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칼럼] 세상은 요지경 속이다. 짜가가 판치는 세상

▲ 검경일보 객원 칼럼니스트 이종석.

[검경일보 객원 칼럼니스트 이종석] 무척 오래 전이다. 탤런트 신신애는 “세상은 요지경 속이다.”란 가요로 대 히트를 했다. 요즈음 가수 이애란의 백세시대 그 이상이었을 것이다. 젊은 댄스 싱거들처럼 화려하진 못했지만 순박한 몸짓과 저음으로 불렀다. 시청자들은 마냥 즐거워했다 심지어는 천진난만한 아이들까지도 흥에 겨워 “짜가가 판친다.” 라고 춤을 추며 불렀다. 왜 이런 대중가요가 그 시대의 사람들을 매료했을까? 한 중 수교 후 중국산 저가 상품이 범람했고 짝둥이란 신종어가 파생했기 때문일까! 그보다 정의롭지 못한 세상에 대한 풍자인 것이다.

정의란, 힘이 있고 권력이 있는 자들이 가난하고 병들어 쓰러진 자들을 붙들어 주고 그들의 잃어버린 것을 찾아 주기 위한 온정이다.

탈무드에 보면 어느 날 한 판관이 외나무다리를 건너는 데 뒤에서 그를 부축해 주는 사람이 있었다. “판관이 나를 도와주는 이유가 무엇인가?” 물었더니 “제가 내일 송사판결이 나옵니다. 그러니 잘 부탁을 드립니다.”그렇게 대답을 하니 “그럼 나는 내일 송사를 맡지 않겠네! 판관은 돈은 물론 그 어떤 물건도 받아선 안 되는 것일세.” 이런 정의감이 세상을 지탱하는 원동력이 되는 것이다.

속된 말로 ,유전 무죄 무전 유죄‘란 말도 있다. 다 없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죄를 정당시 하려는 변이다고 하겠지만 작금에 법조인 비리가 연일 헤드라인 뉴스에 오른다. 또 강남역 인근 화장실에서 불특정 살인사건으로 아직 청춘의 꽃도 제대로 피워보지 못했던 여<23세>의 죽음을 보면 참으로 애석하기만 하다. 그리고 국가안보를 농단하며 방산비리를 저질러 을사오적과 같은 자들도 있으니 고양이에게 생선가게를 맡긴 격이다. 이를 본 국민들은 오랜 가뭄으로 논바닥이 갈라진 것을 보고 실의에 빠진 농심과 같을 것이다.

비너스 여신과 같이 아름다운 판도라을 선물한 제우스는 열어보아서는 안 된다고 했다. 호기심을 못 이겨 열었을 때에 재앙과 악이 세상 밖으로 쏟아져 나왔다. 그로인해 세상은 슬픔과 질병 가난과 전쟁 증오와 시기 등으로 가득 차게 됐다. 이에 당황해 판도라의 덮개를 닫아 버렸다. 그러데 상자 밖으로 나와 꽃을 피워야 할 희망은 상자 안에서 나오지 못했다 기왕이면 희망까지 나왔다면 사람들은 판도라의 상자가 열림으로 초래된 이 험악한 세상살이에서 고통과 불행을 좀 덜 겪어도 됐을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이 허구적인 그리스 신화의 극적인 요소이지만 허약한 인간의 소망은 불행보다 행복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북한의 약 40배 이상의 경제력을 가진 남한은 특별한 예로<질병. 실패>등 개인적인 문제를 제외하면 그래도 살만하다. 물질은 풍요한데 사람들의 덧없는 욕구가 충족을 하지 못한 데 불행이 둥지를 튼다고 생각해 보면 어떠랴!

부정과 부패는 이타성을 상실하고 오직 자신의 만족을 위한 욕망에 메이게 되기 때문이다.

모 대중가수는 그림에도 소질이 있어 화가에 못지않게 그림을 그렸고 또 유명세가 붙어 잘 팔렸다고 한다. 그런데 문제는 대작을 했다는 것이다. 차후 다 밝혀지겠지만 표면적으로 나타난 정보로는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가 없지만 본인의 말에 의하면 “ 관행”이다 하니...이 세상 어디 하나 온전한 곳이 없다고 탄식하시던 원로분이 생각이 난다.

한 때 FTA 반대를 한다고 국회의장석에 최류탄을 뿌린 몬스터 'Monster'와 같은 스타일, 또 공중부양을 하는 것 같이 탁자를 부수는 투쟁적인 정치인들은 이미 막 뒤에 퇴장을 했지만 앞으로 이런 일이 있을 수 없다고 누가 단정할 것인가? 다만 성숙된 의정활동은 타협과 소통으로 가야 국민들은 기대와 희망을 가지게 될 것이다.

지난 22일 오후 8시30분 서울 지하철10번 출구에서 “시끄러워! 너희들 다 나와” 이 사람은 피해 여성의 친 오빠로서 “죽은 사람과는 관계가 없이 자기들만 얘기를 하고 있다.”며 여동생의 죽음을 추모하는 자리에서 여혐과 반 여혐의 소모적 논쟁을 벌이는 현실에 슬픔과 분노를 감추자 못했다고 한다.

그리스도는 “사람의 생명은 천하보다 귀하다.”고 하였다. 이런 귀중한 생명을 끊은 김모씨 <34세>는 경찰조사에 의하면 망상. 환청. 정신적 둔감 등의 증상이 나타나는 정신 질환인 조현병 진단 및 치료를 받았던 것으로 확인 되었다고 한다.현재론 약물치료도 받지 못한 상태였다고 한다.

지난 17일 서울 강남역 부근 공용 화장실에서 김모씨 34세가 피해자 23세 여성을 잔인하게 살해한 후 유사 범죄 방지대책 논의가 있었다고 한다. 정부와 경찰은 이번 사건을 정신 병력이 있는 한 개인의 묻지마 범죄로 규정, 공용화장실 관리감독을 철저이 하고 전국 민간화장실은 공공기관이 관리를, 그리고 개방화장실로 바꾸는 방안을 추진한다고 23일 밝혔다. 강은회 여성가족부 장관도 20일 현장에 들리어 여자화장실이 범죄에 노출이 되지 않게 하라고 간부들에게 지시했다.

또한 경찰에선 조현병환자가 발생했을 땐 행정입원을 지자체와 협의 해 실시하기로 계획 중이다. 그러나 개인적인 인권문제가 발생할 소지가 있으므로 이 모든 것을 감안해야 하겠다.

지난 23일은 노무현 대통령7주기였다. 정당인은 물론 많은 추모객이 봉화마을 묘역에 참석했다. 이젠 좀 추모행사가 전보다 경건해졌다. 노무현 그 사람 바보란 애칭이 있었다. 영화 변호인을 보면 노무현 대통령의 한 생을 묘사했을 것이다. 재임 기간에 어찌 완전할 수가 있었을까? 이번 추모식 때에 더민주 전 대표 문재인씨가 말했듯이 “그 분을 정치에 끄려 들이지 말자”고 했다. 참으로 옳은 말이다. 그런데 경우에 따라서 패를 가르는 사람들이 있다

이번 강남역 인근 화장실에서 살해된 불행한 사건을 놓고도 여성혐오자니 여성혐오자가 아니다란, 문제를 두고 서로 자신들의 의사를 주장하다가 시비가 벌어지는 것 보았다. 파벌은 국력의 낭비일 뿐 망국지병이 되는 것으로 일제가 영호남을 갈라놓았다. 서로 등져서 분열하므로 국력을 소진시키는 것이었으니.

23세의 꽃다운 나이에 불행히 갔으니 애도하는 것 아름다운 마음씨인데 그 자리에서 패거리를 지었다는 것은 순수한 동기가 의심스럽기만 하다.

피의자 김씨는 사고가 발생한 곳에 가까운 음식점에서 처음은 써빙을 하다가 위생상 불결해서 조리보조로 주방에서 일하게 되었다는 점, 그리고 잘 곳이 없어서 동일건물 계단에서 쪽 잠을 잤으니 그 행색을 상상할 수가 있다. 음식점에서도 신변을 빨리 파악해서 도움을 주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내가 건강한 것만큼 내가 힘이 있는 것만큼 약하고 슬어진 자들이 있다는 것을 생각하며 마음을 열고 또 때론 주머니도 좀 열어야 할 때가 얼마든지 있다. 정의로운 세상은 먼데 있지 않고 우리들 마음에 있는 데 나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사람들에겐 보이지도 않지만 이타적인 사람들에겐 열려지게 될 것이다. 더불어 사는 세상은 정의로워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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