다.

이번 셀프주유소에서 벤츠 ‘녀’ 가 아르바이트 청년에게 ‘야 너 무엇하고 있어 도와주지 않고…….’ 거친 말에 아르바이트 생 “네 여기는 셀프 주유소입니다.” 이에 격분한 벤츠 ’녀‘는 청년의 뺨을 친 다음에 차안에 쌓아 두었던 쓰레기를 투척했다. 코 풀은 휴지 커피를 마셨던 종이 컵 등등 치욕적인 행동을 했다. 그리고 카드를 집어 던졌다. 이런 무례한 행동을 왜 했을까? 이를 ’갑 질이다. 고 우리들의 감정으론 정의를 한다.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한 사회를 이루고 또 이해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 데 일치하고 화합하기보다는 오히려 모순대립이 생기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를 에머슨은 “계층 간 대립이 심화되고 있는 것은 조화와 균형의 상실이라” 고 했다.

조화와 균형이 왜 깨어지는 것일까? 힘이 있고 행복한 자들이 지나치게 자기 우월감에 빠져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해봄이 어떠랴! 대한항공 기내 간식‘땅콩’ 때문에 빚어졌던 ‘갑’ 질은 우리국민의 수준을 세계에 알린 부끄러운 예라 하겠다. 근래엔, 몽고 간장 회장이 자신의 운전자를 폭행했던 ‘갑’ 질도 다 힘이 있는 자들에 의한 것이다.

벤츠 2016 메르세데스 마이바르 S 클래스 가격이 23.300에서 29.500만원에 등기이전까지의 기타 비용을 합치면 상당한 부의 상징이다. 감히 젊은 세대들에겐 상상을 초월한 것을 소유했다면 그 신분 상승은 대단하다. 그래서 사람들은 좋은 차를 타고 좋은 집에서 사는 것을 선호하고 있다. 그러나 아무리 노력해도 그 꿈을 이루지 못하는 사람들 얼마든지 있다고 한다면, 50대 벤츠‘녀’는 어쩌면 신분상승의 욕구를 충족했을 것이다. 그러면 가진 자의 덕목이 무엇인가를 깨닫고 절제하고 겸손했다면 그 행복을 더 오래 지킬 수가 있었을 것이다. 지금 폭행혐의로 기소의견이 돼 검찰에 곧 송치가 될 것이다.

한 때 모 재벌이 자식이 폭행을 당한 것에 대한 보복적인 폭행행위로 인해 무서운 형벌을 받는 것을 온 국민이 보았다. 돈의 위력도 법 앞에선 무력해 초라한 병색으로 심판을 받았으니 ‘갑’ 질을 일삼는 무례한 자들이 이를 경고 삼아서 성숙한 시민의식으로 내가 기쁘고 즐거운 만큼, 슬프고 고통 받는 불행 자들에게 연민의 정을 베풀고 내가 건강하고 뛸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면 스스로의 힘으로 일어설 수없는 자들을 붙들어 주어야 할 것이다.

나이 50대라면 인생의 쓴 맛과 단 맛을 다 겪은 세대가 아닌가! 어쩌자고 그런 행동을 해 세상에서 손가락질을 받는가! 자신도 자식이 있는데, 이는 가진 것이 넘치고 신분상승이 외부조건으로 이루어졌다. 고 하지만 정신적인 빈곤의 결과인 것이다.

인간은 살아가는 과정에서 여러 가지 이유와 원인에 의해 열등감을 가지게 된다. 그래서 이를 극복하려고 노력한다. 알프레드 아들러 <Adler>란 정신분석학자는 열등감을 극복하는 데는 그 사람의 생활양식이 형성되어 진다고 했다. 즉 내가 지금 빵을 먹는 순간이라면 굶주리고 고통 받는 사람을 생각할 때에 넘치는 욕구를 자제할 수가 있고 원망과 불평을 일삼는 자들이 진정한 감사와 자신에게 주어진 축복과 행복을 타인과 함께 공유할 수가 있을 것이다. 이런 사람은 벤츠를 타거나 더 호사를 누린다고 해도 ‘갑‘ 질을 일삼지 않고 겸손한 사람으로 섬김의 도리를 행할 것이다.

사회학자인 장 보르리야르 <Jean Baudrillad>는 신분상승 욕망의 표출을 ‘패노폴리’ 효과라고 정의했다. 이는 집합이라는 뜻이 있으며 개인의 소유를 통해 엘리트란 생각을 가지게 되어 과소비를 유발하고 비교심리와 같은 불건전성에 빠지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분수 ‘分數’에 맞는 생활을 해야 자신은 행복하겠고 타인에겐 고통을 주지 않을 것이다.

세계적인 화가 밀레는 당시 귀족 중심의 장식적인 초상을 그리지 않고 농부를 중심으로 그림을 그렸다. 그래서 그를 천시하여 ‘농부화가’란 별명도 수식어처럼 따라 다녔다. 그를 아꼈던 친구들이 출세를 위해 만류를 했지만 밀레의 겸손은 높고 화려한 것을 버렸다. 씨 뿌리는 사람. 저녁기도. 이삭줍기 만종. 등 그 시절엔, 인정을 받지 못했지만, 후일 세계적인 명작으로 평가가 되었다. 신분상승의 욕망은 덧과 같아서 인간을 메이게 하고 조여서 폐망하게 될 뿐이다. 벤츠 ‘녀’야 무엇이 참이고 무엇이 신분상승의 길인가를 깨달았으면 한다.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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